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어느 달밤에 어떤 동네

어제는 퇴근을 원서동으로 했다. 어깨에 맨 에코백엔, 잠옷이며 충전기며 한약에 사과까지 들어있었다. 달은 벌써 며칠째 원서동에 머물고 있다. 근사하게 꾸며놓은 방에서 코오코오 잠드는 대신, 조그만 방에서 쪽잠을 자며 그렇게. 우리는 저녁을 먹으며 차후의 계획에 대해 논의를 거듭했다. 이야기는 또 잠시 심각해지기도 했다. 돌아와 마저 작업을 하다, 나는 먼저 잠들었다. 달은 늦게까지 계속 일을 하고. 
그리고 오늘의 아침. 그 옛날 추억의 빵집에서 달이 아침을 사왔다. 나는 계단을 오르는 발소리를 듣고서, 서둘러 사과를 썰었다. 커피와 함께 아침을 먹으면서도, 오늘의 해야할 일에 대해 계획을 짠다. 이 모든 것들이 처음 해보는 일들이다. 그러니 방향에 대한 감을 잡기도 어렵거니와, 일의 진척도 더디다. 나름 둘이서 열심히 애를 쓰고 있다. 몸은 고되나, 여기엔 어떤 종류의 건강함이 있다. 거창한 의의를 찾지 않아도, 하는 손놀림 하나 하나에 의미가 있다.
엄마는 이 사진을 보고, 사위가 애쓴다며 걱정을 했다. 그 뒤에 이어진 말은 층고에 대한 궁금증이었다. 엄마, 나도 이렇게 높은 천장을 가진 집이면 좋겠어.
사실은 이렇다. 달이 초벌 페인트를 바르는 사이, 나는 창틀 청소를 했다. 세월이 서린 창틀이란 정말. 일을 끝내놓고, 나도 빼꼼거리며 달의 작업 현장에 들어섰다. 그리고 롤러를 받아들어 칠하기 시작했다. 나의 과감한 롤러질. 이게 은근히 재미있다. 강아지 몸통 같은 롤러에 페인트를 골고루 묻혀준 후, 벽에 대고 굴린다. 너무 세게 돌리면 페인트가 튄다는 조언에도, 나는 몸을 털어 물을 튕기는 강아지를 떠올렸다.
얼추 완성되어 간다 싶던 시절에 찍어놓은 사진. 이때는 이렇게 재정비의 날이 빨리 닥칠 줄도 몰랐지. 언젠가 우리 손으로 집을 하나하나 고쳐볼 날도 오지 않겠어? 하던 생각이 이렇게 실현될 줄이야. 실전은 녹록치 않아서, 나는 오늘 단말마의 외침까지 듣고 말았다. 닫힌 방문 너머에서 달의 비명 소리가 나길래, 서둘러 들어가니 무릎을 꿇은 채 끙끙거리고 있다. 벽면 콘센트를 제거하다 감전이 되었다고. 집 좀 고쳐보려다 남편 보낼 뻔 했다. 우리는 놀란 가슴 쓸어내리고, 다시금 작업에 몰두했다. 그래, 한국 사람 어디 안 가지.
짐들을 밖에 꺼내두느라, 어지러워진 거실. 아늑하고 포근하며 제멋대로인 분위기다. 그래도 어여쁜 것은 역시 내가 팔불출인 탓이겠지.
아침은 빵과 커피로, 점심은 컵라면으로 먹고서 이른 저녁을 먹으러 나갔다. 집에서 제일 가까운 밥집을 찾아, 또 똑같은 파스타와 리조또를 먹었다. 우리의 표정은 어제보다 한결 밝았다. 이게 어렵긴 어려운데 신나고 뿌듯하고 재미있어. 우리의 결론이었다. 예상했던 완성일은 하루씩 하루씩 미뤄지고 있으나, 그런대로 방향은 맞지 싶다. 뭐 언젠가는 끝나지 않겠어 하는 밝은 마음으로. 어제도 예뻤던 달은 오늘도 저리 예쁘게 떴다. 새초롬하게 고운 달. 원서동의 밤이다.

덧글

  • 하미 2016/12/04 10:52 # 삭제 답글

    어머나 ... 집이 너무 아담하고 예뻐요. 나중에 제 신혼집을 이렇게 꾸며놓고 싶을 정도랄까요? 우연히 들어와 감탄하느라 글까지 남기고 가요 :)
  • 한량 2016/12/05 11:17 #

    감사합니다. 흐흐 진짜 쪼만하고 아기자기해요. 어제도 종일 벽에 매달려 칠을 했답니다.
    오늘은 하루 쉬고, 내일 다시 가서 작업하려고요. 차근차근 꾸미는 재미가 있네요.
    들러주셔서 감사합니다 ^^
  • ere 2016/12/04 22:02 # 삭제 답글

    예쁜 스탠드는 외국서 사신듯. 소품들이 예쁘네요. 취향이 일관성 잇다고 해야될지.. 커텐이나 쇼파 색도 예쁘고..
  • 한량 2016/12/05 11:19 #

    지금 벽 작업을 한다고 처음에 만들어 둔 모습들은 다 사라졌지만.. 엉엉
    이번 주내로 다 끝내려고 애쓰고 있어요. 예쁘다 해주시니 기분이 좋네요. ^^
  • 2016/12/05 13:14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6/12/05 13:41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빛의 수색자 2016/12/06 15:17 # 답글

    혹시.. 저빵은 우드앤브릭꺼 아닌가요 ㅎ
  • 한량 2016/12/06 16:37 #

    와 눈썰미 좋으셔요. 네 우드앤브릭 맞아요 ㅎㅎ
    저 갈색빵 좋아해요. 버터 끼운 빵이요. 저희는 그걸 독일빵이라고 부른답니다. 독일 안 가봤으면서.. ㅎㅎ
  • 2016/12/08 11:45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한량 2016/12/09 10:34 #

    와 감사해요. 이제 그 긴 여정이 거의 다 끝나가요. 그동안 안 쓰러지고 버틴 저의 체력에 치얼스.. ㅜㅜ
    사실은 어젯밤 어리버리하게나마 에어비앤비에 등록을 했었는데요.
    누적된 피로로 반쯤 감긴 눈으로 등록을 하고서, 곧 쓰러져 잠들었어요.
    아침에 출근 준비하러 일어나니, 밤사이 예약 신청이 들어와 있는 거예요. 엉엉..
    너무 신기하고 그랬답니다. 커피를 마시고 정신이 좀 드니 이건 초심자의 행운 같단 생각이..
    ㅋㅋㅋ 암튼 차근차근 준비해가고 있어요.
    언젠가 달토님과, 달토님 남편분 혹은 친구분도 모시고 싶네요.
    제가 스페셜 프레젠트도 준비할게염.... 흐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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