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들어설 때와 달리 (불이 꺼지기 직전까지 나눈 이야기는 명화 베드씬 모음집) 약간 먹먹한 표정으로 나왔다. 영화의 내용을, 그리고 레알 병자 같았던 키이라 나이틀리의 지난 날을 이야기했다. 나는 헤일셤 꼬맹이들이 입은 영국사립학교 교복(과 체육복)이 어른어른 아른아른. 톤 다운된 스웨터와 잔꽃무늬 원피스 그리고 메리제인 슈즈의 여자아이들과 폴로 셔츠에 짧은 반바지, 곧은 다리, 특유의 미간 찌푸린 표정의 남자아이들. (이 표정은 영국남자가 제일 잘 어울리는 듯) 그래서 제가 영국에 가고 싶은 것은 아니고.
갑작스레 만났는데 그러고보니 마지막 만남이 작년 십이월 송년파티였구나 하여 홍언니는 날 보자말자 '너 결혼했냐?' 라고 하였다. '아니.. 장가갔어.' 농담을 하였으나 언니는 잊지 않고 혼인신고를 하였냐며 캐물었다. 옆에서 보라언니가 웃는데 '얘 진짜 하려고 했다니까 진지했어.'라고 정곡을 찌른다. 우리는 잠시 히히덕댄다.



했지만 절묘한 타이밍이었다. 홍언니는 지난 금요일, 사년팔개월 근속한 회사를 때려치우고 나왔다. 등산양말을 사야한다길래, 선물인가했더니 월요일 아침 열 시에 관악산에 갈 거란다. 퇴직금이니 실업급여니 하며 백수진입을 곱씹었지만 마냥 부럽기만 했다. 언니 성격이라면 백수도 그냥 백수가 아닐 것이다. 몹시도 규칙적이고 생산적인 백수가 될 것이다. 아침에 블랙커피 한 잔 마시고 싸이클 삼십분 탄다니 말 다했지 뭐.


새침한 봄날씨에 온종일 돌아다닌 탓인지, 방사능 머금은 비 때문인지, 계속 골골대고 있다. 특히나 손목, 발목 등의 관절이 자꾸 쑤시는 게 영 이상스럽다. 나만 그런 게 아닌 걸 보면야 역시나 명동의 감기신이 빙의한걸까. 명동의 감기신은 왠지 한중일 삼개국어 능통하실 거 같아. 요즘은 귀신도 능력있어야 먹고 사는 세상이니까.
+ 맨날 먹고 놀고 마실 궁리만 하는 우리라, 부산여행이며 (나는 맛집 네비 당첨) 태국 프로모션 여행 프로그램이며 (근데 허니문이라는 슬픈 이야기가) 오월 연휴의 제주행이며 (가서 마주칠 수도) 동동 떠들어대는데. 새로운 소식에 귀가 이따만큼 커져서 팔랑팔랑댔다. 제주에 집을 빌려 우리를 이끌었던 지영언니는, 이번 겨울 두 달 정도 다시 집을 빌릴 거랜다. 어디에? 하고 물었더니 발리래. 라는 말이 돌아온다. 입이 다물어지지 않고.. 언니 보고싶고.. 효도하고 싶고.. 그래서 올겨울엔 발리에 얹혀살러 가야겠다고 역시나 당사자없이 모종의 이야기가 진행되었다. 아, 발리!
이글루스 가든 - 하루에 한장. 사진 일기를 쓰자!


덧글
2011/04/13 00:33 #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한량 2011/04/15 09:08 #
히히 제가 산을 잘 못 타는거 빼고는 꽤 매력적인 이야기였어요 ㅎㅎ저는 아직 한라산도 못 올라가봤거든요.
아 그리고 안 그래도 어제 달이한테 열심히 떠들떠들했어요.
광주가면 같이 만나자구요. ^_____________^
낮엔 봄이지만 밤엔 바람이 꽤 부네요. 저는 콧물을 킁킁 달고 있어요.
감기 조심해요 :)
유달 2011/04/13 01:51 # 답글
나도 같이 그누나한테 효도할래
한량 2011/04/15 09:11 #
그럴까? 낑낑깡깡 두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열심히 효도해서 발리 갈까 우리? 호호호
바이올렛 2011/04/16 23:16 # 삭제 답글
아 감기. 쉬이 낫질 않는다. 으실으실.부산 기대에 몸이 부들부들 얏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