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집, 영화 세 편. 일상


며칠 떠날 준비를 했다. 설거지도 끝내두고, 나가면서 버릴 쓰레기 봉투도 잘 묶어두었다.
대충 싼 가방을 챙겨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딘가 갈 준비를 하면서 챙겨야 하는 가장 필수적인 항목들. 칫솔과 치약, 스킨과 로션, 편하게 입을 잠옷.
그런 사소한 준비물들이 필요없는 곳. 언제 찾아가도 금세 꺼내줄 내 몫이 있는 곳.

오랜만에 집에 가는 기분은 좋았다.

머무르는 며칠, 나는 야금야금 나이를 거꾸로 먹은 듯 온갖 어리광은 다 부렸다.
진짜 그 나이를 관통할 때는 과묵한 얼굴의 첫째 노릇을 잘도 했으면서.
이제와 다시금
아빠에게 수건 둘둘 감은 젖은 머리를 들이밀며 말려달라고 하거나
엄마가 이것 저것 사놓은 과일이며 옥수수등을 홀랑홀랑 까먹고 이불 속에서 뒹굴거리길 계속.

비가 많이 와서 나는 코앞의 바닷가도 가지 않았다.

그저 노닥노닥 집순이가 된 기분은 좋았다.
비 온다고 김치전을 부쳐준다는 엄마. 반죽에 넣을 계란을 사러 심부름 가는 아빠에게
아니에요, 비도 많이 오는데 제가 다녀올게요 하진 못할 망정 목소리 높여 외치길.

'아빠! 아이스크림도!'

엄마는 내가 너무 달달한 군것질을 달고 산다고 한가득 타박을 주면서 사오지 말라고 했다.
잠시 후 아빠가 사온 아이스크림을 물고서 김치전을 기다리고 있자니
아싸, 이게 행복이구나
싶었다.


오가는 기차에서 보려고 영화를 담아갔다. 예전과 또다른 느낌이라 좋아서 캡처질.

와니와 준하

몽상가들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파리와 부천과 춘천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들은 다르면서도 일견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신기하게도.
꼽아보는 몇 개의 교집합들.
삼각관계, 사랑, 남매, 영화인, 과거 회상, 죄책감을 동반한 후회.
(근친간과 다른 핏줄이라는 차이점은 있지만 관객의 수용정도를 고려한 문화적 차이라고 생각해두자)
그리고 덩그러니 남은 여집합 목록에는 더이상 어쩌지 못할 홍상수표 찌질함이 있다.

가끔 '필연적'으로 등장하는 살색 화면들은 흐트러진 나의 관람 자세를 검열케 했다.
통로쪽 자리라 더더욱 가다듬어야 했던 나의 몸과 마음.

우리는 68혁명을 이야기하는 영화를 만들 수 없겠지.
그렇다면 다른 혁명은? 우리에게 일어났던 혁명들은?
명성 자자한 후원들로 탄생했다는 반공 영화들이 떡하니 개봉하는 2010년 대한민국인데
뭘 바라랴 싶다.

이런 나도 파쇼야?


부산역으로 향하는 길, 시간이 남아 피프광장엘 갔다.

내리는 비를 뚫고 호떡 챱챱

도착한 서울역에서
그 옛날 대우빌딩을 대신한 서울스퀘어는
전광판 가득 (아마도) 숭례문을 비춰주었다.

문득 차창 너머로 서울스퀘어의 반짝임을 보며
감탄을 나누던 지난 날이 떠올랐다.
추웠는데, 그래서 더 좋았던 기억.

+ 여자사람들과 나누는 대화를 통틀어 '여자는남자의미래다' 라고 정의내리는 사람이 있었다.
  그립다. 홍일점.
  가고 싶다. mrj.
  사트와 토익에 빼앗긴 우리의 잉여라이프.

이글루스 가든 - 하루에 한장. 사진 일기를 쓰자!

덧글

  • Road Camelot 2010/07/13 00:34 # 답글

    호떡이 그렇게 맛나나요? 우오오...

    몽상가들, 좋아요 :)
  • 한량 2010/07/13 09:07 #

    원래 한참을 (비둘기들과 함께) 줄서서 먹어야 하는만큼 인기 있는데요.
    이날은 비가 퍼부어서 그런지 광장에 사람이 별로 없었어요. ^^
    가끔 막 생각나고 그래요.
    특히나 이런 날씨에는 시원한 밀면 한그릇 먹고 나와서
    후식으로 호떡 베어물고 걸으면 죽음이죠.. 맛나고 더워서. ㅋㅋ

    이번에 밀면 못 먹고 온 게 마음에 걸리네요. ㅎㅎ

    아, 서울지인들 끌고 맛집투어나 하고 싶네요. 부산에 맛나는 거 진촤 많은뎁!
  • arealland 2010/07/13 07:49 # 답글

    와니와 준하, 영화는 보지 못했는데 애니메이션 부분은 봤거든요!
    제작기간만 일년 넘게 걸렸다고 들었던것 같은데,
    그런만큼 굉장히 아름다운 영상이었다고 생각했어요.
  • 한량 2010/07/13 09:13 #

    저도 영화 나온 당시엔 못봤고 아마 대학생 때 봤던 기억이에요.
    근데 정말. 정말. 정말 좋아요. 좋아하는 영화에 꼭 들어가요.
    카테고리화 하자면 '혼자 보기 좋은 영화'에요. ㅎㅎ

    (사실 제가 좋아하는 영화들 대부분이 이 범주에 들어가지만 -_-;)

    생각난 김에 오늘 혼자 영화나 보러갈까 싶어요.
    요즘 무슨 영화가 괜찮은지도 모르는데. 갑자기 두근두근.
  • 2010/07/13 10:15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한량 2010/07/14 10:51 #

    네네, 좋아요:) 매력이 폴폴 묻어나는 도시 같아요.
    저 고딩 때 야자 튀고 해운대서 놀고 그랬어요. 캿캬..

    그나저나 첫째! 아.... 가련한 첫째의 운명이란.
    마루타.. 시행착오 ㅋㅋㅋㅋ

    저도 집에 자주 가질 않네요. 가도 짧은 며칠만 있다가 오고..
    역시 택배만 낼롬낼롬 받아요. ㅎㅎ

    그나저나 진촤.. 비슷한 점 많네요....!
  • 바이올렛 2010/07/16 23:45 # 삭제 답글

    아 부산 가고 싶다
    나 이제 부산에서 혼자 잘 찾아댕기는데.
  • 한량 2010/07/20 12:17 #

    이 포스팅 올리고 다음날인가, 서울친구 한 명이 자기 부산 놀러간다고
    맛집 추려달라기에 초큼 신기했어 ㅋㅋㅋ
    가시오! 가라규! 부산 가고싶다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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