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년 전의 필름 일상

여러 친구들로부터 우리를 담은 사진들을 받았다. 이것은 영신이가 보내준 필름. 덕분에 이 년 전을 떠올려본다. 잃어버렸다가 다시 찾았다는 카메라에 우리의 결혼식이 담겨있다. 한 겹 필터를 씌운 듯 희부연 색감이다. 빛이 스며 얼룩진 부분도 있다. 아련아련한 것이 어떻게 보면 구십년대의 뮤직비디오 화면 같기도 하고. 그럼 필름이 주는 느낌.
사분할 된 화면 속의 우리는 지금보다 어리다. 신랑 신부 둘다 눈물 한 방울 보이지 않고, 그저 신이 나 온종일 웃었다. 난생 처음 해보는 머리와 화장, 익숙치 않은 옷을 입으려 새벽부터 나선 참이었다. 전날 자리에 나란히 누워, 일찍 잠들어야 한다, 일찍 잠들어야 한다, 주문을 외워도 잠이 오지 않았다. 선잠을 자고 일어나 그 모든 과정을 거친 후, 식장으로 향했다. 나는 갤로퍼 조수석에 앉아 안전벨트를 단단히 맸다. 풍성한 드레스 자락을 구겨넣은 채로. 달은 턱시도 차림으로 운전을 했다. 푸른 하늘엔 멋진 구름이 둥둥 떠있어 아, 맥주 마시고 싶다. 나는 말했다. 식장을 정할 때만 해도 예상할 수 없었던 날씨에 어른들은 걱정을 했다. 나는 아무 것도 모르면서 자신만만해했다. 날씨가 좋을 거야. 자신이 과했던 탓일까. 좋아도 지나치게 좋았다. 구월 말인데, 볕은 한여름 같았다. 하객들은 입고 온 자켓을 벗기 시작했고.. 이솝우화 같았다면, 우리 모두가 허례허식을 벗고 이 산 속에서 러브 앤 피스 히피 정신을 외칠 수도 있었겠지만. 테이블 위에 놓인 것을 보고 저거 대체 누가 쓰지? 하고 웃었던, 마분지 모자로 다들 볕을 가리기 시작했고. 그래서 인사를 하러 다니던 자리에서, 이곳이 전국노래자랑 녹화장인가 했다.
 
한 잔 마실래? 친구들은 맥주잔을 치켜들었고, 푸른 날씨와 햇볕. 안 그래도 목이 타던 나는 한 모금 마시면 폭주할 것 같다며 간신히 참아냈다. 민선 언니가 만들어 준 빈티지한 느낌의 부케는 친구의 품으로. 나는 머리의 화관만 고이 챙겼다. 부모님마저 대절 버스에 실어보내고 돌아가는 길. 동네 치킨집에 전화를 걸어 치킨을 시켜두고, 맥주와 함께 치킨을 뜯었다. 이제 우리 정말 부부라고? 실감은 나지 않고, 맥주는 달기만 하고. 나는 내일부터 출근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사무치도록 좋았다.   

덧글

  • 2014/11/09 21:34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4/11/12 09:30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4/11/09 22:58 # 삭제 답글

    꼭 꿈 속에서 찍은 사진 같아 정말 아름답고 행복하다
  • 한량 2014/11/12 09:31 #

    나중에 우리 고희연도 여기서 합시다 껄껄
  • 2014/11/10 01:39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4/11/12 09:33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4/11/10 14:16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한량 2014/11/12 09:35 #

    오! ㅋㅋㅋ 정말 그게 최고였어요.
    그때 직장에서 정말 매일 시달릴 때라 휴가가 절실했어요.
    마지막 배웅하는 자리에서 직장 동료들에게
    월요일 출근 잘 해~ ^^ 이렇게 인사를 ㅋㅋㅋ
    그 덕에 악담을 들었다지요. ㅋㅋㅋㅋ
    신혼여행이 제일 좋습니다. 정말!!
  • 봉봉이 2014/11/10 15:35 # 답글

    인상이 너무 좋으시네요
    저도 행복하게 웃고 싶어요ㅋㅋㅋ
  • 한량 2014/11/12 09:36 #

    친구가 예쁘게 찍어준 덕이 크구요.
    다른 사진들 보면 너무 과하게 웃어서.. ㅋㅋㅋㅋ
    좀 조신하게 미소만 살짝, 이런 느낌의 컷이 별로 없어요. 엉엉 ㅋㅋ
  • 열아홉 2014/11/10 18:17 # 답글

    영화같아요... 덕분에 결혼에대한 환상이 업됬어요
  • 한량 2014/11/12 09:38 #

    결혼식과 신혼 여행이 끝나면 진짜 일상이에요.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예감했어요.
    일단, 다가오는 출근이 아득했고 더불어 추석이 있었고...
    정말 백투더리얼라이프에요.
    그렇지만 또 조물조물 재미나게 사는 방법이 있으니까요. ^^
  • anchor 2014/11/12 09:22 # 답글

    안녕하세요, 이글루스입니다.

    회원님께서 소중하게 작성해주신 이 게시글이 11월 12일 줌(zum.com) 메인의 [이글루스] 영역에 게재 되었습니다.

    줌 메인 게재를 축하드리며, 11월 12일 줌에 게재된 회원님의 게시글을 확인해 보세요.

    그럼 오늘도 행복한 하루 되시길 바라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2014/11/14 01:46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4/11/14 07:13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톨히 2014/11/14 22:16 # 답글

    영화속 장면같아요. 뻔한 사진들보다 훨씬 아름답네요.
  • 한량 2014/11/15 08:56 #

    감사합니다. 찍어준 친구와, 그 카메라 덕에 이런 사진이 나왔나봐요.
    결혼식 스냅사진 보면 저희도 기사님이 시킨 포즈 거절도 못하고
    얼굴 경련 일으키며 하는 바람에
    요상한 하트포즈 이런 거 있답니다.
    진짜 표정 웃겨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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