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우리는 먼지 다락방

생각들이 뭉쳐 떠돈다. 그것은 구석을 좋아하는 먼지들을 닮았다. 이리저리 산만하게 떠돌다 어두운 곳들로 내려앉길 좋아한다. 꾸준히 지켜보고 있기 어렵다. 훅 불면 팔랑팔랑 날아간다. 닦아내도 시간이 흐르면 어김없이 발견할 수 있다. 주제라고 하기엔 너무 거창하지만 아무튼 여러가지 갈래들이 피었다 진다. 언젠가는 갑자기 끝없는 허무함에 빠지기도 했다. 우리는 왜 사는걸까. 태어나고자 선택한 것이 아닌데, 그렇다고 내 손으로 생을 마감할 용기도 없다. 하루하루 무엇에 떠밀려 살아지고 있는걸까. 더없이 기쁠 때도 있지만 그것은 폭죽처럼 짧다. 대부분은 평범하고 어떤 것들은 지극히 눅눅하다. 남 부러울 것이 하나 없었던 왕자 싯다르타가 세상의 모습을 보고 고통의 바다라 말했다고. 수천년이 지났지만 그것은 진리같다. 물론 그것만이 진리라고 여겨졌으니 눈물이 찔끔 났겠지.

그러다가도 세상의 하늘은 시작한 이래로 지금까지 하루도 같은 모양이 없고, 구름이나 햇빛, 습도나 모든 것들이 달랐을테다. 그런 것을 생각하면 우주의 작은 먼지 알갱이의 알갱이의 알갱이의.. 뭐 대략 부스러기에 불과할 나의 마음을 채우고 남는 감동이 있다. 신기하다. 길가에 핀 꽃을 보면 누구 보라고 저렇게 열심히 꽃을 피웠을까 싶고. 플로리스트가 만들어내는 비싼 꽃다발이나 저 벌레먹은 꽃이나 태어난 사명을 다하고자 노력했다는 점에서 완벽하게 동일하다 싶고. 오직 사람의 눈으로 좋다, 나쁘다 가치를 매기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고 오만한 일인지. 삶이 피로하고 지칠 땐, 꽃이나 풀들을 보며 반성하고 위로를 얻는다. 쟤네들은 얕게 꾀 부리지 않았음이 분명하므로. 내가 완패다. 

그런 생각이 꼬리를 물어 대체 왜 살아야 하는걸까. 시름에 겨울 때, 문득 어떤 풍경이 떠올랐다. 가보지 않았으니 아마 어딘가에서 봤다거나, 글을 읽고 상상했을 터. 푸른 초원과 쨍하니 파란 하늘. 그리고 깜깜한 밤하늘에 쏟아진다는 별들. 나는 몽골의 초원이나, 이집트의 사막에 혼자 누워있고 싶어졌다. 그러면 이 강팍해진 마음을 누군가 쓰다듬어 줄 것 같아서. 이른 시일 내에 볼 수 없겠지만 그런 곳이 있다는 사실이 위안이 되었다. 하늘과 별들은 어디 가지 않을테니까. 건물 벽을 스치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바람이 내 볼에 불어닥치고, 조명과 싸우지 않는 별빛이 내 눈에 닿으면 울컥 울 것만 같아. 나는 '쏟아질 것 같은 별들'을 아직 만나보지 못했기에.

그래서 나는 책 속으로 고꾸라진다. 흰 종이와 검은 글씨들. 그 건조한 행간 사이에 온갖 사람들이 떠들다 퇴장하고,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들과 상상할 수 없는 모든 것들이 뒤섞여 각각의 형상을 만들어낸다. 별별 감정들이 몽롱하게 피어오른다. '내가 가진 좋은 생각을 너에게도 전해줄게' 의 순수한 의도(아마 어두운 동굴에서 횃불에 머리카락을 그슬릴 것을 각오하고 그린 벽화라든지, 점토판에 꼭꼭꼭꼭 쐐기문자를 새겼을 사람들과 똑같을)가 빛을 발하면 나는 온몸을 내맡기고 싶다. (반면, '나는 돈 좀 벌어봐야겠다' 의 의도에선 역한 비린내가 난다. 펄프를 제공한 나무에게 미안하다.) 그럴 때 책은 사람이 만든 것 중에 유일하게 유용한 것 같다. 그것 역시 길고 긴 시간의 관점에선 자잘해서 서글픈 노력이지만. 그래서 가여우면서도 귀여운 그런 것.


이글루스 가든 - 매일 매일 한 편의 글쓰기.

덧글

  • 2011/05/31 10:51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한량 2011/06/03 12:36 #

    그쵸. 좋은 책은 산란한 마음을 진정시켜줘요. 몰입의 효과겠죠..?
    '밤은 노래한다'를 도서관에서 빌려봤던 터라, 겉장 없이 새빨간 표지로 기억해요.
    색깔만큼 강렬했던 기억이 나요.
    김연수 작가가 '여행할 권리'에서 실질적 섬으로 남은 대한민국의 사람들은
    그만큼 상상력도 멈춘 걸 수 있다고 한 게 기억나요. 저 역시 그런 것 같아요.
    소소한 것도 소박한 것도 좋은데 가끔은 그런 사소설 이상의 거칠고 투박한 세계를
    상상할 용기도 근거도 없는 것 같아서 약간 절망하곤 한답니다. ^^

    슬슬 더워지는데 건강 잘 챙기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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