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없는 홍대 상수동 신촌 이태원 바람은 차고 우리는 따뜻하니

걸어다니라고?

자박자박 시간은 잘도 흐른다. 가늠하기 어려운 날짜들이 하나둘 저물고 나니 봄이다. 꽃샘추위나 황사라도 봄은 봄이니까. 자전거를 타고 장을 보러간다. 돌아와 요리조리 밥상을 차려낸다. 음악에 맞추어 여러 종류의 댄스를 소화해낸다. 잠들기 전 오늘 하루 무슨 일 있었어, 어떤 이야기 했어, 종알종알 묻고 귀 기울여 듣는다. 지난 여름, 나에 대해 많은 걸 알고 싶다고 너는 말했다. 그만큼 우리는 서로에 대해 아는 게 없었으니, 새벽이 오도록 이야기는 끊이지 않았다. 이제는 눈빛이며 손짓, 말투 하나하나로 사소한 감정까지 알아차릴 수 있지만 (게다가 무서운 적중률) 그래도 우리는 이야기를 한다. 오만가지 잡동사니 이야기들이 튀어올랐다 가라앉는다. 고개를 끄덕이기도, 품에 폭 안겨 얌전히 듣기도, 신이 나 함께 떠들떠들하기도 한다.  
이 무렵 학교 앞에선 개강냄새가 난다. 설렘과 흥분, 기대같은 포슬포슬한 감정 입자들이 허공을 난다. 차갑고 건조한 바람이라도 괜찮다. 꽃가루같이 분분히 날리는 마음. 학교 앞을 누비는 내내 나는 멍멍이가 된 기분이었다. 치맛자락 사이로 신나는 꼬리가 보였을 지도 몰라. 옛날 살던 동네를 더듬고 그 옥상에 올라 같은 풍경을 바라보고 아, 우리 진짜 근처에 살고 있었구나. 한다. 커피를 사들고 당고를 먹으러 간다. 창가의 좁다란 의자에 앉아 얼굴을 바라보니 그때가 생각난다. 어색함 묻은 존댓말. 어허허허 이런 웃음들. 아마 지금처럼 빤히 바라보지 못했을 우리. 그래도 多情했을 우리. 이화에 월백하고 은한은 삼경을 훌쩍 넘었을지니.
열 개의 도장을 찍으면 한 잔의 커피로 바꾸어준다. 그렇게 얻어마신 커피가 몇 사발은 훌쩍 넘을테니 반갑고 반가운 바리스타님. (순간 주인님이라 쓸 뻔 했다) 커피봉투를 넘겨주신다. 이것도 맛 보라며 케냐도 조그만 봉투에 담아주신다. 덕분에 내 가방은 지퍼 근처에서부터 커피 냄새가 솔솔 난다. 킁킁대면서 함께 걷는다. 바보처럼 합정을 한 바퀴 빙 둘러서야 도착한 곳, 모자이크 일주년 파티. 커피랑 샌드위치를 오물오물하며 귀를 열고 함빡 웃는 즐거운 시간. 가위바위보로 한국대중음악상 씨디를 얻은 너에게 박수 를 보내려니까, 이럴 때면 원래 힘이 샘솟는다 한다. 무려 석 장의 씨디에는 반가운 음악도 낯선 음악도 모두 사이좋게 들어있더라. 첫번째 씨디 이번 트랙엔 '오늘밤은 어둠이 무서워요' 가 들어있다. 이 때의 목소리에는 얼마간의 수줍음이 담겨있다. 그건 신인 특유의 풋풋함일까 아님 노래 가사에 부합하고자 하는 설정일까. 그러나 저러나 정열님은 이름도 정열이시다. 
골목 어귀에서 동시에 노래했다. '사라아아앙으으으은~♪'

그러며 아마도 마주선 채로 한 손을 깍지끼고 이상한 왈츠를 추지 않았을까. 바람은 세찼다. 당인리 발전소 굴뚝은 이 밤도 연기를 뿜어올리겠지. 굴뚝 꼭대기 빨간 등이 번쩍번쩍 빛나는 풍경은 묘한 안도감을 준다.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 이제 다 도착한 기분, 하루를 마친 느낌 같은 것. 그곳을 떠난 지도 몇 년. 그래도 기억 속에 남는 게 발전소라 좋았다. 유행해 휩쓸려 들고 나는 고만고만한 가게들과 달리 발전소는 쉽게 사라지지 않을테니까. 번드르르한 프랜차이즈 간판, 근본 없는 삐끼들에 비교할 수 있을라구.
퇴근 후 이태원 어귀에서 만났다. 사위어가는 햇살을 맞으며 사이좋게 피자를 먹었다. 이런 데이트 너무나 꿈꾸던 것들이야. 하면서 나는 심부름 나온 듯한, 전투복 차림의 군인을 보며 '니 친구네' 한다. 너는 머쓱하게 웃었다. 웃으면서 아마도 어디일거라고 소속을 맞힌다. 여유여유 열매를 먹은 우리는, 어쩌면 지금의 날들을 미리 아쉬워한다. 네가 군인이 아니었으면, 이런 휴가는 없었을테지. 며칠 간의 시간을 온전히 쓰는 일. 아, 이제 백일도 안 남았다던가?

두 눈을 바라보고 있으면야 후광에 눈이 부시고 너를 제외한 배경은 모두 아웃포커싱. 하는 때는 이제 지날 때도 되지 않았나? 하여 형형하던 안광을 좀 풀어보려고 애를 써도 힘들다. 아아아주 그냥 좋아서. 이 좋음은 나에게도 바람직한 영향을 준다. 종종 그랬다. 사람좋은 척, 헤헤호호 웃다가도 어떤 순간이 되면 날이 섰다. 서늘해지고 싸늘해지고, 다시 안 볼 사람은 다시 안 봤는데, 그런 내가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런 태도가 마음에 들기도 했다. 아아아주 그냥 지 맘대로. 그랬던 내가 조금은 유해지고 부들부들 뽀송뽀송 말랑말랑 여튼 빵 반죽으로 말할 것 같으면야 서서히 발효가 진행중인지. 신기한 것은 이런 게 나만 생각하는 변화가 아니란거다. 너 역시 그렇다는 말을 주변에서 듣고, 스스로 느낀다고도 했다. 어쩜 우린 지난 시간 동안 멀찍이 떨어져서 캐치볼 같은 걸 한 게 아닐까. 허공을 가르고 날아와 글러브 안에 착 감기는 공. 우아한 포물선. 이야기를 나누는 새, 좋은 영향을 주고 받으며 둥글둥글해졌으니 역시 던지고 받은 건 빵 반죽인걸까, 생각해본다. (아, 랜치피자!)

이글루스 가든 - 하루에 한장. 사진 일기를 쓰자!

덧글

  • 2011/03/24 13:47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한량 2011/03/25 09:33 #

    까르르꺅꺅 옹알옹알헹헹 에헹
  • 아진 2011/03/25 15:11 # 삭제 답글

    진짜 오, 사랑! :)
  • 한량 2011/03/31 14:38 #

    이리 나른하고 졸린 것을 보니 아마 봄이 왔나보아
    다음주에 꽃 피려나? 뭐행 우리 또 만나서 치킨묵자 컹컹 ㅋㅋ
  • 2011/03/25 17:38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한량 2011/03/31 14:40 #

    제에주우! 오와.. 저도 얼마 전 호잇호잇 그럼 제주나 갈까, 하고 오월달 표를 알아봤는데
    없더군요.. 하긴.. 지난 이월부터 이미 솔드아웃. 흑
    꼭 그렇지 않더라도 우리 정말 사월에 만나요!
    돗자리 메고 도시락 싸들고 소풍 가고싶어 죽겠네요. ^_______________^ 봄의 고궁은 얼마나 예쁠꼬.
  • 2011/03/26 01:31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한량 2011/03/31 14:41 #

    ^_______________________^ 와 반가워 ㅎㅎ
    언니 컴이 망가져서 잘 쓰질 못해 ㅋㅋ 언제 살아날 수 있을지는 아직 모르겠네..
    요즘 슬슬 시험준비에 열을 올리고 있겠구나, 지겹고 막막하고 미치겠지만
    그런 시간이 나중에 보답으로 다가올거야. 힘내렴. :)
  • 바이올렛 2011/03/27 02:00 # 삭제 답글

    예뻐졌다!!!!! 역시 사랑으 힘
  • 한량 2011/03/31 14:42 #

    까페 가봐야지 ㅎㅎ 오늘 동홍오빠 생일
    근데 내 폰엔 오빠 번호도 없네 ㅠㅠ 잘 살고 있을까 돌하르방
  • 2011/03/29 00:32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한량 2011/03/31 14:42 #

    우리 감탄하며 밀어넣던 그 빵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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