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시카고 2 빛을먹고사라져버린

친구와 친구 남편을 만나 함께 저녁을 먹고, 호수 부근의 공원을 거닐었다. 우리는 서로 작은 선물과 편지를 주고 받았다. 친구의 부른 배는 자연스러웠다. 부옇게 흐린 하늘 아래, 살짝 흩날리는 분수 앞에 앉아 우리는 함께 해 지는 것을 보았다. 거대한 건물들 뒤로 그날의 해가 조용히 저물고 있었다. 지내는 것은 어때, 일 하는 건 어때, 같은 이야기들. 우리의 과거와 지금과 앞으로의 일들.

혼자 조금 긴 여행을 할 때 필연적으로 찾아오는 쓸쓸함. 만날 것을 고대하고 헤어짐을 미리 아쉬워하며 나는 그 쓸쓸함을 달큰하게 즐겼다. 예전처럼 내일 만나, 하고 헤어질 수 없는 거리. 우리는 만났던 밀레니엄 파크에서 다시 손을 흔들며 헤어졌다. 나는 한밤의 다리를 지나고, 골목들을 지나 숙소로 돌아와 누웠다. 헤어지고 한참 후 이 필름을 들여다보며 친구에 대해 다시 생각했다. 

여행자에겐 의무가 없다. 고로 자잘한 욕망에 따라 사고하고 행동한다. 잠이 오면 그 어떤 시간에라도 잠들고, 알람 따위 내팽개친지 오래다. 배가 고프면 무엇을 먹을까 궁리하고, 커피가 고프면 즐비한 까페를 찾아 그 김에 쉰다. 덕분에 조금씩 살이 오른다. 미세한 변화를 감지하고 나는 조금 행복해진다. 아, 내가 잘 먹고 잘 자고 잘 쉬고 있구나 해서. 늦은 저녁을 먹던 중, 저 탄탄한 등근육을 보며 어제의 드가를 떠올렸다. 아가씨의 뒷모습 덕에 나는 떠나온 발레에 가닿았다. 드넓은 마루바닥과 거울, 그리고 바. 몸을 굽히고 젖히고 끌어올리는 동작들. 중력의 영향에서 벗어난 듯한 표정. 미술시간에 철사와 노끈, 찰흙으로 빚던 인체 모형들이 겹쳐진다. 꼿꼿하게 잘 뻗은 뼈대와 탄력을 지닌 근육들. 잠시나마 굳고 굽은 어께를 펴고 앉아 나는 햄버거를 베어물었다. 아, 쉑쉑이여.
시카고를 떠나기 전, 가보고 싶은 몇 군데 매장을 찾다보니 쇼핑센터들이 가득한 거리가 나왔다. 그 옆을 말이 끄는 마차가 지나고 있다. 나는 으리으리한 매장들을 지나, 스파 매장을 몇 군데 둘러보고 공원 근처에선 코믹북샵에도 들렀다. 몇 권의 얇은 만화잡지와 머그컵을 사들고 나오는 길. 인상 좋은 주인 할아버지가 친절하게 배웅해주었다. 나는 문득 산다는 행위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거기엔 쉽게 정리할 수 없는 무엇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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