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소와 프라도 빛을먹고사라져버린

미술관은 오전에 가는 것이 좋다. 햇살에 채 달궈지지 않은 보도를 밟아 미술관의 그늘에 숨는다. 묵직한 문을 열고 들어서면 빛을 담은 그림들이 늘어서 있다. 사람들이 몰려들기 전의 한적한 미술관 복도. 레이나 소피아에서 나는 조용한 미술관을 내 집 처럼 배회했다. 게르니카 앞에선 무릎을 꿇었다. 프라도 잔디밭에서 낮잠을 자기도 했지. 티센에선 모네와 드가를 보고 가슴이 뛰었고. 그래서 마드리드는 미술관의 도시로 기억된다. 작년의 일이다. 

바르셀로나 피카소 미술관에서 우리는 함께 또 따로 작품을 보았다. 벨라스케스 '시녀들'을 피카소 식으로 재현한 연작은 여전히 좋았다. 정말이지 좋았다. 그 앞에 엎드려 그림을 따라 그리던 소년들을 보았을 때도 참 좋았다. 얼마나 좋았냐면 잃어버린 아트티켓 때문에 다시금 줄을 서야할 때도 좋았다. 츄레리아에서 사들고 간 츄러스를 베어먹으며 우리 앞에 선 노부부를 보았을 때도 좋았다.

마드리드에선 더위에 지쳤다. 자주 침대에 틀어박혔다. 사위는 해가 서향인 창에 스밀 때면 집을 나서곤 했다. 게르니카를 다시 보고싶어 레이나 소피아에 갔을 때, 문이 닫혀있었다. 발길을 돌려 프라도로 향했다. 우리는 다른 속도로 그림을 보았고 나는 엽서를 사들고 카페테리아에 앉았다. 기억한다. 까페 콘 레체. 일쩜칠유로. 엽서를 썼고 어지러운 머리를 가누느라 애썼다. 로비의 의자에는 한국인 단체관광객들이 빠른 속도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알아들을 수 있는 말들이 핑핑 날아다니니 머리가 더 아파왔다. 달이 왔을 때 나는 다분히 안겨 칭얼대었다.  
이글루스 가든 - 이뉴이트의 사진동아리

덧글

  • 2011/09/05 10:39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한량 2011/09/06 21:53 #

    스트라이프 티셔츠는 스테디 아이템이죠.
    여름도 다 지나고 항해할 일도 없건만 뒤늦게 입고 싶어 눈독 들이고 있답니다.

    그리고.. 철권! 디아블로! 어머나 ㅋㅋ
    취향이 문제, 일 수도 있겠고 취향의 문제일 수도 있겠죠? ^__________^
  • 2011/09/06 03:57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한량 2011/09/06 21:56 #

    사진을 보며 한번 더 다녀오는 느낌이에요. 야곰야곰 사탕 녹여먹는 기분?
    독서일기 (독서감상문이라 쓰니 너무 학창시절돋네요 ㅋㅋ) 잘 읽고 있어요.
    포스팅의 한 줄 한 줄이 그냥 나온 게 아닌 것 같아요.
    문체며 단어 선택의 예민함에 매료되었답니다. 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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