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른 출간 파티, 첫번째 <지금 아니 여기 그곳, 쿠바>

지난 주 내내 나는 어딘가 좀 들떠있었다. 커피를 과하게 많이 마신 밤 같은 느낌. 주말의 오후를 떼어내고, 주중의 저녁을 쪼개어 이런 저런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친구들 불러서 푸지게 노닥거린 적은 있어도, 이렇게 거하게 뭘 해 본 적이 있어야지. 처음엔 과연 얼마나 사람들이 모일까, 걱정했다. 생일이라고 잡은 약속에, 다른 테이블들은 사람들로 가득한데 나 혼자 덩그러니 앉아 친구들을 기다리는 마음. (실제로 그런 경험이 있다. 물컵 하나를 두고 앉아 오래도 기다렸었다.) 그러다 블로그에 공지를 띄우고 하나둘 달리는 댓글들을 보고 있자니, 커피 한 잔을 더 마신 느낌이었다. 흥분과 번민이 교차했다. 자, 내가 과연 이걸 잘 할 수 있을까? 이틀 동안, 오후부터 밤까지. 잘 해낼 수 있을까? 마치 가창 시험 순서를 기다리는 기분이었다. 앞 번호 아이가 마지막 후렴 부분을 부른다. 내 마음은 콩콩 뛴다. 이윽고 선생님이 내 이름을 호명한다. 교탁 앞으로 불려나온 나는 안절부절 못하는데, 어느새 반주가 시작된다. 선생님의 목소리. 자, 시작.
전날 밤, 늦게까지 큼지막한 세팅을 해 두고 잠들었다. 나는 일곱시가 되기도 전 일어났다. 자잘하게 손가는 것들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마당의 풀꽃을 꺾어 유리병에 꽂는 달. 달은 이 사진을 보더니, 지나치게 빨갱이 같다고 했다. 내가 보기에도 그래 보였다. 달이 수소문해 구한 국기를 찍어, 소설모임 사람들에게 보내니 포토존이라며 신나한다. 그리고 덧붙인다. 청와대 산자락 밑에서, 불순한 세력들이 모여 국가 전복을 꾀함. 좌익용공빨갱이, 같은 말들이 채팅창에 난무한다. 나는 빨갱이 소굴에 어서 오라며 환영의 메시지를 뿌렸다. 마치 삐라 같이.
 
차게 익어가는 맥주들을 보곤, 가정집 냉장고가 맞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대체 뭐 먹고 사냐며 반찬들의 안부를 물어오기도 했다. 그런 거 안 키웁니다. 나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정오 무렵이 되자, 해가 나기 시작했다. 나는 방금 감은 머리를 툭툭 말리며 기뻐했다. 시간은 곧 한 시를 넘어섰다. 마음은 더욱 초조해졌다. 괜히 이리저리를 둘러보며, 안절부절하지 못했는데. 그때! 현관문 유리에 그림자가 어른어른거린다. 어서 오세요. 하고 문을 열었다. 파티의 첫 손님이다. 그걸 전하자, 손님 두 분은 다소 긴장한 얼굴이 되었다. 마수걸이의 느낌이 이런걸까. 두 분을 테이블로 뫼시고 앉아 이야기를 시작했다. 약간의 낯가림은 맥주와, 어설픈 모히또로 곧 무너졌다. 요령껏 이어지는 자기 소개 앞에서, 우리 넷은 모두 머리를 끄덕였다. 아, 세상은 역시 좁고 좁구나. 사람은 착하게 살아야 해. 이어지는 여행 만담. 함께 까르르거리고 있자니, 이어 등장하는 손님들. 꺄, 여기 이글루스 오프 모임이네요. 번개라고들 하죠. 정말 그랬다. 다들 선뜻 입 밖에 닉네임을 꺼내길 저어하셨고, 이것이 이글루스인의 정체성임을 모두 확인할 수 있었다. 저는 눈팅만 하던 사람이라.. 같은 문장을 실제 발화하는 언어로 듣는 것도 귀한 경험이었다. 눈팅! 어디선가 새롬 데이터맨의 노이즈가 들리는 듯 했다. 아무렴 어떠랴, 달은 곧 멋진 모히또를 내오기 시작했고 나도 안면 근육을 풀고 방실방실 웃고 있었다. 하이네켄 케그는 열심히 거품을 토해냈다.
이어 달의 친구가 등장했다. 둘은 마당을 한참 서성이다, 골목길 초입에서 저 멀리 산봉우리를 헤아리고 있었다. 한 눈에 봐도 부동산 업자들 같았다. 나는 친한 척 유들유들 다가가, 친구가 타고 온 오토바이에 덥석. 사실은 낑낑거리며 올라타는 영광도 누렸다.
여러모로 바쁜 호스트였다. 오후 나절이 되자 손님들이 계속 밀려온다. 나는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마실 것들을 챙기고 간식들을 날랐다. 그도 그럴 것이, 농담으로라도 자주 놀러오세요. 라고 말할 수 없는 언덕 위 집이기 때문에. 포스터에 있던 도보 6분을 보고 걸어오신 분들은, 하나같이 목덜미에 땀이 흥건했다. 뭐 마실 것 드릴까요? 하면 잠시 목소리를 가다듬고 어..얼음물이요. 라고들 하셨다. 그 언덕길을 올라오다 잠시 쉬면서 바람을 쐬고 오셨다는 분들도, 자칫 싸움으로 번질 뻔 했다는 분들도 계셨다. 가쁜 숨을 내쉬며 들어오셔서는 주섬주섬 선물을 꺼내시기도 했다. 케익, 마카롱을 비롯한 고급 주전부리들부터 (심지어 두바이에서 날아온 대추야자도 있었다. 달의 눈이 돌아갔다. 이건.. 남자에게 좋다는.. 하며 말을 다 잊지 못하였다.) 귀여운 책갈피, 직접 만드신 양초. 싱싱한 포도, 와인들까지. 제일 압권은, 세 병들이 주스 세트였다. 이걸 들고 여길 올라오시다니.. 송구스러운 마음이 가득 들었다. 누군가 말씀하셨다. 포스터 지도에 등고선을 그렸어야 한다. 는 주장에는 고개를 숙이고야 말았다. 역시 걸어 올라온 홍일점은 자켓을 휙 벗어들고 쇼파에 털썩 자리잡았다. 그 모습은 완연한 아버지였다. 저, 조선일보 드릴까요? 물어보았다. 
케익에 촛불을 붙이고, 왜 초가 세 개죠? 묻는 나의 질문은 가볍게 묵살당하고. 엉겁결에 촛불을 분다. 홍일점은 자기가 사 온 케익도 아니면서, 아래층에 내려가 인심을 쓴다. 새로운 사람들과 말을 붙여보고 싶은걸까. 아, 가여운 사람.
의자를 끌어다 모인 자리에서, 여러 이야기들을 한다. 여러 번의 박장 대소를 들었다. 초면인 사람들끼리 모여 이렇게 해맑게 놀 수 있다니. 나는 흐뭇한 기분이 들어, 계속 계속 맥주들을 날랐다. 자리 잡고 앉아 여행 이야기도 하고, 책으로 나오기까지의 이야기도 한다. 그만큼의 빈도로 들을 질문은, 이 언덕길을 어찌 출퇴근 하시나요? 였다. 장은 어떻게 보나요? 도 있었다. 장.. 은 안 봅니다. 술만 사요. 술만. 뭔가, 이해하시는 눈빛들이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일치하는 사람이구나. 이런 눈빛인 것 같기도 했다. 
해가 지기 시작했다. 자리를 떠나는 분들께는, 온 마음을 담아 내려가는 길 조심하시라는 인사를 했다. 떠나시는 분들보다 더 많은 분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친구들 무리가 도착하고, 달의 친구들도 모였다. 블로그에서 오신 분들도 함께 하고, 스토리지북앤필름의 사장님도 오셨다. 나는 두 손 들어 환영했다. 퇴근길 이 먼 곳까지 들러주시다니요. 하면서. 이윽고 도착한 바이크 동호회 분들은 모두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어느새 일층은 '오늘 우리 처음 만났어요'의 장이 되었다. 쑥스럽고 데면데면한 분위기가 아니었다. 슬쩍 끼어앉은 그곳에선 어느새 호구조사가 펼쳐지고 있었다. 약간 사랑의 스튜디오 분위기도 났다. 와, 손님들 대단하다. 싶었다. 엄청난 친화력들이다. 바쁜 호스트는 안심을 하고, 이층의 친구들에게로 갔다. 그들은 모여 치킨을 시켜먹자고 작당을 하고 있었다. 나름 합리적인 선택을 하고들 있다. 뼈 발라 먹기 귀찮으니, 순살로 하자. 비비큐에 전화를 걸어 순살 두 마리를 시키는 것까지 보고, 나는 또 여기 저기로 뛰어다녔다. 생각보다 빠르게 치킨이 왔다. 나는 카드를 들고 나가 결제를 하고, 받아든 치킨을 이층으로 배달했다. 어서들 먹어! 하고 밖에 다녀오니, 이 녀석들이 다들 안 먹고 모여만 있다. 왜 안 먹어? 물어보니, 젓가락을 찾는댄다. 한아름의 나무 젓가락을 꺼내주는데, 박스를 연 애들이 입을 모아 말한다. 어! 뼈가 있어! 예리한 눈썰미였다. 주문이 잘못 들어갔나? 하고서야 눈에 들어오는 치킨 박스. 박스에는 '호식이 두 마리 치킨'이란 문구가 선명했다. 이건 무슨 꽁트도 아니고. 영수증을 찾아보니, 다른 집에 배달갈 것이 잘못 왔다. 결국, 전화를 걸어 사정을 말하고 곧 아저씨가 치킨을 받으러 다시 왔다. 누군가는 그냥 먹을까, 하며 허기에 못 이긴 욕망을 토해냈고 또 누군가는 그런 애를 만류했다. 나중에야 도착한 '순살' 치킨을 나도 몇 조각 얻어 먹었다. 정신 없는 와중에 먹었는데, 참 맛이 있었다.
일층엔 오디오와 스피커가 제 활약을 하는데, 이층엔 음악이 없다. 음악이 없으니, 음악을 만들어내고들 있다. 타로마스터 보라언니는 우쿨렐레로 이른 캐롤송을 불러주었고, 건 오빠는 기타와 우쿨렐레를 튕기고 있다. 역시나 아버님 의자에 앉아, 퇴근한 아버님 자세로다가. 
여기는 여전히 화기애애 웃음꽃 만발. 바이크 동호회 한 분이 가시려는 걸, 이제 제비뽑기를 할 거라며 붙잡았다. 생각보다 쉽게 잡혀주신다. 나는 이층 바닥에 엎드려 제비를 만든다. 친구들의 수다를 들으면서. 거기에 말을 거들며 느릿느릿 만들고 있노라니, 아래층에서 제비뽑기를 재촉한다. 아, 지금 갑니다! 친구들을 모두 데리고 일층에 모여들었다. 이미 의자는 모자라다. 다들 촘촘히 모여있다. 
돌아가며 제비를 뽑고, 번호를 불러 상품을 발표한다. 꽝과 조커가 하나씩 나왔다. 몹시 훈훈하게도, 조커를 뽑으신 큰 형님이 자신의 제비와 꽝을 바꾸자 하신다. 오, 이럴 수가. 나는 얼른 하나 남은 시가를 꺼내 선행에 보답한다. 모인 사람들 모두 박수를 친다. 금도끼 은도끼의 산신령이 된 기분이다.
제비뽑기의 열기가 너무 뜨거웠던 탓일까. 모두들 자연스레 마당으로 나왔다. 때마침 온도가 적절했다. 춥지 않고 시원하여, 신발을 벗는 이들도 있었다. 산 공기가 가득하고, 군데 군데 피워놓은 모기향 덕에 마른 풀 타는 시골 냄새가 난다. 그건 쿠바에서의 냄새였다. 여행에선 돌돌 말린 모기향을 저녁부터 피워놓고 잠들었다. 머무른 곳들마다 방충망이라곤 없어서. 다같이 나와 함께 바람을 쐬는데, 여행 생각이 났다. 그 여행을 계기로 책이 나왔고, 책이 나온 덕에 이렇게들 모였다. 오랜 친구들이, 처음 뵈는 손님들이, 그냥 얼떨결에 놀러온 분들이, 나에게 축하를 건넨다. 덕담을 해주신다. 싸인을 해달라고 책을 꺼내신다. 마지막 손님들이 가시고 나서, 잊기 전에 오신 분들을 하나하나 세어보았다. 이날 하루에만 서른 세 분이 방문해 주셨다. 달과 내가 왜 그리 바쁘게 뛰었는지, 그럼에도 왜 즐겁기만 했는지, 알 것 같았다. 이렇게 가창 시험의 일 절을 무사히 불렀다. 제법 즐겁게, 싱글벙글 웃으면서. 가끔은 신나는 제스처도 곁들이면서.

덧글

  • AB형 그녀 2014/09/30 04:32 # 답글

    크흡. .두번봐도 부럽네요. .이런 기회가 또 있을런지!! ㅠ
  • 한량 2014/10/02 19:12 #

    언젠가 또 있지 않겠습니까? ㅎㅎㅎㅎ 그때 꼭 오셔요!!
  • 2014/09/30 16:20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한량 2014/10/02 19:13 #

    아 ㅜㅜ 바쁜 주말을 보내셨네요.
    싸인이야 언제든지, 또 기회가 있을테니까요 ^^
  • 2014/10/01 13:02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한량 2014/10/02 19:16 #

    아 정말 감동이었는데.. 네임펜! ㅋㅋ
    말씀해주신 이야기와 비슷한 얘기들을 이번 자리에서도 들었었는데,
    결국 미루지 말고 묵혀두지 말고 하자! 하면 뭐라도 된다! 이런 얘기들이 나왔어요. ㅎㅎ
    다들 하드에 사진들을 많이도 쌓아두고 계시더라구요 ㅋㅋㅋㅋ
    그거 안 꺼내면 영원히 안 나와요. 저도 그렇구요 ㅠㅠ
    포토북 사이트 들어가셔서 만들면, 펼쳐보게 되니까요. 도전하셔요!

    다음에 또 좋은 자리 있으면 또 뵈어요 ^^ 책 선물 받고 친구분들이 좋아하셔야 할 텐데..
    소심한 걱정 남기며 인사합니다. ^_^
  • 알로하 2014/10/01 22:03 # 삭제 답글

    가보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 아쉬워요.
    그날 밤 공기가 얼마나 달큰했을지, 한량님 글을 통해 담뿍 느껴지네요. 이번 주에도 소소는 열리던데, 참여 안 하시나요? 혹시라도 한다면 뵈러 가고 싶어요.
  • 한량 2014/10/02 19:17 #

    와.. 오신 분들 다들 신기했었어요. 어느새 어우러져 이런 저런 이야기 나누며
    연락처 나누고 다음 모임을 약속하며 집을 나서시는데..
    호스트는 그저 술만 날랐을 뿐입니다. ㅋㅋㅋ
    소소는 이제 안 나가구요. 다음에 또 그런 자리 있으면 여기 올릴게요.
    우리 만나요 ^^
  • 2014/10/02 17:16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4/10/02 19:19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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