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잉위잉 흘러가는 쓰기

해가 길어졌다. 같은 시간에 집을 나옴에도 주위가 훤하다. 차에 앉아 시동을 켜고, 이어 네비를 설정한다. 일용할 음악을 선곡하고 후진 기어를 넣는다. 동네 앞길로 나서 차선에 합류할 틈을 엿보며, 썬글라스를 낀다. 그만큼 해가 밝은 요즘이다.

항상 막히는 구간을 살금살금 지나, 터널로 진입한다. 한때는 이 짧은 터널 구간을 살풋 두려워하기도 했다. 주행 게임에 몰두하듯 어디론가 빨려가는 느낌이 들어서였다. 지금은 무념무상으로 음악을 귀에 담는 시간이기도 하다. 터널을 빠져나오면, 제법 떠오른 해와 눈을 마주한다. 사실 주행 게임은 지금부터다. 머리 위로는 내부순환로가 구불구불 흘러간다. 도심 고속도로를 받치는 기둥들이 그 아래에 버티고 섰다. 지상 도로는 기둥들을 피해 곡선을 그리며 뻗어간다. 터널을 뚫고 산을 하나 지나왔으니 거기엔 내리막 경사가 더해지고, 차선들은 흩어졌다 만났다를 반복한다. 그리고 촘촘한 신호등들. 어디 그뿐이랴. 차선을 따라 부드럽게 커브를 그리는 사이, 교각의 모서리들을 스칠 때마다 눈부신 볕이 눈을 찌른다. 아침의 볕은 얼룩덜룩한 유리를 그대로 뚫고 들어온다. 나는 차선을 따라 가는 대신, 광선 사이를 들고 난다. 갑자기 트이는 시야와 차를 덮치는 그늘 사이에서 차들은 잠시 주춤거린다. 나도 그렇다. 그때마다 머리 위 내부순환로를 타고 씽씽 날던 때를 생각한다. 그때 나는 차도 없고, 면허도 없고, 겁도 없었다. 대부분이 깜깜한 한밤이었고, 가끔은 희부옇게 동이 터오는 새벽이기도 했다. 새벽녘 도로는 한산하여, 학교 앞과 내 집은 멀고도 가까웠다. 많은 밤이 그렇게 흘러갔다. 멍한 정신을 부여잡고 출근하면, 이 아침은 어젯밤의 연장인 것만 같았다. 시간의 영속성을 그리 깨달았다.

하지만 이제 나는 더없이 맑은 정신으로 핸들을 잡고 있다. 해는 맑고, 구름은 두둥실. 휴가의 한 장면 같기도 하다. 보사노바와 살사, 때로는 차이코프스키와 함께 하는 출근길. 오늘은 혁오의 '위잉위잉'을 들었다. 듣고 있는데 마음이 이상했다. 노래가 끝나갈 무렵에 계속 되감기 버튼을 눌렀다. 결국 오늘은 출근길 내내 같은 노래를 들었다.

'싸구려커피' 때만 해도 피식하고 웃는 웃음이 주된 정서였다. 때는 이천팔 년. 나는 정말이지 암흑 속에 고여있는 취준생이었는데, 그런 나도 피식 웃고 말았다. 기발함과 유쾌함 뒤로 채 녹지 않은 설탕만큼, 딱 그만큼의 씁쓸함만 남았었다. 허나 오늘은 그렇지 못했다. 나는 서서히 고조되는 리듬에 맞춰 속도를 냈다. 출근길의 숙명에 온몸으로 맞서면서. 그러나 맞닥뜨리는 앞 차의 브레이크 등 앞에서, 혹은 바뀌는 노란불 앞에서 엔진은 그르렁댔다. 허나, 포르쉐도 아닌 모닝의 헐떡임에 그 누가 귀를 기울일까. 단념과 체념을 자조적으로 반복하는 가사를 되뇌는데 마음이 뻐근했다. 그럼에도 나는 커져가는 드럼 소리에 두근거리며 스토리의 변곡점을 기대했다. '뚜욱 뚜욱 떨어지는 눈물이 언젠가는 이 세상을' 여기까지. 그러나 그 다음에 이어지는 가사는 '덮을거야.'로 끝난다. 그리고 이어지는 장렬한 리듬들. 담담하게 단념을 반복하는 것은, 스스로를 납득시키기 위한 것일까. 음악을 들으며 속도를 내는 길. 아니 내어보려 애쓰는 길. 그것은 후련함과 멀었다.

나는 아쉬운 미련을 가지고서 '언젠가는 이 세상을' 다음에 이어질 가사를 상상했다. '부술거야' 혹은 '바꿀거야' 이런 가사가 떠오른 것은 내 안에 구십년대의 정서가 남아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다분히 촌스러워 보였다. 이 밝은 햇살 아래, 나는 작고 누추해졌다. 우리가 부수거나 바꿀 수 있는 어떤 것들이 존재한다 믿었던 때. 각자 나름의 그릴 신세계가 남아있던 때. 그런 시절은 흘러갔다. 이제는 뚜렷하고 명확한 대상 자체가 보이지 않는다. 모든 것은 뿌옇고 흐릿해서, 우리에게 허락된 능동은 눈물로 세상을 덮는 것 밖에 없다. 어느새 내 안에 일었던 감정은 잦아들었다. 그것은 우리에게 요구되는 이 시대의 매너. 음악을 듣고 울거나, 그 마음에 취해 전화를 걸거나, 그래서 허튼 소리를 늘어놓거나 하면 아마도 차단될 세상. 서글픈 마음과 달리, 내 눈가는 건조했다. 출근을 위해서는 다행이었다.   

덧글

  • 한나 2015/07/15 22:38 # 삭제 답글

    오혁의 '위잉위잉' 노래가 좋아서 가사를 찾으러 들어왔다가 글이 너무 좋아 덧글 남기고 갑니다! 책 읽는 듯한 착각을 하게 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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