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rmata 일상

아이폰이 없는 지금, 삶의 면면이 달라졌다. 구호선 국회의사당 역 근처에서 만나란 말에 응, 하고 임시로 쓰고 있는 핸드폰 '전자수첩' 탭에서 지하철 맵을 열었다. 딸깍딸깍 버튼의 질감을 느껴가며 이리저리 찾았건만 없다. 구호선이 없어. 놀라운 발견이었다. 그래서 나는 지하철 개찰구 근처에서 지도를 찾아 역을 더듬었다. 그러고보니 대학생 때는 지갑 안에 서너번 접는 지하철 노선도를 넣어 다녔던 것 같기도 하고. 그날 한강 변에서 이 얘기로 아이폰 유저 셋을 빵 터뜨렸다. 나도 웃었다.

'카톡 답 없는 사람'이 되었고 책상 머리에서만 인터넷 하는 사람이 되었다. 한때는 베이커리 스토리니 레스토랑 스토리니 끝판왕... 을 앞두기도 했었는데 다 왕년의 일이다. 자기 전 사파리를 탐험하던 내가 다시금 페이지를 넘기고 있다. 무섭게 책을 읽고 있다. 여행 후 다시 찾은 도서관에서 나는 침을 줄줄 흘리며 책을 탐했다. 새로운 작가를 발견하는 일은 즐겁다. 빨려들어가 읽게 된다. 의성어 의태어가 착착 감기는 문장들에 부러움을 느낀다. 좋아했던 작가의 신작은 영 고역이다. 늙었다. 세계가 아닌 작가의 감각이. 빤한 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등장 인물들은 (쿨한 듯 하나 외로움 많은 싱글맘, 그녀를 '엄마' 대신 'ㅇㅇㅇ씨' 라고 부르는 조숙한 주인공 남학생, 싱글맘의 연하 애인, 살짝 삐딱하지만 속 깊고 발랄한 주인공의 친구, 그리고 주인공이 짝사랑하는 소녀는.. 얼굴은 희고 몸은 가녀리고 친구도 없고 성정은 예민하여 물어뜯은 손가락은 후드티 주머니에 감추고... 아뿔싸, 겉보기엔 멀쩡하나 어그러진 가족사를 가졌다.....) 나를 당황하게 한다. 그러고보니 KBS드라마 '학교' 같다. 딱 고때 감성 고때 스토리. 찾아보니 천구백구십구년도 방영...  

책만큼이나 나를 잡아당기고 있는 것은 자전거. 달은 작은 프레임을 찾고 구하느라 애를 많이 썼다. 주문을 넣고서도 한참, 바다를 건너 도착하고 나니 우리가 여행을 갔고, 그래서 만나기까지 오래 걸렸다. 그러고나니 비가 그치고 가을이 왔네. 요리조리 궁리하다가 피아트라고 지어줬다. (베스파는 울지도 않고 얌전히 잘 주차되어 있다.) 피아트는 반짝반짝 바라만 봐도 윤이 난다. 어여뻐 죽겠다. 달이 하나부터 열까지 고심하여 조립한 자전거라 감사가 풍년이다. 출퇴근은 물론, 매일 시간을 내어 달리고 있다. 날벌레들을 몇 마리씩 삼키며 귀뚜라미 소리를 들으며 어느새 개풀 정도로 자란 강아지풀들을 보며 그리고 하늘을 본다. 요즘 하늘은 날마다 그림이다. 분홍색 구름이 아무렇지 않게 떠있다. 이것 좀 봐, 나 좀 봐, 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냥 떠 있다가 스르르 흩어진다. 달릴 때는 모르겠는데 멈추고나면 땀이 후두둑 돋는다. 쏴아쏴아 샤워하는 기분은 정말 좋다. 어푸어푸 코끼리가 된 기분이야..   
그리하야 나는 요즘의 볕이 참 좋다. 히히

이글루스 가든 - 하루에 한장. 사진 일기를 쓰자!

덧글

  • dyanoa 2011/09/02 16:56 # 삭제 답글

    정말 많은게 바뀌는 것같아요
    좀 다르지만 전 없는동안 자유(?)를 느꼈죠. 일관련해서 전화걱정하지 않아도 되는(머 급한사람이 어떻게든 ..., 무책임의 극치를 ㅋㅋ)

    잘보고갑니다
  • 한량 2011/09/06 21:57 #

    원래 핸드폰 없애서 제일 불편함 느끼는 사람은 지인들이라잖아요.
    정작 본인은 천하태평만만세 ㅋㅋ
  • 노엘 2012/09/23 01:45 # 삭제 답글

    자기 전에 사파리를 하느라 한량님을 알게 되었네요. 저도이 휴대폰에서 좀 벗어나고픈데 늦잠자도 되는 날이면 아김없이.. 다만 저는 카톡 답장 없는 사람이에요. 정말 지인들이 당황해요 문자 보내라고 하면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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