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하하 기념여행과 엄마 바람은 차고 우리는 따뜻하니

작년 씨네큐브에서 <하하하>를 영접하고 달은 말문이 막혔더랬다. 누군가 자신을 관찰한 거 같다며 낯부끄러워했다. 한동안 우린 '야 이 천사새끼야' 하고 깔깔댔다. 시간이 흘러흘러 요 근래 갑자기 달은 너털웃음에 몰두했다. '하하하 우리 술이나 한 잔 하자' 같은 대사를 막 치면서. 이렇게 되려고 그랬을까? 주말 점심나절 우리는 통영 버스터미널에서 만났다. 서울경부터미널에서 통영까지는 네시간 이십분 정도 걸렸다. 자다가 깨다가 하며 점점 쭈구리가 된 나는 힘들어 징징댔고, 마중나온 달은 그럴 줄 알았는지 만나자말자 커피우유를 물렸다. 몇 모금 쪼르르 마시다 외쳤다. 나 배고파!
멍게비빔밥느님
바다로 가득한 식탁에서 후루루룩 점심을 먹고 나니 조그만 통영항이 눈에 훤히 들어왔다. 여기 여기! 저기 저기! 하며 걷는데 하아 더워.. 습기 가득에 햇살 작렬. 답!답!한! 것들은 던져버려♬하고 싶었다. 해서 옷 다 찢고 싶다..하고 읊조렸다. ...그럴래? 하며 누군가 화색도는 얼굴로 반긴다. 하여 우리는 눈에 띄는 모오텔.. 구석으로 숨어들...
이고슨 나폴리 모텔 주차장이시다
아 너무 예의바른 어린이샷

휘청거리더라도 요 앞에서 박박 우겨 달을 어부바 해줬어야 하는데
그리고 꽈당 넘어졌어야 하는데
몹시 쾌하시다
해는 높이 떠서 나를 찌르는데 작은 달팽이 한 마리..도 그늘에 숨었을 점심나절. 우린 지글지글 익어갔다. 동피랑의 벽화도 벽화지만 나는 오밀조밀한 골목길과 꽃들이 예뻐죽겠더라. 저기 봐라 청바지 부자의 청바지들이 사락사락 말라간다. 달은 눈을 빛내며 오래되었지만 튼튼하고 큼지막한 집들을 탐냈다. 사실 그 탐구정신은 내가 불지폈다. 예쁜 슈퍼에서 비비빅과 설레임을 사들고 조그만 정자에 앉아 몸을 식히고 있는데, 햇볕에 달아올랐다 그늘에서 아이스크림을 쭉쭉 빨고 있으려니 몸이 흐물흐물해졌다. 그만 난간에 기대 머리를 훅 하고 뒤로 젖히는데 머리칼보다 빠른 속도로 떨어지는 것이 있었으니..  
(내가 빌려쓴) 달의 썬글라스

눈부시다고 징징대어 다시 차에서 가지고 와 빌려 쓴 주제에 저 축대 아래 풀숲 어귀에 퐁 하고 빠뜨려버렸다. 으 아 아 아 아! 달은 이리로 저리로 내려갈 길을 고심하여 뛰어다니고 나는 위에서 이를 어떡한담 동동거렸다. 조급한 나머지 분노의 설레임 썩션을 하며.. 내려갈 길이 도무지 보이지 않기에 나는 울상을 하고서 미안하다고 내가 사주겠노라 붙잡고 말하는데 달은 주워올 수 있다며 골목길을 파고 들어가 빈집 옥상에 기어올라 담벼락을 뛰어넘고 썬글라스를 구출한 다음 다시 뛰어넘고 골목을 뛰어올라 승전보를 알렸다. 아휴! 미안하다고 끌어안았더니 머리가 조그만해서 떨어뜨린건데 그럴 수도 있지! 한다. 게다가 (하도 잘 떨어뜨리다보니) 기술이 뛰어나서 아주 조금밖에 기스 안 났다며 칭찬해준다. 아 아 아...... 너 너무 대단하다고 화낼 수도 있는건데 하며 마음 속에서 존경심의 깃발이 펄럭펄럭 나부낀다. 멀리 세병관이 보이니 나는 찰진 억양과 적절한 스타카토를 동원해 문소리 성대모사에 힘쓴다. '이순신 장군은요, 그냥 영웅~이 아니에요! 성웅이에요 성웅!'
왠지 간식으로 멍게나 굴을 잡술 듯한 개님을 지나
그러다 내려오는 길 '모텔'과 완벽히 미스매치인 어린이 달의 기념사진을 찍는데
나는 뭐냐.. 무슨 커넥션이니 무슨 게이트니 연루될 것만 같네. 아, 그래. 로비 앞에서 찍었으니 로비스트 하자.
나폴리모텔의 위엄
그리고 기어코 더운 날 꿀빵을 사들고서
쩌덕쩌덕 손가락에 꿀을 묻혀가며 너 한 입, 나 세 입 하면서 거제로 향했다.
부모님 드릴 선물

그리하여 일박이일동안 달 부모님 집에서 어화둥둥 지내다 왔다. 지난번 뵈었을 때보다 약간 편해져서 어른들도 더욱 반겨주시고 나 역시 마음 편히 놀았다. 아직 며늘아기가 아니라 덜자란 마늘아기다만.. 할머니랑 속닥속닥 수다 떠는 것도 좋았고, 어머니, 아버지가 차려주신 진수성찬에 거하게 몸보신하고 잘 먹는다고 칭찬도 들었다. 저녁에 다함께 동네 한 바퀴 산책하면서 나는 마음이 뭉클했다. 아버님의 살짝 처진 눈과(나 원래 그런 눈매 엄청 사랑한다) 수줍은 미소가 좋았고, 아침에 한번 안아보자, 하며 안아준 어머니의 품이 좋았다. 둘이서 뭐라뭐라 이야기하는 걸 보시고 뭐가 그리 이야기 할 게 많노, 하면서 재밌게 잘 살겠네 하시는 것도 좋았다. 새로 얻은 부모님의 사랑 속에서 행복해하던 밤, 인생은 참 아이러니하게 엄마의 전화를 받고 울컥했다. 엄마는 혹시나 했던 검진에서 수술 날짜를 잡아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엄마의 빈혈 수치를 듣고서 아무런 지식없이도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고 수혈이니, 적출이니 하는 낯선 단어에 어지러웠다. 엄마는 원래 여리여리한 사람이 아니었다. 늘 건강하고 튼튼했다. 나는 그래서 엄마는 원래 그런 사람인 줄 알았다. 조금 아파도 약 먹고 자면 툭툭 털고 일어나는 사람. 엄마는 오십년동안 꾀 부리거나 엄살 피우지 않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아무리 배우고 배워서 똑똑한 듯 살아도 이렇게 바보천치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바보천치도 그건 알 것 같다. 무슨 아메바만도 못한 것처럼 엄마는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늦은 밤 살짝 건너온 달과 이야기하며 눈물이 핑 돌았다. 그 품에서 나는 많이 훌쩍거렸다. 다음날 버스터미널에서도 눈물이 뚝뚝 흘렀다. 가기 싫어 라고 울었다. 월요일이 되면 엄마는 수술날짜를 알게 될 것이고 나는 부산대신 서울에 가야한다. 출근도 해야 한다. 월요일이 되면 모든 것이 현실로 다가올 것이다. 슬프고 힘들었다. 
꾸역꾸역 버스를 타고 도착해 지하철을 타고 집에 가는 밤. 일요일이 허허롭게 지고 있었다. 정신을 놓았는지 역에 잘못 내려 집에 가는 시간은 더욱 늦어졌다. 마음은 천근만근. 달아나고 싶었다. 속세를 떠나고 싶어졌다. 엄마는 이따 저녁에 전화할 것이다. 수술과 입원 일정을 알려줄 것이다. 달은 엄마 병원에 같이 꼭 가자고 했다. 힘내라고 위로해드리고 함께 재롱 떨어 기쁘게 해드리자고 했다. 나는 고마워서 엉엉 울었다.

이글루스 가든 - 여행다니기

덧글

  • 2011/06/13 14:09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한량 2011/06/14 08:08 #

    날은 정말정말 무더웠어요. 햇살뿐 아니라 습기도 가득해서 습식 찜질방을 걷는 느낌 ㅎㅎ
    예전에 갔을 때는 아무래도 달 부모님이 좋지만 어렵기도 했어요. 당연한 거겠죠?
    부모님 역시도 뭔가 조심스럽게 잘 해주시려 하고..
    이번엔 달랐어요. 하루 자고 오는 것 걱정한 게 무색할만큼 좋았어요.
    근데 그러다 엄마 전화를 받고 마음이 착찹...
    almond 님이 말씀하신 거 맞아요. 뭐 뭔들 알겠냐마는 전혀 모르는 분야니까 무섭기도 하고 그랬어요.
    지금은 많이 진정되었어요.. 엄마 나이에 아주 희귀하거나 낯선 게 아니라하니까
    이걸 계기로 몸을 더 잘 돌보면 괜찮아지겠거니 위로하고 있어요.
  • 2011/06/13 17:48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한량 2011/06/14 08:10 #

    같이 기도해주신다는 말이 어찌나 감사한지. 고마워요 정말.
    얼굴도 모르고 이름도 모르는 dbm..(거기서 오신 거 맞죠? 히) 감사합니다.
    그리고 달이나 저나 해맑게 재롱떨기 자격증 보유자라 방긋방긋 병문안 잘 다녀오려구요.
    다시 한번 감사드려요. 힘나요 저 ^^
  • 2011/06/14 01:34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한량 2011/06/14 08:15 #

    제가 자란만큼 부모님이 늙어가신다는 걸 이번 기회에 확 깨닫게 되었어요.
    내가 어렸을 때의 부모님. 이삼십대의 젊은 부모님 모습만 생각하고 있었다는 게 참 바보같았어요.
    어제 엄마와 통화하면서는 둘다 울지도 않고 이야기 잘 했어요.
    수술날짜도 잡으시고 제가 날짜 맞춰서 내려갈거라 했더니 엄마는 뭘 멀리 오냐고 그러시면서도
    반기셨어요. 그게 또 짠했지만.. 씩씩하게 통화했어요. ^^

    엄마아빠 정말 보고싶으시겠어요. 멀리 있으니 더더욱요.
    저는 어릴 때는 그런 거 못했는데 나이 먹으니 느물느물 장난치고 애교부리고 땡깡부리고..
    뭔가 부모님의 강아지로 변하는 것 같아요. ㅎㅎ 그게 더 기쁨이 되겠거니 하구요. .. 아니면 어쩌지ㅎㅎ
    부모님께 잘 하고 더욱 기도하는 시간 되시길... 화이팅 고마워요 ^^/
  • 2011/06/14 08:18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한량 2011/06/15 13:24 #

    저희 엄마는 뚜렷한 자각증상이 없어서.. 그냥 손으로 짚이는 것이 있어서 병원을 가셨더니
    그렇게 되었어요. 그렇지만 좋게 생각하려구요. 더 크게 번지기 전에 알게 되었으니까요.
    몸조리 잘 하고 더 나아지셨다는 말씀이 큰 위로가 됩니다. 정말 고마워요... ^^
  • 2011/06/14 10:00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한량 2011/06/15 13:30 #

    아. 아. 아..... 그랬구나. 너도 맘고생 많이 했겠다..맞아 딸내미들이 엄마 친구가 되어드려야지.
    내가 자란 것은 생각 못 하고(그래도 작지만..) 부모님이 늙어가시는 것에 놀라다니. 어리석었어.
    우리 잘 하자. 날이 많이 더워. 완연한 여름같아. 칠월 중순 전에 꼭 만났으면 좋겠다.
    남은 하루 잘 보내 ^_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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