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혼자 조금 긴 여행을 할 때 필연적으로 찾아오는 쓸쓸함. 만날 것을 고대하고 헤어짐을 미리 아쉬워하며 나는 그 쓸쓸함을 달큰하게 즐겼다. 예전처럼 내일 만나, 하고 헤어질 수 없는 거리. 우리는 만났던 밀레니엄 파크에서 다시 손을 흔들며 헤어졌다. 나는 한밤의 다리를 지나고, 골목들을 지나 숙소로 돌아와 누웠다. 헤어지고 한참 후 이 필름을 들여다보며 친구에 대해 다시 생각했다.
여행자에겐 의무가 없다. 고로 자잘한 욕망에 따라 사고하고 행동한다. 잠이 오면 그 어떤 시간에라도 잠들고, 알람 따위 내팽개친지 오래다. 배가 고프면 무엇을 먹을까 궁리하고, 커피가 고프면 즐비한 까페를 찾아 그 김에 쉰다. 덕분에 조금씩 살이 오른다. 미세한 변화를 감지하고 나는 조금 행복해진다. 아, 내가 잘 먹고 잘 자고 잘 쉬고 있구나 해서. 늦은 저녁을 먹던 중, 저 탄탄한 등근육을 보며 어제의 드가를 떠올렸다. 아가씨의 뒷모습 덕에 나는 떠나온 발레에 가닿았다. 드넓은 마루바닥과 거울, 그리고 바. 몸을 굽히고 젖히고 끌어올리는 동작들. 중력의 영향에서 벗어난 듯한 표정. 미술시간에 철사와 노끈, 찰흙으로 빚던 인체 모형들이 겹쳐진다. 꼿꼿하게 잘 뻗은 뼈대와 탄력을 지닌 근육들. 잠시나마 굳고 굽은 어께를 펴고 앉아 나는 햄버거를 베어물었다. 아, 쉑쉑이여.


태그 : 시카고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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