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티의 밤 (어쩌면 문학의 밤일까) 일상

한 해를 보내면서 새로 알게 된 인연들 중,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게 된 사람들이 있다.
(나만 그런건 아니겠지.......)
우리는 글을 쓴답시고 모여놓고 작가들을 까고 야한 이야기를 하고 술을 마시고 밤을 새곤했다.
그것도 모자라 1박2일 혹은 2박3일의 일정으로 함께 뒹굴며 놀기도 하고 (오, 추억돋는 mrj 엉엉)
제주도로 여행도 다녀왔다. 각자 회사엔 뻥치고... 하하하하 그래요, 우린 이런 모리배들이에요.
그런 우리가 작정하고 모여 송년파티를 하기로 했다.
로비에서 수학여행 온 청소년 간지를 뽐내고 있을 때, 능력자 홍과장님은 샤샤삭 멋진 체크인.
게으른 이들을 기다리며 장을 보러 가기로 하였다. 
언니는 총무의 자격 나는 일개 요리셔틀로 쭐레쭐레 광화문 언저리를 배회했다.
히치콕 돋네
(주로 회사에서 훔쳐온) 각종 파티 물품이 구비되었지만 언니의 미련은 가시질 않아..
자꾸만 풍선달고 싶다 중얼거렸다.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고 오늘의 호스트라며 언니를 추켜세워주자 언니는 정정했다.

훗! 나 호스트 아냐, 호스티이스으.
암요, 그렇구만요. 호스티스!
요즘 대세인 홍합요리 껄껄껄 나 좀 능력자인듯

요리는 어렵지 않아요, 그냥 쉐낏쉐낏 있는 재료 털어넣고 슥슥
베이스는 휘핑크림+토마토소스 약간
걸쭉한 소스에 빵을 찍어먹어도 좋고
간이 잘 밴 감자를 으깨며 탄수화물욕구를 채우면 됩니다.
홍합을 먹을 땐 누구처럼 더럽고 추접스럽게 핥으면 온갖 비난과 지탄을 받으니 조심하세요.
아차차, 드레싱을 뿌릴 때도 누구처럼 더럽고 추접스럽게 뿌리면 큰일나요. 
이날 요리의 주역들

홍합찜 및 총지휘 : 나
손질 및 샐러드세척(제작아님 온리 세척) : 홍일점

이런 단촐한 엔딩크레딧이 올라갈 동안
나머지 멤버들은 희희낙락 자기들끼리 파티 분위기 다 내고
우리는 찬물에 손 얼어가며 요리했는데 엉엉
그래도 크래미도 막 뜯어먹고 와인도 홀짝홀짝 마셨길 망정이지
종로의 야경을 등 뒤로 한 채
사모님들은 우아하게 와인 드시고 악기셔틀들은 연주에 몰입
나는 썩은 귀의 한계에 통감.... 베토벤 컨셉으로 나가야 하나... 엉엉
나의 사부님께서는 역사에 길이남을 편곡을 보여주셨다.
이름하야 '루돌프 순록코'

루돌프 순록코는 매우 반짝이는 코오~♪
만일 네가 봤다며언~ 불 붙는다 했겠지이~♬
다른 모든 순록들~ 놀려대며 웃었네에~
가엾은 저 루돌프으~♭
외톨이가 되었네~에~♬
외 토올 이가아 되어었~네~에에~♩
외~토오올~이~가아~ 되~어었~네~에~에에~♬
 (끝)

이런게 기승전병일까.
모두들 남몰래 흐르는 눈물을 닦는 시간.
케익에 초를 붙이고 소원 빌 새도 없이 후루룩 끄고 나눠먹으며,
이날 우리의 야심찬 계획 낭독회가 펼쳐졌다.

문혜진 '로드킬'
김승옥 '무진기행'
최승자 '일찍이 나는'
기형도 '입 속의 검은 잎' (詩作 메모)
이희연 '나는 그대에게'
오세영 '등산'
조선시대 기녀시조, 서경덕의 시조
보들레르 '우울'
소동파 '적벽부'

나는 황지우 '늙어가는 아내에게'를 읽어 
'연애를 쉬고 있어 도무지 감흥이 없군' 같은 평을 받았으나
이어진 백석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로 모두의 넋을 빼놓았다.
아아, 백석.

백석 시 '여우난 곬족' 중에 '흥성거리는' 이 대목이 한참 지난 지금도 입에 맴돈다.
그야말로 우리는 흥성흥성 즐거웁게 떠들떠들
하면서도 계속 먹네
누워서 이불감고 수다에 수다를 잇다가 까무룩 잠들었다 일어나서도 계속 먹는다
조증 시작된 사부님과 쿵짝이 맞는 나는 시키지도 않는 노래와 춤을 덩실덩실
다들 관심을 보이지 않아도 둘이서 좋아라고 까르르
그러다가도
'루돌프 순록코'
만 연주했다하면 이어지는 박수 갈채.
다들 인생사 설움과 외로움을 여기서 푸는걸까.
오, 카타르시스.
헤어지기 아쉬워 향한 삼청동에서 거한 해장을 하고
(지치지도 않나) 커피를 후룹후룹 마시며 새해계획을 쓴다.
나의 드로잉북과 색연필을 밀어놓으니 다들 제각각 다짐들을 쓴다. 허허. 귀여운 싸람들.
그래도 기특한 것은, 작년 이맘때의 두근거리는 초심을 바로잡아 우리는 수요일의 밤을 다시 열어가기로 하였다.
긴 글을 준비하는 시놉시스나, 짧은 글들을 들고 모여앉아 수군수군 읽어주고 이런저런 합평을 할테다.
마음에 콩콩 뛴다,
그런데 아직 한 줄도 안 썼네요.
혼내주세요. 네?

+
생일날 뭘 갖고 싶냐며 주소와 함께 부르라며 휘리릭 날아온 메시지에
부르라면 또 바로 부르는 사람입니다.. 하고 응했더니
이런 선물이 도착했다.
곱디 고운 선물박스까지!
거칠고 난잡하게 풀어헤치니 오라버니의 서신이 들어있다!
오라버니를 마지막 뵈온 게 어느적인지, 잊지 않고 챙겨주셔서 고맙사옵니다.
일산원정대가 꼬질렀는지 어쨌는지 몰라도 추신의 글귀까지..
조만간 참치 먹으러 갈게요! (캔은 사절)
아무쪼록 그때 보은하도록 하지요.
오라버니의 글도 읽고 싶사와요. 우리 잊지 말자구요. 히힛!

이글루스 가든 - 하루에 한장. 사진 일기를 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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