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식탁 일상

퇴근길, 화분을 들고 오는 남자와 살고 있다. 집에 데리고 오니, 꽃들을 연달아 팡팡 피운다. 주말이면 해가 드는 방향을 따라 이리저리 옮겨놓아 준다. 잘 돌보아주지 못하는데도 제법 잘 크고 있다. 다들 겨울을 잘 났으면 좋겠다. 
먹고 남은 어묵탕에 라면을 넣고 다시 끓였다. 하루가 흘러 더 맛있어졌다. 얇다랗게 썬 곤약에 칼집을 내어 주름진 모양으로 만들었다. 이 모양을 만들었다는 것에 달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니, 가정시간에 안 배웠나? 매작과도 이런 모양으로 만들어 튀기잖아. 하고 잠시 뻐겼다.
퇴근길 화분을 들고 오는 것도 좋지만, 아이스크림 사오는 것은 더욱 좋다. 먼저 눈 뜬 주말 아침이면, 무릎담요 덮고 의자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조금씩 파먹는다. 잠에서 깬 달은 그런 나를 보고 다시 흠칫 놀란다. 어허, 빈 속에 아이스크림이 뭐 대수라고..
오븐에도 구워봤지만, 역시 군고구마는 직화냄비에 굽는 게 최고. 만 원남짓 주고 샀나, 한 이 냄비는 바닥에 구멍이 숭숭 뚫려있어 언뜻언뜻 불꽃이 보인다. 군고구마를 굽는 밤이면, 온 집안에 풍요의 향기가 밴다. 구수하고 달짝지근한 향이다. 어느 일요일에 동네 뒷산을 오르고 돌아왔다. 토스트한 식빵에 고구마 으갠 것을 발라 먹었다. 데운 우유를 곁들여. 나른한 몸과 마음이 흡족해했다. 그리고 예배 가서 잘도 졸았지. 
피쳐링 어머니 버전의 파전. 커다란 택배에는 별 게 다 들었다. 손질된 굴과 홍합에 밀가루, 양파, 고추를 썰어넣고 섞었다. 팬에 부은 후, 쪽파와 계란을 올렸다. 기름에 막 지져낸 전에 맥주 한 잔. 충만한 금요일이었다. 마지막 구운 한 장을 들고 동네커피에 배달을 갔다. 나중에 후기를 들었는데, 커피 마시던 손님이 어디서 배달온거냐고 물었다 한다. 배를 꺼뜨리려 계동길을 걸었는데, 오는 길 아이스크림 한 통을 들고 왔다. 좋은 산책이다. 
불고깃감 소고기를 사와서, 브리또를 만들었다. 대략 집에 구르는 채소들을 썰어넣고, 밥과 고기를 볶았다. 그리고 데운 또띠야에 올려 이리저리 말아보았는데..
잘도 터졌다.
급기야 대충 오픈한 상태로다가 먹었다. 멕시칸 스타일로다가 콜라를 콸콸 부어마셨다.
한밤중 집에 놀러온 친구와 그의 여자친구. 수다를 한참 떨었다. 갖고 싶은 사진을 고르라 했더니, 저리도 예쁘게 펼쳐놓고 진지하게 고른다. 나는 네임펜을 들고 고른 사진 뒷면에 2012. 09. 모리셔스 라고 적었다. 친구는 새로 산 만년필을 처음 개봉하여, 편지를 적어준다. 파란 잉크가 곱다. 글씨도 예쁘다. 의식의 흐름 같은 문장들을 한참 적다가, 몇 줄의 메시지를 남긴다. 종이를 살짝 접어놓는다.
빨래, 설거지, 냉장고 정리의 미션을 맡기고 나는 잠시 시내를 떠돌다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 동네 정육점에 들러 등갈비를 샀다. 백 그램 천 칠백원. 만 칠천원 정도 나왔으니 일 킬로 정도 되었으려나. 가지런히 뉘여놓고 굵은 소금, 후추를 뿌렸다. 잎이 무성한 바질을 뜯어 뿌렸다. 양파와 마늘도 함께였다. 채 썬 양배추와 양파와 함께 먹었다. 원시인처럼 뼈를 잡고 뜯으면서, 이건 가족끼리 먹을 메뉴라고 생각했다. 나도 몰랐던 집요한 구석을 발견하게 돼..
오늘 저녁은 어묵탕에 낙지를 넣었다. 머리채 들어 숭덩숭덩 가위질했다. 눈 내린 날에 어울리는 뜨끈한 국물이었다. 다만, 마주한 우리는 별 말이 없었다. 달은 달대로 묵묵히 밥술을 떠넣고, 나는 넥타이와 사원증도 채 풀지 못하고 밥을 먹는 달이 안쓰러워서 이야기를 삼켰다. 저녁을 먹고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 달은 다시 집을 나섰다. 회사로 돌아가야했다. 사방을 메운 눈을 뽀득뽀득 밟아가며 야근하러 가는 마음은 어떠할까. 그리고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나.

덧글

  • 2012/12/05 23:15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2/12/07 10:13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2/12/06 11:58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2/12/07 10:16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연홍 2012/12/07 01:42 # 답글

    한량님께서는 기쁨과 용기를 나눠주세요:)
    집으로 돌아올때 라던지.. 웃으면 즐거우니까:)
  • 한량 2012/12/07 10:17 #

    웃으면 즐거우니까 ^^
    달은 어제 출장을 갔어요. 어제는 저 혼자 잤답니다.
    오늘 돌아오지요. 웃으면 즐거우니까..

    몰래 앞머리를 잘랐답니다. 꺅! ㅋㅋㅋㅋㅋㅋㅋㅋ
  • smilejd 2012/12/07 11:28 # 답글

    아~ 요리도 잘하시지~ 맥주가 땡기네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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