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른 출간 파티, 두번째 <지금 아니 여기 그곳, 쿠바>

그 밤, 피곤에 지친 나는 그대로 잠에 빠져들고, 달은 기나긴 설거지를 시작했다. 대강의 정리까지 마친 후 침대로 왔을 때 나는 업어가도 모를 만큼 자고 있었다 한다. 그렇게 곤히 자고 일어나니, 어제 아침처럼 마음이 조마조마하진 않았다. 자신감이 좀 생겼나 보다. 달은 바이크 동호회 행사에 다녀온다고 분주하다. 나는 느긋하게 어제의 남은 잔해들을 치우기 시작했다. 청소기도 돌리고, 스팀 청소기로 바닥도 닦는다. 모름지기 흥겨운 술자리는 술을 좀 쏟아줘야 제 맛. 끈적한 바닥과 테이블도 닦는다. 선물 받은 러그는 소파 폭과 딱 맞는다. 중고로 산 소파는 흰 광목 커버로 되어 있어, 어떤 누구라도 감당하기 어려웠었다. 어제는 외할머니가 만든 꽃무늬 이불을 끼워넣어 커버로 삼았었다. 요란하게 울긋불긋해 제대로 촌빨 날리는 컨셉. 오늘은 한결 차분한 느낌으로 가 볼까. 나는 빈둥대며 커피를 마신다. 마실 거리와 먹을 거리들을 정리하고, 달에게 메시지를 남긴다. 맥주, 탄산수, 과자 좀 사와줘.

날이 흐렸다. 찬란한 햇살을 기대했건만, 온 사방 공기가 촉촉하다. 마당 뒤편 숲 속에서 자주 보이는 고양이 가족 생각이 난다. 엄마 고양이 한 마리와 아기 고양이 네 마리. 특히나 발발 떨면서 엄마를 제대로 못 따라가는 두 마리. 어디 고양이 뿐이랴, 개구리 생각도 난다. 현관 입구에 쌓아놓은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려는데, 뭔가의 움직임이 스쳤다. 다시 비닐을 들어보니, 아무 것도 없다. 뭘 잘못 본 거겠지, 하고 쓰레기를 치우는데 조그만한 갈색 개구리가 가만히 앉아 있다. 개구리의 당황함이 느껴진다. 나 지금 좀 곤란하다구. 현관문을 열어주니, 뿅 하고 튀어나간다. 그 뒤로도 몇 번 마주친 것을 보면, 여기에 살고 있나보다. 그 뒤론 현관문을 열고닫을 때마다 신중해진다. 혹시라도 개구리 발이 끼면 어쩌나 싶어서. 이렇게 촉촉한 날이면 개구리는 좋겠네. 고양이 걱정에, 개구리 생각에. 짚신 장수 아들과 나막신 장수 아들을 둔 할머니가 된 기분이다.
동호회 행사를 다녀온 달이 주렁주렁 장 본 것들을 들고 왔다. 가벼운 점심을 먹고, 자리를 마저 준비한다. 커피를 홀짝 홀짝 마시고 있자니, 오늘의 첫손님이 온다. 광주에서 올라온 친구. 오랜만이다. 오랜만이라도 낯설지 않은 친구다. 우리가 처음 만난 것은 이글루스, 얼굴을 처음 본 것은 경리단길. 그리고 광주에 내려가 놀던 시간들. 충장로를 누비며 여러 조합의 술을 들이켰었다. 어언 오 년쯤 되었을까. 그간의 이야기들과 고양이 이야기도 하고 있는데, 새로운 손님이 왔다. 멀리서 오신 분이다. 역시나, 전혀 관심 없던 친구와 동행한 길이다. 맥주를 따라드리니 몹시 감탄하며 드신다. 그럼 또 내가 흐뭇하지, 나는 자처하여 주모가 된다. 여행에 관한 이야기들과, 독립 출판물에 관한 이야기들을 나눈다. 킥킥 농담이 튀어나오고, 겨울에 다시 방문을 약속하는 맹세도 한다. 슬슬 떠나시려는 참인데, 철유 오라버니가 오셨다. 크라잉넛 팬으로 알게 된 오라버니는 쾌활한 모습으로 나타나, 어느새 좌중을 이끄는 호스트가 된다. 많고 많은 이야기들 끝에, 우리는 함께 단체 사진을 찍기로 한다. 마당에 나가.
낮술은 달고, 어제 손님들이 가져오신 귀한 마카롱도 달다. 차게 만들려다 얼음이 낀 맥주대신 와인을 마시기로 한다. 파리 방브 벼룩시장에서 사 온 낡은 따개가 오라버니 손에서 제 몫을 다 한다. 오라버니는 손님들의 조합을 신기해했다. 이글루스? 처음 듣는데? 우리는 더듬더듬 설명을 한다. 저기, 그게 되게 오래된 블로그 서비스인데요.. 네이버랑 티스토리 뭐 그런 거 말고? 네.. 역사는 꽤 되었구요. 예전에 제가 좋아하던 분들 홈페이지가 이글루스에 있어서 가입을.. 지금은 많이들 떠났지만.. 어째 우리의 어조는 조금 힘이 없이 수그러든다. 이글루스 유저들의 정체성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순간이다.  
어제보다 한결 조촐한 자리들이다. 그만큼 농밀한 시간들. 밖이 어둑어둑해지고, 새로 온 친구와 동생을 맞는다. 와인을 비우고, 치즈를 먹으며 계속 수다를 떤다. 늦은 시간 방문해 준 예찬씨 부부를 맞이하고, 블로그를 보고 오신 두 분을 맞는다. 조촐한데 북적인다. 예찬씨 소개를 하며, 예전 결혼식 영상을 찍어주신 분이에요. 소개하자, 락앤러브! 라는 탄성이 터져나온다. 약간 가족 오락관 분위기가 되어간다. 말이 나온 김에 다 함께 관람을.
첫 장면에서 나는 아빠다! 아빠! 하고 소리를 질렀고, 이어지는 영상에 다들 깔깔거렸다. 앳되다.. 하며 어깨를 떨기도 했다. 크라잉넛 공연장에서 달이 등장하는 모습에서는 다같이 웃어버렸다. 그렇게 낄낄대고 논다. 여행에 대해서, 블로그 글에 대해서도 이야기 한다. 인상 깊었던 것은, 이번 파티에 오신 많은 분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특정 글을 콕 찝어 이야기 해주셨다는 거다. 한 분이 어떤 글 이야기를 꺼낸다. 그러면 다른 분들이 그 글에 관한 이야기를 곁들인다. 구절까지 읊어주시는 분들을 보면서, 나는 나도 잊고 있던 기억을 떠올렸다. 맞아, 그런 이야기도 있었지 하며. 더불어, 이렇게 해주시는 말씀들이 황송해 몸 둘 바를 몰라했다. 정말.

그때 나누었던 이야기들로, 이렇게 블로그에 남기는 기록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본다. 지극히 개인적인 어떤 이야기들. 이것은 나에게 어떤 의미일까. 부지런하다는 말도 많이 들었었다. 이것은 어떤 종류의 부지런함일까. 하루키는 장편 소설을 쓰기 위해서 거기까지 자신을 몰고 가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했다. 즉 쓰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이, 몸이 근질거리는 상태로 끌어가는 것. 장편 소설에 비해 훨씬 미약한 서사지만, 블로그도 그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어떤 일들에 대해 잠시 떠오르던 생각이 켜켜이 가지를 친다. 출근길이나, 잠들기 전이나, 어떤 걸 보거나, 그 아무때나. 그것은 가지런하지도, 말끔하지도 않다. 방구석에 굴러다니는 먼지 뭉치들과도 같다. 그런 것들이 모이고 모이는 어느 때가 되면, 글을 쓰고 싶어진다. 우선 음악이 필요하다. 약간의 마실 것도. 커피나 차나 맥주나 혼자 홀짝이기 좋은 것을 옆에 둔다. 그리고 새글쓰기 창을 띄운다. 아무 말이나 쓰기 시작한다. 생각들을 이어 꿰맨다. 문장을 옮기기도, 단어를 고치기도 한다. 문단을 나누며 호흡을 조절한다. 마지막으로 전체 글을 읽어보며 수정을 한다. 그리고 글 올리기 버튼을 클릭한다. 무엇을 위한 것이 아닌데, 이상스레 나는 이 시간들이 좋다. 대부분의 시간들이 어떤 필요를 위해 움직여야 하는 시간인 반면,(게다가 나는 그런 리스트들에 약한 사람이다. 줄 잇는 의무 앞에서 머리를 숙이는 소시민이다. 태업이나 파업, 작은 거절도 어려운 약한 자다.) 글을 쓰는 시간은 아무 필요도, 강요도, 데드라인도 없다. 내가 좋은 시간에,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들을 쓰면 되니까. 그런데 그걸 좋아해주시는 분들이 있다. 사실, 어떤 이유로 통신망이 끊어지고 복구가 불가능해진다면 모두 날아가버릴 이 공간에서. 그 가볍고 약한 연결망 사이에서 이렇게 실재하는 분들을 만나고 글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 것. 그게 제일 감동적이었다.     
몰랐는데, 가희와 나는 발끝을 맞대고 이렇게 앉아 있더라. 우리 좀 귀엽네. 신기하게도, 어제도 그렇고 오늘도 그렇고 그때 그때 테이블에 둘러앉은 분들의 조합에 따라 계속 다른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이런 이야기들 저런 이야기들이 많이 오르고 내렸다. 서로들 모르는 분들이 마주 앉아 즐거이 논다. 그걸 바라보는데, 기분이 참 좋았다. 쑥스러울 것도, 몸 사릴 것도 없이 자리는 계속 이어진다. 한바탕의 제비뽑기도.
빈 병들이 늘어가고, 늘어가다, 냉장고를 가득 채웠던 맥주들이 동이 날 무렵까지 이야기들이 이어졌다. 흥미로운 주제들이 여럿 등장했다. 가족 오락관의 분위기는 여전하여, 서로의 신상을 터는 대신 맞추기 놀이를 하며 놀았다. 제법 적확한 것도 있고, 영 아닌 것도 있어, 나는 끝까지 발뺌하고 애매하게 웃으려 했으나.. 그만 다 털리고 말았다. 무서운 사람들이야. 거기서 번진 여러 취업기들이 또 재미있어, 나는 털린 신상은 잊고 호들갑 떨며 좋아했다. 구직자와 면접관의 구도를 완전히 뒤집은 이야기에 이렇게 좋아하는 걸 보면, 역시 소시민임이 분명하다. 더불어 들은 모 기업의 면접 질문에는 또 격분하고 말았다. 진짜 쓰레기네요. 초면이니 순화해 말했는데도. 그렇게 떠들고 떠들다, 급기야 진화심리학이란 주제에 이르자 술자리는 토론의 장이 되었다. 다들 꽤 진지했다. 진지한 얼굴을 하고서 술은 계속 마신다. 배가 불러도 안주가 있으면 또 계속 들어가는 법. 치즈와 크래커들을 씹는 사이 밤이 깊었다. 월요일을 잊은 자리. 아니, 월요일이 되었다. 모든 직업적 성취나 고충에 관한 이야기를 한방에 잠재운 대사가 있었으니, '난 요즘 알람을 안 맞추잖아.'란 말을 하신 철유 오라버니는 열띤 토론을 계속 이어갔다. 가엽게도 알람을 맞추어야 하는, 그것도 여섯시에 일어나 일곱시에 집을 나서야 하는 나는 호스트의 본분을 잊은 채 화장을 지우고 내려왔다. 다행히 우리집의 모든 조명들은 어두침침하여, 그리고 손님들은 모두 취한 상태라 안심할 수 있었다. 슬슬 자리를 정리하고, 손님들을 배웅했다. 이틀 간 맥주만 오십리터 넘게 비웠다. 분에 넘치는 마음들을 받았다. 또 다른 책도 내달라는 말, 파리 여행기도 기다리고 있다는 말들도 들었다. 몰랐으니 언덕을 올라왔지, 이제 난이도를 알았으니 다신 안 오시겠지. 해도, 또 놀러오겠다며 초대해달라는 인사들을 들었다. 아무렴, 우리 그러려고 이사온거지. 달과 나는 그런 말들을 주고 받다 잠에 들었다. 좋고, 좋은 밤이었다.


덧글

  • 아앙 2014/10/02 21:57 # 답글

    가끔 들러, 아니 가끔보다는 더 자주 들러 글을 보며 좋아하다가 나가곤 하는 사람입니다. 궁금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한 자리네요.^^ 낯섦에 대한 공포가 있는 저로서는 한량님이 참 부럽습니다. 같은 소시민으로서, 한량님을 응원합니다. 건필하세요.^^
  • 한량 2014/10/05 16:17 #

    ^^ 감사합니다. 저도 사실 굉장히 그런 사람이라서요.
    제가 그런 자리 갔으면 여기 오신 분들처럼 그리 즐거이 어우러져 놀지 못했을 거예요.
    다음에 또 이런 자리 만들어보려구요. ^^ 기회되시면 용기내어 놀러오세요..!
    저랑 같이 어색하게 놀아요. ㅎㅎ
  • 은냥 2014/10/03 04:48 # 삭제 답글

    마음이 팍팍해질때 간간히 이곳에서 한량언니의 일상을 훔쳐(?)보며 힐링하는 아낙네랍니다. ^^;;;;;;;;;;;
    아아.. 정말이지 저 곳에 계신 분들이 너무너무 부럽습니다. 머언 울산이란 곳에서 껌딱지에 발목잡혀 사는 나날이라 마음만은 몇번이나 찾아갔습니다요. 출간파티 공지를 보고, 진지하게 8개월 아가야 들쳐업고 서울행 표를 끊어볼까 생각까지 해봤지만... 역시 쉽지 않은 여정일것 같아 눈물을 머금고 마음을 추스렸어요. ㅎㅎ
    출간파티.. 예상했던 것처럼. 아니 그것 보다 훠얼씬 더 더 더!! 유쾌하고 행복한 시간이었던것 같아 포스트를 보느 내내 입가에 미소가 떠나질 않아요.
    또 언젠가 있을 한량언니의 두번째 출간파티에는 딸래미 데리고 꼭 갈수 있길 바래봅니당.^-^/
    항상 행복하시길 !! ♡
  • 한량 2014/10/05 16:19 #

    더 대단한 일을 하시고 계세요. 정말.
    간접 경험으로도 아기 키우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님을 아는데..
    그걸 8개월 째 잘 하고 계시다니 멋져요. ^^
    며칠 전 간 결혼식에서 백일 된 아기를 안고 온 친구를 보면서
    정말 대단하다 싶었거든요. 다행히 아기가 낯선 곳에서 많이 투정을 안 부리기도 했지만.
    밥 먹다가도 아기가 얼굴을 찡그리면 일어나 달래고 재우고 능숙하게 하더라구요.

    나중에 또 출간 파티를 할 일이 생긴다면 ^^
    그게 그리 가까운 날은 아닐테니.. ㅋㅋㅋ
    꼭 놀러오세요!! ^^
  • 2014/10/05 20:58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4/10/06 18:34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4/10/05 22:35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4/10/06 18:36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infatuation 2014/10/06 00:32 # 답글

    저도 이 공간의 애독자입니다
    따뜻하고! 어서 책도주문하고 내년 쿠바에 갈 계획도 세워볼게요. !♥
  • 한량 2014/10/06 18:39 #

    ^_^ 네!!! 여행 준비하시면서 혹시 궁금하신 점 있으시면
    언제든지 물어주세요. 제가 아는 한 잘 대답해 드릴게요.
    시간이 좀 지났지만.. 그만큼 빠른 속도로 변하는 곳은 아니니
    부족한 답변도 유효할 것 같아서요. ^^

    책 재미있게 잘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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