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이십주년 베이비 일상

나는 숫자에 약하다. 약하다고 생각하니 더욱 약해졌다. 세상 사는 데 수학이 무슨 필요있어, 사칙연산만 잘 하면 되지. 수능을 앞 둔 구월, 수학의 정석을 장렬히 덮으며 생각했다. 지금에야 물론 세상 사는 데 필요한 것들을 손 쉽게 가려낼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그래서 그때 생각이 얼마나 치기어린 것인지도 잘 안다. 수학을 포기하지 않았더라면.. 의 회한에 젖을 나이도 지났다. 허나 정말 슬픈 것은, 사칙연산마저도 잘 안 된다는 사실이다. 연도를 계산하고 나이를 짐작하는 그런 사칙연산도 이제 꽤 어려워졌다. 
어려워, 못 해, 라고 생각해서 더 그렇게 된 것일까. 그러니 '크라잉넛 칠 집 발매 기념 공연' 이러면 저장과 인출이 쉽지만, 십오주년 공연이 이천십년이니까.. 이십주년은 언제지? 라는 생각이 들면 나는 손가락을 하나하나 폈다 접는다. 정말이다. 그때 내가 스물여섯이었으니까... 이십주년이면 몇 살이지? 로 넘어가면 다시 한 번 손가락을 접었다 편다. 왜 나는 서기에 태어나지 않았지? 골똘한 표정을 하고서.

여기서 정답. 이십주년은 이천십오년이며 그때 나는 서른 하나. 달도 서른 하나.
결혼한 지 얼마나 되었나를 세어볼 때도 역시 손가락이 동원된다. 십 개월 남짓. 같이 산 건 거기에 한 달 정도를 더하면 된다. 처음엔 꽤나 투닥거렸다. 사람들이 그리 말할 때 정말 그럴까 생각했는데, 이를테면 아주 사소한 생활의 잔재들에서 싸움의 불꽃이 튄다고. 정말 그랬다. 지금 생각해보면 굉장히 소모적인 일이다. 퇴근하고 돌아와 새벽까지 둘이서 집안일을 놓고 투닥투닥한다는 것은 아, 정말 피로한 일이다. 함께 살기 전까진 몰랐을 그런 일. 많은 시도와 회의를 거쳐 이제는 평화의 시대가 도래했다. 둘다 어느정도 일이 손에 익기도 했고 무엇보다 만족할 만한 수준으로 잘 타협했기 때문이다. 달네 회사에서는 달을 두고 남성동지들의 지위를 깎아내리는 혁명분자라 생각한다지만, 나는 달을 추켜세워준다. 너는 새로운 유형의 남편이라구. 시대를 앞서가는 남자.  
바람직한 결과로다. 그러나 우린 알고 있다. 다 큰 어른 둘이서 사는 것과 언젠가 새 식구와 함께 사는 것의 난이도는 다를 것이라고. 달과 내가 쇼파 밑에 기어들어가 먼지를 찍어 먹는다거나, 늘어놓은 재활용 쓰레기들에 입 맞추거나 하진 않으니까. 앞으로 우리는 조금 더 깔끔떨고 조금 더 바쁜 나날들 속으로 던져질 터.
사람들이 가끔 그 아마도의 세계에 관해 물어온다. 아기는 언제쯤 생각하고 있어? 같은 질문. 아마 진정으로 궁금할 부모님들은 오히려 말을 아끼신다. (다만 말없이 부추와 장어를 보내주실따름..) 친구들이 물어올 땐 호기심이 어른어른하는 것이 보여 귀엽다. 그보다 괜히 할 말 없는 이들이 진지하게 물어오는데.. 회식 자리에서의 상사가 그렇다. 아직은 계획 없어요. 라고 말하면 갑자기 훈수하고 나선다. 빨리 낳는 게 좋다는 말과 함께 너무 인위적으로 그러고 그러진 마. 아니 지금 이 영감이 피임에 관해 이야기를 하시나? 님, 저랑 무슨 사이라고.. 오지랖이 지나치십니다. 는 표정을 짓는다. 할 말 없으면 하지를 마. 를 이마에 써놓고 웃는다.
그러나 오빠들이 물어왔을 때 달은 해맑게 웃으며 답했다. 이십주년 베이비 만드려구요. 그 이후였다. 손가락 셈을 열심히 하며 고때가 언제인지, 우리 나이가 얼마인지. 간신히 계산을 끝내놓고나면 새로운 수식이 튀어나오는데, 음.. 구 개월 정도라니까 언제쯤.. 음.. 그럼 언제쯤 나오려나.. 같은 더하기 빼기의 세계로 빠져든다. 혹시라도 그전에 아기가 생긴다면의 지점으로 접어들자 걱정이 더해졌다. 행여나 만삭의 몸으로 슬램할 수는 없을테고, 아기를 매달고 술 마시기도 어려울텐데. 그러자 조카바보인 친구가 말했다. 걱정 말고 나한테 맡기고 가! 말이라도 반가웠다. 그래, 넌 좋은 삼촌이 될 테지. 수유가 어려운 것만 빼고.

덧글

  • 다방민^^ 2013/07/14 20:15 # 삭제 답글

    저 이 방송 봤어요
    은아님 간간히 나오시길래 너무 신기해하며(?) 봤다는...^^
  • 한량 2013/07/24 23:41 #

    ㅋㅋㅋㅋㅋ웃기죠 ㅋㅋㅋㅋ 카메라 가까이 올 때마다 참으로 뻘쭘했어요. ㅎㅎ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