다시 만나 나누는 인사

떠나기 전, 제일 많이 듣는 인사말은 이것이다. 고마웠어요, 다음에 또 서울에 온다면 꼭 다시 방문할게요. 또 만나요. 이런 따스한 말들. 나 역시 그런 인사를 나누지만, 그런 말이 이뤄지란 정말 어렵다는 것을 안다. 한번 가 본 도시에 다시 가는 것부터, 이미 다녀온 숙소를 다시 찾기까지. 나의 여행 날짜에 그 숙소의 방이 비어있는지의 여부부터 시작해 많고 많은 우연들과 그 우연을 뛰어넘는 결심이 더해져야 가능한 일이다. 세상은 넓고, 도시는 많으며, 여행자의 방은 차고 넘치니까.

용현 씨는 게스트북에 이런 말을 남겼다. 다시 오겠다고 말한 약속을 지킬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여전히 아늑하고 좋은 공간에서 잘 지내다 갑니다. 지내면서 삼청동에 살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다음에 또 오게 된다면, 그때 같이 바베큐 파티해요! 라고. 이번 주는 일부러 짠 이벤트처럼, 다녀간 손님들의 방문이 이어졌다. 간간이 소식을 물어오던 프란지스카는 두 달 여행의 마지막을 우리 집에서 보내기로 했다. 경주에서 동서울 터미널까지의 여정. 퇴근길 2호선을 타고 시청역에 이르러 다시 마을버스를 타고 집으로 오는 프란지스카. 커다란 배낭을 멘 프란지스카가 벨을 누를 때, 식탁에는 셋이 모여 수다를 떨고 있었다. 어제 오후, 밴쿠버에서 연락을 해 온 케이트와 함께였다.

올해 초 겨울, 케이트는 야금야금 일정을 늘려가며 우리와 함께 지냈다. 그 사이 케이트는 친구도 데려오고, 한국에 살고 있는 동생과 제부도 데려왔다. 서울에서 시험을 치른 상태였고, 떠나기 전 합격 소식을 알게 된 케이트. 책이 나온 날에는 함께 교보에 갔고, 떠나기 전날엔 동네커피를 들렸다. 그러는 사이 속속들이 알게 된 서로다. 케이트는 다시 돌아올 날을 기약하며 떠났다. 겨울의 끝에서, 어쩌면 여름쯤 가게 될 것 같다며 이야기를 했었는데, 어젯밤 급작스럽게 날아온 메시지의 내용은 조금 달랐다. 한 시간 반 후, 공항에 가게 되었다며 지금 가도 머물 수 있겠냐며 물어온다. 나는 하하 웃으며, 언제든 좋다며 오라고 한다. 다음 날 저녁, 바다를 건너 날아온 케이트와 경복궁역 앞에서 만난다. 이고 지고 끄는 캐리어가 모두 세 개다. 급히 잡힌 면접을 보러 오는 사람보다 홀로 이민을 오는 느낌에 가깝다. 가방의 개수와 무게에서부터 우리의 수다는 시작된다. 여기서 지낼 수 있다는 생각에 바로 직행한 것도 있어요. 가도 되겠구나 싶어서요. 그 말이 어찌나 고마운지. 그럼요, 그럼요. 친구 집에서 지낸다고 생각하고 오면 되죠. 친구는 친구인데, 돈 받는 친구요. 그래서 기나긴 횡단보도에서 까르르 터지는 웃음.

경복궁 역에서 만난 지 만 하루도 지나지 않은 시각. 달과 함께 저녁을 먹고 있는데, 평소와 다른 차림의 케이트가 집에 들어선다. 화이트 셔츠와 슬랙스, 면접 복장의 케이트는 들어오자 말자 말한다. 저, 저. 합격했어요! 세상에. 나는 의자를 박차고 뛰어나가 슬쩍 케이트를 안고야 만다. 둘은 방방 뛰며 소리를 지른다. 이거 너무 영화잖아요. 아니 어쩜 이런데? 진짜 축하해요! 그 김에 앉아 만 하루 동안 있었던 이야기들을 듣는다. 탄성과 놀라움의 연속. 프란지스카가 당도하고 나선 네 사람이 앉은 식탁이 되었다. 오렌지를 하나씩 집어먹는 식탁 위로 한국어와 영어가 흘러다닌다. 프란지스카가 말한다. 여행을 마치면서 너희 집에 다시 와서 정말 좋아. 여기는 내 세컨 홈이야. 그렇지? 케이트 역시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푸근하게 웃으며 말한다. 그럼 나는 너희들의 스텝맘이야. 통성명 후 서로의 지난 이야기를 나누는 둘이 잘 어울려 보여, 나는 은근슬쩍 제안한다. 두 사람 저녁 안 먹었으면 같이 먹고 올래요? 블라인드 데이트처럼. 둘은 웃으며 나간다. 케이트의 안내로 삼청동 수제비에 다녀왔다는 둘. 채식주의자인 프란지스카는 케이트가 시켜준 감자전에 반하고야 말았다고. 케이트의 표정이 몹시 뿌듯하다. 암, 그렇고 말고.

이렇게 저렇게 어우러지는 풍경. 달과 나는 방에 들어와 이 묘한 기쁨을 자축한다. 신기하고 즐거운 일이야. 정말. 이렇게 연결 연결되는 이야기들이 참 감동적이야. 우리는 어째 지난 명절을 떠올리는 노부부처럼 흘러간 게스트들을 되짚어 본다. 그들이 들려준 이야기들, 그것들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 나누고 받는 경험들에 관해. 다음 주면 케이트의 어머니가 한국에 잠시 다녀간다. 우리 집에도 오셔서 자고 가신다고. 케이트 가족을 이렇게 하나씩 만나게 된다. 전해 들은 그분의 입담이 나는 무척이나 기대가 된다. '내가 그럴 줄 알았다.' 뭐든지 알고 있는 어머니, 예정론자인 어머니, 딸이 서울에서 제일 좋아하는 연예인을 우연히 만났다는 말에 '오, 주여'라고 외친 어머니. 나도 그분께 무엇이든 점지받고 싶어 진다. 기왕이면 파티의 날씨에 대해, 화창하고 맑은 공기가 가득한 날이길. 삼청동 거리에 가득한 아카시아 향이 아직 저물지 않길.

<원서동, 자기만의 방> 출간 기념 파티를 엽니다.

몇 장의 사진을 꺼내 그 위에 글자를 올려봅니다.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닌데, 돌아보니 모두 식물이 놓인 풍경입니다. 이런 정경 혹은 이런 느낌에 마음이 가나 봅니다. 언젠가부터 그렇게 되었습니다.2014년을 기억하시는지요. 처음으로 책을 만들었고, 그 책의 출간 파티를 집에서 열었습니다. 이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구기동 집에서 연 파티. 평면의 약도가... » 내용보기

흐린 날 할 수 있는 이야기

그것이 취미라도 되는 양, 열심히 집을 보러 다닌 날이 있었다. 각기 다른 세 군데의 부동산 사장님과 총 여섯 군데의 집을 보았다. 순라길 근처의 두 곳, 계동에 한 곳, 그리고 삼청동에 세 곳. 그 마지막 집에서 있었던 일이다. 앞서 두 곳을 보고 난 후, 사장님은 히든카드처럼 한 집의 이야기를 꺼낸다. 거기가 월세가 좀 비싸긴 한데, 그래도 건물을 ... » 내용보기

봄날에 결심할 수 있는 것

거리마다 한들한들 연등이 매달렸다. 이맘때만 잠깐 볼 수 있는 여린 초록의 잎들까지, 서울의 색감이 더욱 다채로워지는 봄날. 낮의 거리 또는 밤의 거리에 서서 나는 흥성흥성하다라는 말을 떠올린다. 백석, 그리고 따뜻한 술과 따뜻한 떡이 놓인 잔칫상. 가 본 적도 없는 북녘의 상차림을 떠올리며 마음이 푸근해진다. 그런 것들이 모여 사월 초파일 부근의 분위... » 내용보기

알록달록한 봄밤

어느 날의 밤 산책. 느린 걸음으로 북촌을 한 바퀴 돌았다. 청와대 앞 길에서 삼청동으로 빠지기 전 나타나는 야트막한 언덕을 올랐다. 언덕 중간쯤엔 경찰이 서 있다. 왼편은 청와대, 오른편은 총리공관이니 그럴 만도 하다. 약간 눈치를 보면서 슬금슬금 걸음을 옮기니 이런 풍경이 펼쳐진다. 그날따라 선명한 남산타워. 맑고 청명한 봄밤이었다. 집에 돌아오면 ... » 내용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