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여행기 3 노 워먼 노 크라이 바람은 차고 우리는 따뜻하니

시차를 가늠하여 스케줄을 세울 필요가 없었다. 나는 알람이 없는 세상이 좋았다. 새벽이면 눈이 절로 떠졌다. 잠든 달을 두고서 테라스로 나서면 솨아솨아 소리가 먼저 들렸다. 힘차게 돌아가는 스프링쿨러들. 그 다음 들리는 소리는 새 소리들. 나뭇가지들 틈에서 온갖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 나는 커다란 타월을 덮고 의자에 기대 새벽의 소리들을 들었다. 차차 밝아지는 풍경. 문을 열고 들어서면 이불을 휘감고 있는 달이 있다. 더없이 아늑한 침대다. 길다란 달이 가로로 누워도 삐져나가지 않는 침대. 나야 온 사방으로 몸을 틀어도 제자리 맴돌기지만. 부스스 일어난 달과 나는 세수를 하고, 아침을 먹으러 나선다. 리조트 메인에 있는 부페다. 
자리를 안내받는다. 아침 나절, 가끔 가느다란 비가 내리기도 하여 우리는 지붕있는 자리에 앉는다. 만면에 웃음을 띤 아저씨가 다가와 커피? 밀크? 티? 묻는다. 나는 속으로 노래를 부른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마음씨가 좋아, 좋아, 좋아, 케익 먹을래. 고무줄 뛰기의 발걸음으로 음식을 떠온다. 대개 나는 풀과 과일을 골라오고, 달은 고기고기한 것들을 떠온다. 나는 자몽을 베어물고, 주스를 마신다. 코코넛을 얇게 썰어 부친 팬케익은 아주 마음에 들었다. 달달하니 좋았다. 
그리고 약속 시간에 맞춰 로비로 간다. 전날 책자를 보며 고민고민했었다. 섬의 곳곳을 돌아보는 여러가지 투어가 있었다. 나는 요트를 타고 바다로 나가는 투어가 하고 싶었다. 섬의 서남쪽 해안, 그리고 동쪽 해안. 서쪽으로 가는 투어는 야생 돌고래를 볼 수 있다하고, 동쪽으로 가면 작은 섬에서 놀다오는 것이었다. 나는 돌고래가 보고 싶었다. 돌고래와 함께 수영하는 것은 인생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 허나, 가능한 날짜를 따져보면 동쪽 코스를 가야한다. 로비에서, 우리를 실어줄 버스에 탄다. 한 시간여를 달리는데, 마음이 설레서 잠도 안 온다. 창 밖을 본다. 눈에 설은 나무들과, 작고 귀여운 차들과, 전세계 어디서나 한가로운 동네 개님들을 본다.
작은 동네 항구에 멈춰선다. 어촌 마을의 항에는 고깃배 대신, 요트들이 정박해있다. 주차장 같다. 조그마한 배를 타고 우리가 탈 요트로 다가간다. 각각의 요트에는 이름이 써 있었다. 블루 씨, 그린 씨, 같은 이름들이다. 우리가 탄 요트는? Vitamin Sea. 꽤 웃었다. 이거 너무 귀엽잖아.. 비타민 씨에 올라 바다로 나선다. 날이 흐릿흐릿해 요트에 탄 사람들은 하늘을 쳐다본다. 바람이 쌀랑하니 불어, 나는 비치타올을 몸에 감는다. 날이 궂으면 어쩌지, 걱정했다. 배는 모터와 돛을 이용해 먼 바다로 나아간다. 키를 잡고 선 아저씨외에 몇몇의 흑형 크루들은 날씨 걱정따위 하지 않는 눈치다. 이리저리 뱃전을 오가며 돛을 펴고, 밧줄을 감는다. 그러다가도 눈을 마주치면 윙크를 한다. 나도 덩달아 웃는다.
날이 거짓말처럼 개었다. 온몸에 인도양의 볕을 휘감고 누웠다. 곧, 첫번째 목적지에 도착했다. 다시 작은 보트로 갈아타, 육지 근처로 다가간다. 바다를 거슬러 오르니, 작은 폭포가 나타난다. 돌아나와 다시 망망대해로 나와, 비타민 씨는 잠시 정박한다. 여기가 스노클링 포인트. 넓다란 바다인데, 수심은 달의 키를 넘지 않는다. 나는 눈부신 속도로 원피스를 벗어제끼고 바다로 뛰어든다. 오리발을 몇 번 내저으니 쉭쉭 나간다. 너무나 좋다. 나는 마음껏 헤엄친다. 요트를 한 바퀴 도는 나를 달이 영상으로 담는다. 여전하다. 수영하는 나를 바라보는 달의 눈빛은, 아기스포츠단 공개수업에 참가한 학부모 못지 않다. 나는 그게 좋아, 더 먼 바다로 헤엄쳐 손을 흔든다. 친퀘떼레 생각이 난다. 그때야 스노클링 장비가 어디있나, 너무 더워 머리만 동여묶고 그냥 바다로 훅 뛰어들었지. 밑이 보이지 않는 군청색 바다에서도 재간을 부린 난데, 이 얕고 훤한 바다에서야 무슨 어려움이 있을까. 바다를 헤매다 요트로 돌아오니, 쿵쾅쿵쾅 아프리칸 리듬이 배를 울리고 있다. 고기를 굽고, 샐러드를 준비하는 크루들. 얼음섞은 럼콕을 돌린다. 바다에서 마시는 럼! 나는 해적이 된 기분이었다. 우리는 으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몰골은 십오소년 표류기를 하고서...
그리고 일로세프 섬에 도착. 세시까지 다시 여기로 돌아오란다. 우리는 짐을 펼 자리를 잡는다. 섬은 작다. 강원도 어드메 작은 해수욕장 같은 풍경이다. 숲들이 있고 그 사이 조그만 화장실과 샤워장이 있고, 작은 가게들에선 수영복과 비치타월을 판다. 아마도 중국에서 만들어졌을 기념품들과 함께. 바나나보트나 패러세일링 어떠냐며 묻는 이들이 있고, 튜브를 이고 다니는 사람들이 지나간다. 나무들의 생김새나, 바다의 모양새가 다를 뿐이다. 바다는 얕고 잔잔하다. 우리는 바다를 바라보고 앉아 사람들을 구경한다. 주로 젊은 커플들이 깔깔거리며 지나가고, 가끔 온가족이 나와 물장구치기도 한다. 우리 자리 근처에는 모리셔스의 로컬 맥주 피닉스를 나눠마시는 미국인 아줌마 아저씨들이 있다. 딱, 미국인 중년부부들 같다. 특히나, 한아름 불룩한 배에 콧수염을 기른 아저씨들은 정말 영화에서나 나올 법하게 '푸허허허허허' 하고 너털웃음을 터뜨리는데, 우리는 그게 또 웃겨서 몰래 웃었다. 자식들 다 키우고, 그동안 모은 돈을 쪼개 이 먼 곳으로 놀러온 부부들 같았다. 우리도 나중에 그런 여행을 떠나게 될까. 그럴려면 달은 지금부터 부지런히 콧수염을 길러야 할테다. 지구를 반바퀴 돌아 그것도 무려 신혼여행을 왔건만, 사람은 잘 변하지 않아서 나는 어느새 사롱을 감았다 풀었다하며 살풀이 춤을 추고 있다. 좋은... 한결같음이다. 
우리는 섬을 산책하고자 나섰다. 쪼리를 꿰 신은 나 때문에 달은 맨발로 다녀야했다. 진정 야생탐험가의 모습이었다. 나는.. 뭐랄까, 우연히 발견된 야생동물. 잘 봐줘야 모글리였다. 모글리는 섬 탐험에 신나서 역시나 덩실덩실 춤을 춰댔다. 빨강쪼리도 아니었건만, 목이 말라서야 춤을 멈췄다. 나무에 앉아 마음껏 우는 새들을 보며, 쟤들의 행복 지수가 서울의 우리보다 높겠구나 생각하기도 했다. 시간이 얼추 되었기에 다시금 짐을 챙겨들고 선착장으로 향했다. 돌턱에 걸터앉아 빠진 것이 있는지 확인했다. 저멀리 작은 보트가 다가온다. 보트에 올라 멀어지는 일로세프 섬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잘 주차된 비타민 씨가 보였다. 비타민 씨에 오르기 직전, 달은 외쳤다. 반지! 반지가 없어졌어!

응? 반지? 스노클링 할 때 반지를 빼둔 기억이 났다. 달이 반지를 달라기에 빼서 주었고, 달은 그것을 방수팩에 잘 넣어두었다. 그런데 다시 찾아보니 달의 반지만 있다. 나의 반지는 어디에? 재빨리 우리는 기억을 맞춰보았다. 그 이후로 방수팩은 꺼내지를 않았는데? 아.. 꺼냈구나. 선착장에서 마지막 짐을 확인할 때!

그러나 이미 섬은 멀어졌다. 사람들은 요트에 오르고, 우리가 오를 차례였다. 흐앙.. 나는 결혼반지를 인도양 작은 섬에 묻어두고 오는것인가. 달은 재빨리 흑형에게 뭐라뭐라 말을 한다. 흑형은 응? 오잉? 하더니 뭐라뭐라 이야기를 한다. 나는 나머지 짐을 꾸리고 있다. 그러더니, 달은 빨리 다녀오겠다 한다. 나보고 요트에 오르라 한다. 정말? 찾을 수 있겠어? 응, 내가 찾아올게! 그렇게 나는 요트에 오르고 달은 보트에 탄 채로 섬으로 다시 향한다. 아마 막내인 듯한 흑형과 함께.

우리 요트도 무작정 기다릴 수가 없는터라, 우리는 우리대로 갈 길을 간다. 요트는 몸을 틀어 먼 바다로 나아간다. 달이 탄 보트는 저만치 멀어진다. 나는, 무릎을 쪼그리고 데크에 앉아 멀어지는 달을 볼 수 밖에. 제법 멀어진다. 돛은 무심하게 팽팽히 당겨진다. 잘도 달린다. 그렇게 꽤 시간이 흘렀다. 나는 이미 페시미즘의 물결에 잠겨.. 반지야, 다시 사면 되니까. 하고 있다. 손가락으로 데크바닥을 긁으면서. 점점이 오가는 보트들을 바라보지만, 너무 다들 작다. 저 보트인가 싶어 바라보면 어느새 방향을 틀고, 이 보트인가 싶어 바라보면 스치고 지나간다. 그러다

저멀리 다가오는 보트가 있다. 가까워지는 두 사람. 그리고 달이 양 손을 뻗어 흔든다. 승리의 포즈다. 나는 푸하하 그제서야 웃고, 어느새 주변의 크루들과 사람들이 웃으며 박수를 친다. 보트가 가까이 다가온다. 달이 요트에 올라 반지를 끼워준다. 요트의 모든 사람들이 박수를 쳐준다. 새삼 프로포즈를 받는 기분이다. 여기, 이 바다에서 나는 새롭게 결혼반지를 낀다. 그리고 눈 총총, 귀 쫑긋을 해가지고서 달의 무용담을 듣는다. 선착장에 도착해 우리가 앉았던 자리를 샅샅히 훑는데 반지가 없더란다. 그도 그럴 것이, 그냥 화단있는 모래밭이니까. 혹시 자리에 앉아 놀던 곳에 있나 싶어, 가보려는데 함께 간 흑형(그의 이름은 도노반)이 그럼 시간이 너무 늦어져서 어렵다고 한다. 애타는 마음에 다시 찾아보는데, 반짝하는 반지.

그렇게 반지를 찾아 돌아온 달은 개선장군의 모습이다. 도노반은 자기만큼이나 기뻐했다고 한다. 요트에 오른 도노반은 달에게 럼~ 럼~ 럼~? 하며 럼주를 계속 권한다. 제가 더 신났다. 그리고 이어지는 도노반의 선곡은 '노 워먼 노 크라이'. 우리는 밥 말리의 목소리를 들으며 한결 애틋해진 마음으로 데크에 올라 볕을 쬔다.
그런 시트콤같은 일을 겪고서 돌아오는 길. 기대하지 않았는데, 돌고래들을 보았다. 배의 사람들은 모두 가장자리에 붙어 바다에 눈을 못 떼었다. 선장님은 이리저리 키를 틀어 돌고래 근처로 배를 몰았다. 한 사람이 손을 들어 가리키면 모두다 눈을 들었다. 돌고래들의 검은 지느러미가 번뜩였다. 수면 위로 뛰어오르는 돌고래들도 보았다. 돌고래들은 세상만사 시름이 어디있냐는 듯, 유유히 헤엄쳐 제 갈길을 갔다. 돌고래를 본 내 마음은 쿵쾅쿵쾅 뛰었다. 아.. 돌고래! 돌고래! 세 살박이같이 계속해서 옹알이를 했다. 돌아오는 버스에서는 쿨쿨 곯아떨어졌다. 푹 잠들고 일어나니 집 앞이다. 정말이지, 집에 돌아온 느낌이 들었다.

덧글

  • smilejd 2012/12/08 16:53 # 답글

    사진찍는거 넘 자연스러우세여~ 우선 사진만 구경하고 글은 셤끝나공 정독해야겠어욤 ㅋ
  • 한량 2012/12/11 10:04 #

    ㅋㅋ볕 좀 쬐고 수영 좀 했더니 모글리 다 됐어요.
    그냥 빵실빵실 웃고 놀았네요 ^_^
    시험 기간이신가요..!
    찐한 핫초코 한 잔과 함께 불태우셔요. 아시죠? 엉덩이 무거운 사람이 해낸다! ^^
  • smilejd 2012/12/12 11:21 #

    ㅠ ㅠ 총명탕 먹어야겠어요 힝~
  • 2012/12/08 22:12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2/12/11 10:04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MYMP 2012/12/08 22:44 # 답글

    너무로맨틱해요! 넘이쁜커플이세요ㅎㅎ
  • 한량 2012/12/11 10:05 #

    반지를 찾았으니.. 웃으며 쓸 수 있는 글이었어요.
    용감한 달에게 박수를 ^^ㅋㅋ
    저는 얼굴에 짙은 그림자 드리우고 단박에 포기했는데 ㅋㅋㅋ
  • 2012/12/09 02:09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2/12/11 10:06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2/12/10 06:52 # 답글

    링크 추가하고 덧글 남겨요. 웃는 모습이 참 자연스럽고 예뻐요.
    신혼여행은 모리셔스인가요? 인도양 지역이라고 하셨으면 동남아나 태평양 지역이 아닌 리조트는 그 쪽일것 만 같아서.. 멋있어요. 돌고래와 같이 수영하는 건 저는 해봤는데 은근 비린내가 조금.. 영화에서 보던 것처럼이나 상상만큼 멋지진 않았어요. ㅎㅎ
  • 한량 2012/12/11 10:09 #

    와 바로 맞추셨네요 ^^
    맞아요 맞아요 신혼여행이니까 그 멀리까지 영차영차 간 것 같아요.
    다른 여행과 달리, 예약 끝나고 나서는 모든 걸 손 놓았는데..
    (결혼 준비가 바쁘니까 미리 공부하거나 준비할 생각을 아예 못 했어요)
    가보니 너무 좋아서 날 가는게 아쉬웠어요. ㅎㅎ

    돌고래와 수영! 와 진짜 해보셨구나.
    비린내 ㅋㅋ 돌고래의 체취인가요....
    저도 언젠가 꼭 해보겠습니다!
  • 2012/12/10 11:26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2/12/11 10:11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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