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레퍼런스

무엇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을까. 요가를 다녀와 나른해진 몸과 마음에, 연이어 맥주를 부어넣으니 신앙을 등진 이에게도 이런 의문이 솟아난다. 맥주 세 병이면 아무런 강요 없이 나를 스스로 노트북 앞에 앉게 할 수 있다. 마음 속에서 이리저리 솟아오르는 생각들을 이렇게 두서없이 풀어놓을 수 있게도.

나는 내가 이유 모르게 끌리던 이들에게 하나의 공통점을 찾아냈다. 그것은 '자유의 냄새'. 그 사람 개개인이 어떤 배경을 바탕으로 어떤 삶을 누리고 있건 간에, 이 유구한 전통에 발목 잡히지 않고 하루하루 살아내고 있다는 점. 그 하나에 나는 깊이 매혹되었다. 그것은 내 안의 결핍과도 자연스레 연결된다. 결혼한 이후 이전과는 다른 막막한 의문들이 떠오를 때, 나는 내 앞의 선배들의 발자취를 찾아 헤맸다. 심해에 처음 가닿은 이가 산소의 향방을 쫓듯 그렇게. 딸은 엄마 인생 닮기 마련이다, 라는 주술적 문장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것이 첫째. 엄마를 제외한 다른 이들의 삶이 궁금한 것이 그 둘째였다. 그리고 애당초, '나는 엄마처럼 안 살거야!'라고 외치는 것이 딸들의 최우선 아젠다 아니었던가.

그렇게 엄마와 다른 그 이후의 세대를 찾아나선 길은 녹록치 않았다. 애석하게도 참조할 목록을 꾸리는 것이 어려웠다. 상상보다 쉽게 타협하거나, 의도치 않게 고꾸라지는 이들을 종종 보았다. 아무렴, 목록들의 빛과 그늘을 살피고, 닮고 싶은 부분과 배우고 싶은 부분들을 찾고 싶었는데, 이 사회에선 그들을 만나는 것 자체가 진귀하고 드문 일이었다. 그러니 몇 안 되는 참조 목록들의 삶은 그 자체로 금과옥조가 되었다.

수 년 간. 정확히 서술하자면 만 5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나를 끊임없이 고뇌하게 만드는 문제가 있었다. 대나무숲 앞에 선 사람처럼, 이곳에도 여러 번 하소연 했던 먹고 사는 문제에 관한 책임감. 아무렴, 내게 그것이 없을까. 내 노동력을 팔아 그에 합당한 금과 은을 벌어오는 일. 그것에 관해 나는 원고지 수천 자에 이르는 논설을 쓸 수도 있다. 그러나 부러 안과 밖을 엄중히 나누는 이에 의해, 집안에서 무엇을 먹고 무엇을 마시며 사는 것에 대한 문제에 관해 나는 오래토록 부당한 짐을 져왔다. 내가 지고자 한 것이 아니다. 나는 결혼이란 이벤트 이전과 이후 달라진 것이 없는데, 누군가 내 등 위로 자꾸 이런저런 짐들을 부려놓았다. 싫어요, 안 해요, 라는 말을 배우지 못한 나는 절로 굽은 등으로 나만 들리는 욕을 해왔을 뿐이고. 그런 내가. 그랬던 내가. 그런 일상적이고 사소한 아주 평범하기 그지 없는 안부 전화들을 받지 않기 시작했다. 그것은 나도 모르게 작동한 동물적 감각일까. 어쩌면 그런 동물들이 알 수 없이 수난을 당하는, 말복이 도래했다. 그쯤 걸려오는 전화가 어떤 양상을 보이는지는 지난 경험으로 알 수 있었기에, 나는 수신자를 확인한 후 전화를 받지 않았다.

몇 통의 전화가 그렇게 부재중으로 남았다. 길 가다 무엇을 밟은 그런 느낌으로 잠에 들었다. 그러니까, 무엇을 밟고 그것을 씻기는커녕 확인하지도 않고 잠드는 그런 마음으로. 다음 날은 그런 기분에 지배당하지 않겠노라는 은근한 결심으로 영화를 보러 갔다. 다이안 레인이 와인을 들이킨다. 얼마 전 그 동네를 다녀온 감상에 같이 젖어들자니 은은한 진동이 온다. 내가 받지 않겠노라 결심한 그 전화다. 그래서 영화의 중반 이후는 이도 저도 아닌 복잡한 감상이 되었다. 아, 얽매임을 자각하니 이것이 얽매임이구나 느끼는 경지. 요가 선생님은 잡념이 찾아들면, 그것이 찾아왔음을 인지하고 시선을 돌리라 하셨는데.

어떤 배짱일까. 나도 알 수 없는 배짱으로 처음으로 뭉개보았다. 그리고 일주일. 급기야 무소식에 어떤 다른 함의가 숨어있음을 의심받고나서야 나는 길고 긴 메시지를 쓰기 시작했다. 읍소라기엔 거친 어조였고, 항의라기엔 푸념이 섞어들었다. 나는 이 메시지의 절정이 어디쯤일지 가늠하려 애썼으나, 쓰는 나도 어느 포인트인지 알 수 없었다. 쓰는 이의 감정이 제일 도드라지고, 그것이 독자의 감상과 맞닿아 폭발하는 부분은 '저는 밥 하려고 태어난 사람이 아니에요.' 일까, '사위에게도 냉장고 속에 뭐가 있을까 라는 질문을 하실까요.' 일까. 아니면 '그동안 어머니에게 네네하기 힘들었어요.' 일까. 어쩌면 그 모두가 되겠지.

그러니까 나는 밥 하려고 태어난 사람이 아니며, 밥 하려고 결혼한 사람은 더더욱 아니니, 나에게 더이상 그런 질문과 응답을 요구하지 마라, 라는 말을 만 5년 만에 하게 된 거다. 하루가 지났을까, 답은 맥 없이 도착했다. 이 모두가 사랑에서 비롯된 것임을, 미리 말하지 그랬냐는 대답. 그것을 보고 나니, 더한 허탈함이 밀려왔다. 그러게, 미리 말했으면 좋았을 것을. 하는 생각과 더불어 이로써 온전한 악당으로 완성된 나를 보았다. 그래, 그분도 악의는 없겠지. 하고 이해할 여력은 없다. 이미 나는 너무나 지쳤는걸. 내 성장에 지분 하나 없는 이가, 나에게 지속적인 압박을 가해왔음에도, 그것에 악의가 없었다고 넘길 수 있는 완벽한 군자가 되지 못한다. 구조적 문제점. 그래, 그럼 내가 지금 와서 흙이 되어버린지 오래일 중국인의 멱살을 잡을까, 무엇을 할까.

그래서 이 이야기는 별다른 결말 없이 이렇게 흘러간다. 나는 이것을 그냥 흘러가도록 두려한다. '고부'가 등장하는 이야기의 방향에 대해 무심히 흘려보낼 수 있다는 것이 하나의 특권임을 새로이 깨닫는다. 이전의 나는 미미한 조연 주제에 상상하는 결말이 그래도 예쁜 쪽으로 향하도록 발돋움하며 애를 썼지. 그것이 아무런 의미 없음을 안다. 나는 이러한 관계로 결탁된 사회 안에서, 내가 좀먹어가는 것을 안다. 질식 직전에 이르러야 이렇게 거친 숨을 뿜어내게 함도 안다. 나는 이 앎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세 병 연거푸 마신 맥주의 약발이 잦아들기에, 냉장고 속 샴페인을 땄다. 근사하게 축하할 일이 없음에도, 홀로 캡을 뜯고 코르크를 뽑았다. 마개는 뻥 하는 소리와 함께 기포를 뿜었다. 그것을 잔에 따라 홀짝이며 글을 마무리한다. 이 기기묘묘한 세상을 언젠가 반드시 탈출하리라 마음 먹으며 축배를 든다. 다른 레퍼런스 필요없이, 내가 그 레퍼런스가 되겠노라 다짐한다. 키친드렁커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너무도 잘 알 것 같은 밤이다.

노래들의 고향

칠월이 되기 전이었나, 문득 용기를 내어 메시지를 보내보았다. 그리고 온 답장. 괜히 보낸 것일까 걱정하던 것이 무색해질만큼 반가워하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몇 번의 메시지가 오고 간 후, 우리는 칠월의 금요일에 만나기로 했다. 내 얼굴을 모르니 드레스코드를 정해야 한다는 말에 나는 냉큼 레드라고 말했다. 부토니아 생각을 지우고... » 내용보기

마침표 혹은 말줄임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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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logna, Malta

오직 파스타를 먹겠다는 일념으로 이탈리아 마지막 도시를 정했다. 그것은 좋은 선택이었다. 볼로냐. 원초적인 욕망이 이끈 도시. 그러나 도착한 날이 일요일이라 대부분의 곳들이 문을 닫았다. 막상 저녁을 먹은 곳은 한 일식집. 달은 초밥 세트와 볶음 우동을 시켰다. 나는 라멘을 시키고. 서버가 다가와 무슨 라멘을 먹을 거냐 묻는다. 그제서야 알았다. 나는 ... » 내용보기

Nice, Firenze

토리노를 떠나 니스로 향했다. 느지막한 오후에 도착해 짐을 풀고 저녁을 먹었다. 프렌치 레스토랑에서 제법 긴 코스를 먹었는데, 둘다 그 맛을 기억하지 못하는 이유는 이번 여행 중 가장 크게 싸웠기 때문이다. 그러느라 아주 느릿느릿하게 먹었다. 아, 지역 와인의 맛은 아주 좋았다. 쇼비뇽 블랑. 포도가 싱그럽게 입 안을 구르는 ... » 내용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