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분히 姓적인 문제 쓰기

 남성들이 정조에 대해 가지고 있는 강박은 생래적인 불안에서 기인한다. 남자와 여자의 사이에서 아이가 태어난다. 그 아이의 엄마는 언제나 분명하지만, 아빠가 누구인지는 언제든 약간의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내가 아이를 낳았을 때, 아이 아빠의 가족들이 내 아이를 두고, 자신들의 가족 중 눈은 누구를 닮고 웃는 모습은 또 누구를 닮았느니 하는 이야기를 하는 걸 들으면서, 난 어쩐지 우습다는 생각을 잠깐 스치듯 한 적이 있다. '그 집 핏줄이 섞였는지 아닌지 어찌 아는고……'하는 그런 마음. 유전자 검사를 해보지 않는 이상, 엄마가 그렇다고 하니 그런 줄 아는 거다.
 결국 그들이 의지할 수 있는 건 여자의 정조뿐인 것이다. 외삼촌, 이모는 가짜가 없지만, 고모, 큰아빠, 작은아빠들 가운데는 가짜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그러니 사람들이 대체로 외가 친척들과 가까운 것은 당연한 이치다. 모계사회에서는 엄마와 외가 친척들을 중심으로 가족이 구성된다. 의심과 긴장, 정조에 대한 강박이 불필요하기에 서로에 대한 넘치는 관용과 성관계에 대한 자연스런 인식이 가능하다. 부계사회, 즉 가부장사회는 모계사회가 필요로 하지 않았던 정조에 대한 강요와 긴장 그리고 권위를 요구한다. 자신의 몸으로 낳지 않은 자손에 대한 소유권은 물론, 그 자손을 낳은 여자에 대한 소유권까지 누리기 위해서는 많은 무기들이 동원되어야 하는 것이다. p.29 목수정 <야성의 사랑학>

어린 시절, 가끔 그런 생각을 했다. 내가 나중에 아이를 낳는다면 어떤 이름을 짓는 게 좋을까. 같은 생각. 스스로 인식하기 이전부터 죽을 때까지 따라갈 이름. 나는 '이름'이라는 말이 '이르다'에서 온 것이 참으로 귀엽고 또 멋지게 여겨졌다. 나는 발음이 부드럽게 이어지고, 연상되는 느낌도 좋은 이름의 후보들을 떠올려봤다. 그때 그때 멋지다고 생각한 이름은 달라졌다. 하지만 그 어여쁜 이름들은 항상 미지수로 남겨졌는데, 나의 남편될 이의 성이 정해지지 않았으므로. 고심해 떠올린 예쁜 이름도 어떤 성과 붙여 부르느냐에 따라 느낌이 많이 달라졌다. 희귀한 성을 가진 남자와 결혼하게 되면 모든 것이 원점으로 돌아갈 수도 있었다. 아이의 성이 왜 남자의 성을 따르게 되는지는 생각해보지 않던 때였다. 

아빠의 성과 엄마의 성을 이어 만든 이름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야 아, 그럴 수도 있구나. 생각했다. 성인이 되어 부모의 성을 다 따서 만든 이름으로 바꾼 사람들도 보았다. 보편적인 한국의 이름과는 조금 다른 사 음절의 이름들. 그만큼 자신의 생각을 도드라지게 표현하는 이름들. 그것을 두고 왈가왈부하는 사람들도 보았다. 그럼 그런 이름을 가진 사람들의 자녀는 무한정 길어지는 이름을 갖게 되는 것이냐? 혹은 하나의 성을 따온다면 누구의 성을 따서 물려줄 것이냐? 같은 이야기들. 자신의 이름을 바꾸지도, 자녀에게 두 개의 성을 물려주지도 않을 것 같은 사람들이 유독 핏대를 세웠다.

혼인 신고 서류를 뽑아 작성할 때 그런 항목이 있었다. '자녀의 성·본을 모의 성·본으로 하는 협의를 하였습니까? 예/아니오'. 이런 항목이 있다는 것을 알면 어드메서 한복에 갓 쓴 할아버지들이 뒷목을 잡으실 것 같았다. 아직 한참 후의 일이겠으나 일단 표시를 해둬야 했으니, 이건 어떻게 할까? 라고 나는 짐짓 달에게 물었고, 달은 잠깐 멈칫하며 어? 했다. 우리는 아니오에 동그라미를 쳤다. 사실 크게 상관없었다. 달의 성을 따르든, 나의 성을 따르든.

하지만 생각했다. 아이를 두고 누구씨 집안의 아이, 란 말을 듣는다면 어색할 것 같다고. 누구씨 집 몇 대 손이니 하는 말은 지금도 세상에 흔하니까. 많은 부모의 머리를 싸매게 하는 항렬자도 남자 쪽 집안에서만 내려오는 것이 신기하고 또 우스웠다. 누구씨 집 제사에 전혀 다른 핏줄의 여인네들이ㅡ막말로 내 기저귀를 갈아줘봤어, 내 등록금을 내줘봤어 류의 말이 튀어나오는, 혹은 뵐 기회도 없이 돌아가셔 더없이 낯선 누군가를 위해ㅡ지지고 볶아 상을 차리는 것도 그렇다. 기껏 밤 좀 깎은 누구씨 집 남자들이 엄숙하게 절을 마치면 상을 물려오는 것도 층층의 서열 다른 여자들이다. 그 노동의 고됨 사이에서 동서는 어쩌고, 형님은 어쩌고, 어머니는 어쩌고 하며 역정을 내는 것도 분을 삭히는 것도 다 누구씨 집안이란 이름으로 모인 터에 일어나는 일이었다. 그렇게 만든 바운더리에서 소속감을 느끼는 것도 이상하고, 소속감을 느끼라고 바운더리를 만드는 것도 수상했다. 항렬자가 같다고, 성이 같다고 그 즉시 무한한 애정과 진하게 당겨오는 핏줄의 힘을 느낄 수 있는게 아니니까. 나는 탯줄 이상의 어떤 줄을 만들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언젠가 낳게 될 아이가 여러 겹의 줄로 먼저 정의되지 않고 그 자체의 인간으로 자라나기 원한다. 나와 달이 만든 아이라는 감동과 감사는 나와 달 안에 있으면 되니까. 생각은 여기까지 번진다. 나는 아이에게 달의 성도, 나의 성도 혹은 두 개를 조합한 성도 물려줄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일단 우리의 성이 부계가족에게서만 내려온 성이니 핏줄을 가리려는 세상의 원래 목적에도 부합하지 못할 것이거니와 물려주나 물려주지 않나 아이는 우리 아이일테니까. 이런 이야기를 한다면 물려줄 성을 지닌 아버지나, 물려주지 못할 성을 지닌 아버지나, 다른 성을 지닌 어머니들도 기함을 하실 것이다. 어쩌면 달도 놀랄 수 있겠지. 나는 그리해도 되고 그리 하지 않아도 된다(사실 의미가 없으므로 상관도 없다의 회색노선)의 쪽이니 아이는 달의 성을 물려받을 가능성이 클 것이다. 그래도 나는 속으로라도 성 없는 이름을 불러주고 싶다. 그래서 온전하고 부드러운 이름을.   

덧글

  • 2013/05/04 01:53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한량 2013/05/04 09:53 #

    예찬씨 댓글을 읽다보니 저는 이말년시리즈의
    씨 없는 수박이... ㅋㅋㅋ
    으아니 의사 냥반 내.. 내가..... 고자라니!
    ㅋㅋㅋㅋ
  • 2013/05/04 02:45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한량 2013/05/04 10:02 #

    아.. 비단 항렬자를 고집하는 것 뿐 아니라
    이 짧은 에피소드 하나에서도 나름의 엄격한 가풍을
    느낄 수가 있어서...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ㅠㅠ
    맞아요. 그게 무에 그리 중요한 것일까요?
    말씀처럼 배 아파 낳은 것도 나이고
    보듬고 보듬어 키울 것도 나이며
    제일 많이 불러줄 사람도 나인데..
    왜 엄마의 의견은 가볍게 묵살당하는지.
    게다가 그런 꼬장꼬장함=엄격=권위라고 생각하시는
    사고의 흐름이 더 숨 막히게 하는 거겠죠.
    '우리 집안은 이래야 되느니라' 에서의 집안은
    어디 범위까지를 이르는 것이며
    그 범위 안의 사람이 왜 같은 기치 아래 강제로 모여야 하는지 답답해요.
    그리고 그 범위는 왜 아버지-아들을 중심으로
    이뤄지는지도요.
    외가에서 그렇게 강한 어필 하는 경우는 드물잖아요.
    저는 어느 쪽이든 거부감이 들어요.
    아이는 아이 그대로의 삶,
    그리고 다음으로 가장 가까이서 지켜볼 일차 보호자의 의견이
    제일 존중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런 생각이 '이상적인 생각'으로 분류된다는 게
    이해가 잘 가지 않아요.

    한가지 덧붙이자면.. 이름은 상징적으로나 실제적으로나
    아이덴티티와 밀접한 연관이 있으니 더더욱 그리 생각하구요.
  • 파란밤 2013/05/05 12:48 # 답글

    블로그 우연히 들어왔는데 글도 잘 쓰시고 얼굴도 예쁘시고 부부 두 분 다 정말 보기 좋고 행복해 보이세요! 뭔가 저도 한량님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부럽네요. 자주 자주 들러서 글도 읽고 구경도 하고 하려고 해요. 좋은 글 많이 써주세요, 팬 하려구요 :) 아 좋은 주말 보내시길 바랍니다!
  • 한량 2013/05/08 11:16 #

    인사가 늦었네요. 주말에 부모님이 다녀가셔서 나름 바빴어요.
    이리저리 모시고 다닌다고 헥헥 ㅎㅎ
    어린이도 아니고 어버이도 아닌 애매한 요즘,
    어디 선물 받을 데도 없고.. ㅎㅎㅎ

    봄이라 그런지 졸음이 쏟아지네요. 커피 한 잔 마셔야 겠어요. 힛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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