ㅇㅇ로운 날들 일상


여유롭다고도 할 수 있고, 잉여롭다고도 할 수 있다. 올 1월, 서울의 기온이 영상이었던 게 사십몇분이란다.
이 정도면 순간에 가깝다. 굴하지 않고 베스파 씽씽 몰고 출근했더니 볼이 얼어터질 것 같았다.
거울을 보니 꽃제비 하나가 있네. 그래도 며칠 좀 따스해졌나 싶었지만 오늘 바람은 무섭다.
그래서 꼬물꼬물 집에서 꼼지락댔다. 꼼지락하며 영화 두 편을 보고, 책도 한 권 읽었다.

김연수와 김중혁이 씨네21에 연재했던 칼럼집 '대책없이 해피엔딩'에서 보았던 영화.
한국 제목은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 ... 이것과 비슷한 제목의 드라마도 있지 않았나?
극중 김희애를 패러디 한 신동엽의 팜므파탈 연기가 기억에 남는다. (아 너무 좋습니다..)
시작부터 쿵짝쿵짝하는 음악이 흥겹다. 전지적 작가 시점의 나레이션도 흥미롭다.
공항에 내려 진입하는 부분부터 줄곧 바르셀로나가 펼쳐진다.
사그리다 파밀리아, 구엘 공원, 람블라스 거리, 시청 앞 광장, MNAC, (저멀리 스페인광장!)
그랑 비아, 까사 밀라, 그리고 상파우 병원.
(영화에선 비키가 스페인어 공부하는 곳으로 나왔지만, 정문의 조각상들보니 딱 병원이구만! 했다.)

관계의 가지치기, 홍상수가 생각났다. 홍상수 영화에선 정신적 쓰리썸이 느껴진다.
문득, 지난 수다가 떠오른다. '투썸 플레이스는 있는데 왜 쓰리썸 플레이스는 없어?' 하아..
 
후안 안토니오가 그렇게 매력적인가? 내 타입은 아닌데.. 했지만, 더그나 벤보다야. 아무렴.
그래서 마지막 다시 공항 에스컬레이터를 내려가는 다른 조합의 세 사람은 조금 심심해보였다.
여름휴가가 끝나고 각자는 나름의 방식대로 행복하게 잘 살았답니다.
바르셀로나는 추억으로 안녕! 미친 사랑도, 욕정도 안녕!

그러니까, 우린 영원히 (혹은 헤어지기 전까지)한 사람에게만 사랑을 맹세하고 충성할 수 있을까?
남는 물음은 이거다.

덧붙여, 페넬로페 크루즈는 천상 스페인 여자. 소리지르는 연기 진짜 리얼하다. 아니 이건 REAL.

두번째 영화는 노웨어보이. 존레논 비긴즈-노웨어보이 라는 이름으로 개봉했었다.
음악영화라기보다, 존 레논의 성장 영화에 가깝다. 정학도 먹고, 기타도 사고, 밴드도 만들고, 여자도 꼬시고,
출생의 비밀도 알게 되고, (엄마야!) 무엇보다 폴 매카트니도 만나고 말이야.
(러브액츄얼리의 꼬꼬마 토마스 생스터가 폴 매카트니로 나온다. 약간 아쉬운 이 마음은 뭔가..
마의 16세까진 아니지만.. 어릴 적에 너무 예뻤던거지. 존 레논 역의 아론 존슨은, 그에 반해
또 너무 성숙해보인다. 머릿 속에 '정력적인 마스크'란 문장이 지나갔다. 로크롤청년이라 그런가.)

영화 자체보다 음악과 배경, 그리고 의상과 소품들에 반해 마음이 두근두근 뛰었다.
급기야 동네까페로 달려가 커피 한 잔을 사들고 와 이어서 보았다. 그만큼 예뻤다.
듣던 것과 달리 영국 햇살 좋구만, 자동차 너무 예쁘다 꺅! 나도 빨간 립스틱 발라볼까.
드레스며 가디건이며 너무 예쁘다아.. 하며 넋을 놓았다. 

요즘 청록색 더플코트가 사고싶어 죽겠다. 뿐만 아니라 각종 초록색이 탐난다.
이런 초록앓이를 하고 있다가 영화에 등장한 이층버스를 보고선 침을 줄줄 흘렸다.
카네이션, 티팟, 구두 등은 또 어떻고. 아.. 아무래도 영국에 가야할까, 하는데 때마침
화면 가득 클로즈업 된 피쉬앤칩스. 아무렇지 않게 살짝 등장한 화면에 다시 마음을 접는다.

책은, 낡고 닳은 '먼 북소리'.
말해서 무엇하랴, 대중없이 아무데나 펴서 읽어도 술술 넘어간다. 
무심한 서술로는 하루키를 따라가기 어렵다. 어이없는 상황의 감상을 힘 빼고 툭 던지는데
그 간극에서 웃음이 터진다. 그리스도 그리스지만, 특히 이탈리아 편은 한 문장 문장이 주옥같다.
덕분에 어렴풋한 여행 구상에 불씨를 지핀다. 이십년도 더 된 여행기가 우릴 들뜨게 한다.

마음은 벌써 여름이다.
   

덧글

  • 유달 2011/01/30 01:36 # 답글

    마음은 벌써 여름이다(2)
  • 한량 2011/01/30 01:43 #

    난 다 읽었지롱♬
    그런데 안 자고 뭐하농

    나 오늘 엄청 예쁜 가방 봤당♪
    클래식 어른의 냄새가 솔솔
    너도 보면 탐낼거야

    왜냐면 남자가방이거든요.......
  • 한량 2011/01/30 01:39 # 답글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나보다.
    비틀즈를 듣고 있는 지금, 비키크리스티나바르셀로나 (헉헉)의 여세를 몰아
    우디알렌 영화를 보러 가기로 한다. 씨네큐브와 압구정cgv 사이에서 잠시 망설이는데
    블랙수트 cgv 무료영화가 생각난다. 오예! 작년 펑펑 통화한 결과로다. 신이 나서 예매를 마쳤다.
    함께 보러 가면 좋을텐데, 하지만 그건 늘 어렵다.
    좋을텐데, 좋을텐데 하다가보면 보고픈 영화는 벌써 내리고 만다.
    사실 나란히 얌전하게 앉아 두 시간을 보내기엔 여유가 없는지도 모른다.
    하고싶은 게 하도 많아서, 즐거움도 큰 반면 놓치는 것들을 아쉬워하는 것도 공통점이다.
    애초에 욕심이 많은게다. 마음을 비우자. 흐앗챠!


  • Ren 2011/01/30 02:32 # 답글

    오- 둘다 아주 재밌는 영화같네요. :-)
  • 한량 2011/02/01 15:40 #

    ^^ 썸네일 연꽃 예뻐요. 연꽃 아니면 어쩌지..
  • 칼슈레이 2011/01/30 04:01 # 답글

    홍상수 영화에선 정신적 쓰리썸이 느껴진다. ㅎㅎ 왠지 홍상수 감독님 작품에 제가 느끼던 느낌을 정확히 집은 표현같네요^^ 개인적으로 노 웨어 보이는 너무 실제와 다르기에 좋아하지는 않았지만ㅎ;;; 좋은글 잘읽고 갑니다 건필하세요~
  • 한량 2011/02/01 15:41 #

    아, 실제랑은 좀 달라요? 비틀즈에 대해선 잘 몰라서요.
    그래도 그 시대는 멋져보여요. 물론 겪어보지 않은 자의 막연한 동경이지만요.
    영국 언제 한번 꼭 가보고 싶어요. 미간 찌푸리고 바바리코트 깃 세우고 걷고 싶어요. ㅎㅎ
  • 스무디 2011/01/30 21:35 # 답글

    비키크리스티나바르셀로나.. 이 영화 보고 스페인에 반하고 오비에도에 가고 싶었지ㅋㅋ 오비에도 갔을 때 현지인 집에서 세밤 자고ㅋㅋㅋ 우디앨런 동상도 있고 그러더라! 나에게는 잊을 수 없는 영화~~~
  • 한량 2011/02/01 15:39 #

    아항! 네가 말했던 영화가 이거였구나. 몰랐엉.......
    오비에도! 최고네. 동상까지 ㅋㅋㅋ 아오 그리워 스페인 ㅠㅠ
  • 바보라 2011/03/13 08:38 # 삭제 답글

    내가 열라 조아하는 광기어린 페넬로페. 아 그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빛 너무 좋아. 미에르다! 미에르다!
  • 한량 2011/03/18 11:04 #

    완전 제대로 미친년 포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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