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파장 <지금 아니 여기 그곳, 쿠바>

언리미티드 에디션 여섯 번째. 스토리지 북앤필름의 부스 한 켠에 자리를 잡았다. 그렇게 꽉 찬 이틀. 그간 이러저러하게 들려주시던 말씀에도 반신반의했던 것이 사실이다. 정말요? 하고 물으면 정말요. 란 대답이 돌아왔다. 정말이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UE6을 찾을 줄 몰랐다. 이것 저것 테이블 위에 책을 부려놓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 테이블 세팅을 조금 조금씩 바꿔본다. 시계를 보고 남은 시간을 가늠해 본다. 오픈 몇 분 전, 전투 준비 완료. 라며 인사를 나누었다. 밖에는 입장하려는 줄이 이미 늘어섰다고 했다. 그러고 나면 한 시간, 두 시간이 훌쩍 훌쩍 흘러갔다. 사실적인 열기가 공간을 메웠다. 옆에, 앞에 부스들과 대화를 나눌 수도 없다. 눈도 마주치기 어렵다. 사장님과 나는 교대로 바깥 공기를 쐬러 나갔다. 그때마다 숨을 훅 들이쉰 채로 몸을 움츠려야했다. 인파에 떠밀려가지 않기 위해.
그러면서 흘깃흘깃 다른 부스들을 본 나는 그저 작아만졌다. 나온 지 얼마 안 된 책. 그것도 한 권 달랑. 종이액자로 준비한 사진들이 전부였다. 굿즈도, 홍보용 스티커도, 명함도 없어서 나는 그때마다 애매하게 웃었다. 스치는 눈길과 책을 들추는 손 앞에서 이런 저런 설명들을 했다. 반가운 얼굴들을 만나면 호들갑을 떨었지만, 처음 보는 얼굴들 앞에선 꽤 진지해졌다. 쿠바 여행 가보고 싶어요. 란 이야기들을, 사진이 참 좋아요. 이런 말들을 마음에 담았다. 짧게 스치던 시간들이 제법 길어지기도 했다. 처음 만나는 사람과, 여러 이야기들을 이렇게 나눌 수 있을까. 책 한 권이 만들어 내는 파장은 제법 길었다. 서로의 여행에 대해, 서로의 카메라에 대해. 때로는 인쇄 방법과 종이에 대해서도. 그리고 우리들이 살아가는 방식에 관해.
둘쨋날 마감 무렵이 되어서야, 작정하고 다른 부스들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몇 가지들을 소중히 안고 돌아왔다. 그걸 만들어내기까지의 노고가 눈에 보였다. 여긴 다들 그런 사람들이 모인 자리니까. 그렇게 오고 가는 인사들 사이에서 우리는 과자를, 귤을, 초콜릿들을 나눠먹었다. 그렇게 끼니를 때우면서도 서로의 안부를 묻고. 더불어 책의 안부도 물으며 많이 파셨나봐요. 아니에요. 무겁게 지고 돌아갈 것 같습니다. 사이에서 터지는 웃음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 좋아만 하다가 직접 만들어보기로 한 사람들. 그 모습이 귀엽고 어여뻤다.

녹초가 되어 돌아와 누운 밤. 잠이 쉽게 오지 않았다. 여럿 창작자들이 모여 만드는 열기가 내 마음에 남아 떠돌았다. 어렴풋하게만 짚어보았던 생각들에 새로운 것들이 더해졌다. 머릿 속에선 다음의 이야기들이 그려졌다. 지나고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그때 어떻게 그렇게 했지? 싶은 생각. 현실의 나는 소심하고 나약한데. 게다가 매일 시간에 쫓겨 사는데. 과거의 어떤 나는 겁도 없이 일을 저지른다. 해 보지 않았으니, 어려울 것이 없다. 저지르기 전까지는. 책 만들기도 그랬고, 출간 파티도 그랬다. UE6도 역시. 그렇게 반추하다 보면 인생의 중요한 순간들마다 나는 무모한 결정들을 하곤 했다. 그 옛날, 달에게 전화번호를 물은 밤처럼.

쌓인 피로를 업고 출근해서는 자주 졸았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모니터를 응시하며 생각했다. 좋아하는 일을 찾아 조물조물대며 시간을 쓰는 것. 그러기 위해 돈을 벌러 직장에 매여있다는 생각을 했다. 음지에서 일하며 양지를 지향한달까. 그러는 사이 내 마음, 아니 내 영혼 같은 무언가는 모니터 앞 나에게서 반쯤 빠져나간다. 허공에 슬몃 떠있다. 거기엔 새로 만들고 싶은 책과 거기에 담고 싶은 이야기들이 겹쳐 출렁인다. 정교하지 않은, 투박한 덩어리들이 툭툭 흘러간다. 시린 발 아래론 피곤이 긴 그림자를 매달고 있다. 나는 적당히 나태하고 싶다. 양지바른 곳에 담요 덮고 누워 그렇게 시간을 흘려보내고 싶다. 생각해 보면 그렇게 하릴없이 지나는 날들에서 뭔가 튀어 나왔다. 주로 쓸데 없어서 재미있는 것들이. 뭐라도 안 나오면 또 어떠랴. 그러면 수풀 속에서 개구리라도 톡 튀어나오겠지. 가을의 복판, 그런 생각을 했다.

덧글

  • 2014/11/05 11:57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4/11/09 21:18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4/11/06 16:17 # 삭제 답글 비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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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량 2014/11/09 21:20 #

    그러려고 회사 다니고 돈 버는 것 같아요.
    주말을 위해 월요일 출근을 하구요.. 퇴근하려고 출근한다는 농담대로 사네요.
    일상에서 재미있는 것들을 찾고, 그걸 즐기고 살고 싶어요.
    가는 시간들이 아쉬울 때마다 악착같이 놀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악착같아지면 안 좋은 건데.

    요즘엔 시계를 좀 안 보고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특히 주말 같은 때는.
    오늘은 아무런 스케줄도 없어 그나마 좀 그렇게 지냈네요. ^^
  • 2014/11/20 18:17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한량 2014/11/21 08:32 #

    감사합니다. 메일 드렸어요 ^_^ 다시 한 번 축하드려요!
  • 2015/11/26 20:46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5/11/26 22:25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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