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서없는 여행기 (바르셀로나, 마드리드까지의 여정) 다른 사람이 되어

여행도 어느새 10일째,
절반 조금 못 미치는 지금. 나는 오늘을 안식일로 선포했다.
아침에 알람브라 코 앞까지 산책을 다녀온 뒤, 모든 일정은 내일 이후로 미뤘다.
호스텔 컴퓨터에 앉아 한참을 낑낑거리다 한글 패치 설치하는데 성공! 감격의 눈물이 펑펑.
그리하여 한글 타이핑의 욕구가 폭발했다. (역시 제2의 직업이 네티즌)

까딸루냐 음악당 현장예매 성공! 이날의 공연은 스페니쉬 기타.
알람브라 궁전의 추억을 듣고 감동에 겨워 늦은밤 집에 오는 길이 하나도 피곤치 않았던 기억.

MACBA

CCCB

MNAC

여전히 가우디님 존경 돋은 상태.

MNAC에서 바라본 플라자 드 에스빠냐

피카소 미술관에서 보고 충격먹은 피카소 버전의 'Las Meninas'. 그림은 못 찍었사와요.
근데 정녕 충격 1톤은 먹었다.

바르셀로나에서 마지막 밤,
밤의 사그리다 파밀리아를 보겠다고 기어코 메트로 타고 가서 또 무릎꿇고 왔네.
아침에 나서기 전 가방을 챙기다 보면, 이래저래 한 짐 가득이다. 싸인펜에 색연필, 크레용과 파스텔까지.
설령 단 한줄도 긋지 않더라도, 케이스에 쓰인 호안 미로, 뮤세오 드 피카소 등의 문구를 보면 마음이 뿌듯하다.
더불어 늘 들고 다니는 '청춘의 문장들'. 달에게 선물받을 때가 아마도 동인천에서 막차 타고 오는 지하철 안 이었으니
유월쯤 되었을게다. 읽는다, 읽는다 해놓고서 앞의 몇 장만 들추고 미뤄두었는데, 여기서 읽으려고 그랬나보다.

늦은 밤 숙소 근처의 바에 앉아, copa vino. 와인 한 잔 시켜놓고 책장을 넘기면 밀려오는 행복함을 주체할 수 없다.
마음에 드는 구절에 줄을 긋고 때론 일기장에 옮겨 적기도 하면서 나는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다.
이곳에서 찾기 힘든 한국어. 그리고 유려한 문장. 게다가 키워드는 청춘.
줄어드는 한 장, 한 장이 아까워 아껴서 읽고 있다.

어디 그것뿐이랴, 마드리드 행 티켓팅을 한다고 부엘링에서 짐을 부치는데 캐리어 무게가 16kg 나왔다.
(지금은 더 늘었을게다.) 뭐 일이야 바퀴가 하는 것이고 나는 요령껏 운전만 잘하면 되는 것이지만,
다른 곳으로 이동할 때는 이야기가 다르다. 특히나 메트로. 더더욱 환승의 순간. 나는 번쩍번쩍 캐리어를 들고
계단을 잘도 오르락 내리락 한다. 출구를 잘못 찾아 왔던 길을 되돌아 가야하는 삽질의 순간조차도,
나는 내 안에 이런 근력이 숨어있었다는 사실에 놀라며 쾌남이 된 기분에 젖어든다.

더불어 눈에 보이는 렙업. 첫날 일기를 보면 짐이 무거워 낑낑댔다고 써있다. 그날 나는 500ml 물을 마셨는데,
다음날 바로 1l로 업그레이드 했다. 하하, 눈부신 고속 성장이다. 다다음날은 또 어떻고. 그후로 줄곧 1.5l 페트를
항상 끼고 다닌다. 그것은 이 곳의 더위를 이기기 위해 항상 물이 필요하기 때문이고,
또 가격대비 큰 용량이 보다 저렴하기 때문이다. 이제 그쯤은 하나도 무겁지 않다. 더없이 가볍다.

사람사는 동네
여행을 떠나기 전 얼기설기 주워들은 정보에 따르면 스페인은 소매치기의 천국. 여행자에게 주어지는 충고는
넘쳐났다. 캐리어에 자물쇠는 필수로, 들고다니는 가방에도 지퍼와 안감을 옷핀으로 연결해야 하고.
그리고 나서도 항상 앞쪽으로 매고 꼭 잡고 다녀야 한다고. 그래도 어느새 털리는 곳이 스페인이라 했다.
(사촌오라버니 역시 백만원가량 도둑맞았단 경험담을 늘어놓았다.)

그러나.
출발 하루 전, 내게 준비된 것이라곤 항공권과 유로 뿐. 난 옷핀도 없는 사람이라고. 그래서 걱정이 좀 되기도 했다.
그래도,
지퍼조차 없는 에코백을 매고 희희낙락 다녀도 하나 털린 것 없는 것은 아마도 '거지 여행자의 잇 아이템'.
1.5l 믈통이 뿜어내는 가난뱅이 포스가 아니었을까 싶다. gracias!

오히려 횡단보도에서 신호등이 바뀌길 기다리고 있는데, 마드리드 아가씨가 네게 충고했다.
'얘, 너 카메라 조심해.' 
'응? 이거 안 비싼거야.'
'그래도 외쿡인들은 도둑맞을 수 있다구.'
'gracias!'

마드리다 - 그라나다 행 버스 안에서의 일이다. 정확히 두 시간여를 달려서 휴게소에 멈춘 버스.
나의 마음은 못내 두근거렸다. 맥반석 오징어니, 호두과자니, 구운 감자간은 것을 바란 것은 아니지만.
이 휴게소는 뭐.. 휑한 시골마을에 덩그러니 서 있다. 개척시대 미국 서부 간지가 흐른달까.
결국 조신하게 '원 코크, 플리즈.' 하고 콜라만 홀짝이는데.

아, 이야기 하려던 게 이게 아니고.
여튼 그 버스에서 난 엄마와 동석했다. 엄마는 엄만데, 엄마를 엄마라고 엄마아! 하고 부르지 못한 것은
흑인 엄마였기 때문에. 흑인 엄마는 출발할 때부터 나의 안전벨트를 체크해주었고,
휴게소에 내릴 때에도 내 지갑을 걱정해주었으며, 다시 탈 때 역시 안전벨트를 체크해주는 바람에
사실 갑갑해서 하기 싫었지만, 엄마가 하는 말이니까 순순히 따랐다. 꼬박 다섯시간을 달려 도착한
그라나다 버스 정류장에서 내릴 때도 모르고 흘린 수건을 주워주기까지. 와... 진촤 맘마미야! 돋네..

그래서 하는 말인데, 그리 겁먹을 일 없다는 거다.
사람사는 동네는 다 비슷비슷하다. 아마 서울에 놀러온 외국인도 보통의 서울리안에 비해서
소매치기의 표적이 되기 쉬울 것이고, 그만큼 주의를 요하는 바겠지만. 너무 지나체게 겁먹을 필요는 없다.

(나는 여행 중 다른 여행자에게서 아주 희귀한 아이템을 알고 무릎 꿇었다. 이른 바 '찜질방 팬티'라는
것으로 속옷에 지퍼가 달려 중요한 것들을 아주아주아주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다는거다. 그러니
옛날 할매들 입던 고쟁이 같은 개념인가본데, 듣는 내내 시종일관 픽픽 터져나오는 웃음.
짖궂게 물어보고 싶어져가지고. 아니, 중요한 것이라면 대체 어떤걸 말하는거죠? 게다가 지퍼..
지퍼 달린 속옷이라면 그런 용도가 아니라 "그런 용도"인줄만 알았는데.. 이건 뭐 정조대도 생각나고. 핫!)

마드리드 공항

솔 광장 분수에 발을 담그니
순식간에 북한산 간지 좔좔..
여기 도토리묵에 동동주 하나 주세염.
여행에서 마주친 이들이 나의 일정표를 보고는 '이게 뭥뮈에요!' 했다. 이유는 너무 늘어진다고.
아니, 마드리드에서 3일동안 있으면서 똘레도랑 세고비야는 안 간다고? 그리고 무슨 그라나다에서 3일이나 있어요.
하루면 땡이에요 거긴.

그러게, 마드리드에 머물면서 똘레도와 세고비야를 안 가는 사람은 극히 드물것이다.
근데 이상하게 마음은 더없이 여유롭다. 아니.. 뭐, 내가 여기 다시 안 올 것도 아니고.
왜냐면 이걸 밟았으므로! 핫챠!
여기가 스페인의 중심 지점이랜다. 여길 밟으면 곧 다시 돌아오게 된다는 다소 트레비 분수돋는 이야기가..
뭐, 사람들은 잠실롯데에서도 뒤로 돌아 동전을 던지지 않나.
밑져야 본전, 아니 간절히 밑는 마음으로 발도장 꾹!

마드리드의 상징, 열매먹는 곰팅이와.
특면에서 보면 뒷태가 아주 토실토실, 왠지 낯설지가 않아....

똘레도와 세고비야를 버렸으면 이제 할 일은 미술관 기행.
마드리드에는 유명한 미술관이 세 군데 있다. 프라도, 티센, 레이나 소피아.
보통은 오전에 근교의 도시, 오후 및 저녁에 미술관 하나. 이런 식으로 묶거나 오전 오후를 나눠 미술관 두 군데를
가는 방식이던데. 아오, 난 그냥 쉬엄쉬엄. 하루에 미술관 하나씩 천천히 돌았다.
아침 일찍 개장 시간 즈음의 미술관은 한적함, 호젓함 그 자체. 천천히 돌며 작품들을 들여다보는 즐거움을 새로 알게 되었다.

PRADA보다 백만배 멋진 그 이름 PRADO.

프라도는 두 세번 들락날락했는데, 오전 내내 돌다가 지치고 피곤하여 사진 찍은 이쪽 입구 즈음하여
잔디밭에 퍼질러 누워 잤다...! 이거슨 바람직한 시에스타이다..
벤치 하나 건너선 길거리 연주 할배가 기타로 자장가를 들려주었다. 하.. 좋아라.
자고 일어나 드디어, 벨라스케스와 고야 알현.

윗분이 벨라스케스
아랫분은 내추럴 한량
(손에 낀 저 봉투,Laie. 미술관마다 공식 입점한 기념품샵.
날 무섭게 하는 곳. 그 곳에만 가면 정줄놓고 한아름 한아름.
작가를 흠모하는 가장 저열한 방식인 것 같아 스스로를 꾸짖어봐도 멈출 수가 없다.
라 페드라에서 한번에 96유로 넘게 쇼핑하고 나오면서는
'제발.. 돈만 많은 일본인 관광객으로만 보지 마라..'
중얼거렸다.)
Real. 레이알. 왕궁.
앞 플라자 드 오리엔테. 
무엄하게도 왕궁 앞 잔디밭에 주저앉아 뒹굴뒹굴.
왜냐면 이건 나의 시에스타라규.
그간 고생한 내 발 주물주물 토닥토닥.

밤에 다시 찾은 오리엔테.
우리 같으면 삼청동이나 효자동이네요. 그쵸?
핫, 그럼 이렇게 노는거 상상도 못 할걸요.
(스케이트 보드 타는 애들을 가리키며) 그 앞에서 저러고 있으면 죄다 구류감이죠. ㅋㅋ

레이나 소피아 정원에서 다시 만난 미로.
반갑솨!

두서없이 주절주절댔으나, 결론. 좋습니다요.
오늘은 이 안식일을 실컷 즐기고, 노닥노닥 뒹굴뒹굴 하다가 밤에 맛있는 거 먹으러 갈 거예요.
내일은 알람브라 궁전와 알바이신을 보고, 어쩌면 호스텔에 있는 포토그래퍼 애들이랑(보아하니 프로임)
시티 투어를 갈 지도 몰라요. 내일 밤을 자면 이제 말라가를 갑니다.

오, 말라가라니.
지도를 들여다보면 아프리카 대륙의 세우타와도 가깝죠.
세우타! 말라가! 자주 오갔습니다.

말라가부턴 숙소도 예약 안 되어있다는 흉흉한 소문이..
뭐 어떻게든 되겠죠. 아디오스!


이글루스 가든 - 여행다니기

덧글

  • fendee 2010/08/04 15:26 # 답글

    즐거운 여행 되세요.
  • juno 2010/08/07 21:15 # 삭제 답글

    마음가는 곳에 깊이 머무르고 맘내키면 또 바람처럼..
    멋진 여행입니다
    7년 전 신혼여행을 유럽으로 갔는데 스페인은 못가봤어요 부럽삼..
    최고의 여름을 보내시길..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을 마음에 담고, 쳐부술 수 없는 적과 싸우며...
    닿을 수 없는 저 별을 향해 나아가는 것, 그것이 나의 여정"
    돈키호테, 라만차의 노래 한 구절을 전합니다~
  • 한량 2010/08/08 17:15 #

    원고는 잘 쓰셨나요? 8월말 엠티는 가실 수 있는지? 외박이라 안 되나.. ㅠㅠ 암튼 다들 많이 그립습니다. 서울가면 롤리타랑 캐리 주문부터 해야겠어요 하악
  • 미애 에르모사 2010/08/08 21:20 # 삭제 답글

    이쯤에서 쓴 엽서일테니 여기다 댓글 달아야지 ㅎ
    엽서 잘 왔어!♡_♡ 얼마나 잘 왔냐면
    엽서가 우리집 현관 도어락에 꽂혀 있었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대박이지!ㅋㅋㅋㅋㅋ그래서 인증샷도 찍어놨어
    게다가 오늘은 일요일인데......
    뭐지..? 국제 엽서는 휴일에 현관앞까지 배달해주나....?
    아니면 누구네 집에 엽서가 잘못 가서
    어? 내꺼 아니네 옆집꺼네? 이러고서 갖다놓은 것 같기도 하고.
    돋는다 돋아.

    라스 메니나스가 이 그림이었구나
    난 미처 몰랐었네
    우왕 굳
    멋있쪄잉.
  • 한량 2010/08/09 01:03 #

    친구야 조그만 엽서가 롸잇싸이드 잘 찾아갔구나ㅋㅋㅋ
    신기하지? 하나둘 도착 소식 들으니 기쁘다
    그나저나 뭡니까... 라스 메니나스 알고 있던거 아니었송?
    파반느 돋네...ㅋㅋㅋㅋ
    난 지금 리스본이야 여기 넘 선선해서 단박에 이 도시를 사랑하게 되었다
    국경을 넘었으나 시에스타를 즐기러 잠시 호스텔 왔엉
    돌아가면 당장 만나
    리무진 내리는데서 대기하길...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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