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나날 일상

자고 일어나니 이런 세상이었다. 친구가 배달시킨 트리와, 트리 장식들. 저 나무를 심을 때만 해도, 이 녀석이 잘 자라겠나 걱정을 했는데, 거뜬하게 잘 살고 있다. 원래 추운 곳에서 잘 사는 나무라는 것을 잊고 있었다. 이날은 늦게 출근해도 되는 날이라, 느적느적 게으름을 부렸다. 준비를 다 마치고서도, 시간이 남아 뒹굴대는데, 저 새하얀 눈이 차에도 가득 쌓였을 거란 생각이 났다. 결국 차창에 얼어붙은 눈들을 다 긁어내고, 빨간 손이 되어 출근을 했다.
그러나 오후의 원서동은 눈 내린 흔적이라곤 보이지 않는다. 한낮의 햇살을 받고 우뚝 선, 거주자 우선 주차구역의 주차 금지를 알리는 토템. 그림자가 있음에도 합성 같아 보이는 이것은 달의 아이디어. 무난하게 주차 고깔이나, 하다 못해 못 쓰는 의자라든가, 하는 나의 평범성을 무참히 깨주는 토템. 이런 것쯤이야, 별 방해가 되지 않으니 가볍게 치우고 불법 주차를 하지 않을까 싶지만. 은근한 위엄이 있다. 결계를 침범하면 대대로 저주를 받을 것만 같은 주술성. 그런 게 서린 느낌이다.
오늘로 세 번째의 게스트가 머물고 있는 자기만의 방. 막 뛰어든 초심자의 행운이랄까, 연말 특수일까. 후기 없는 숙소를 선뜻 선택해주신 게스트들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며, 새로 세탁한 온갖 커버들을 새로 씌우곤 한다. 게다가 다들 매너도 좋으셔서, 청소와 단장이 고되지 않다. 퇴근 후의 종종거림에도 불구하고.

그저께는 퇴근도 일렀다. 마침 게스트분의 체크인 시간과도 얼추 맞길래, 나는 원서동으로 향했다. 다시 한 번, 집 전체를 꼼꼼히 살피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기다리는 시간. 오신다는 시간이 조금 지나서,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지금 근처에 다 왔는데, 어디인지 잘 모르겠다고. 그 길로 나는 계단을 뛰어내려갔다. 말씀하는 곳이 정말 지척이라 성큼성큼 걸었다. 전화 속 목소리는 아니, 안 나오셔도 되는데.. 라고 했지만. 기쁜 마음으로 그렇게 겅중겅중.

캐리어를 끌고 계신 게스트분을 단박에 알아보고, 그렇게 인사를 했다. 캐리어를 바로 잡아끈 것도, 직접 들고 계단을 오른 것도, 다 지난 날 게스트로서 배운 것들이다. 골목의 애매한 지점들에서 그렇게 첫 인사를 나누고, 무거운 가방을 들고 올라주는 호스트의 뒤를 따르며 고마워 안절부절 못했던 시간들. 이분 역시 그랬다.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땐, 마침 우리 집이 제일 어여뻐 보이는 시각. 햇살은 완만한 사선으로 집 전체에 스미고, 미리 데워놓은 바닥은 따끈해 훈기가 감돈다. 쨍하니 추운 날인지라, 공기도 청명하고, 그 덕에 넓은 창밖의 풍경은 몹시 선명하다. 아니나 다를까, 게스트분은 그 풍경에 반해 연신 감탄을 늘어놓는다. 나의 어깨는 몰래 으쓱거린다. 사소한 설명과, 편히 머무시라는 인사 사이 가벼운 이야기들이 이어진다. 연말 휴가를 얻어 오게 되셨다고. 에어비앤비에서 일하는 친구가 있는데, 한번 묵어보라는 추천이 있었다고 했다. 그러니 에어비앤비로 머무는 첫 숙소라는 말.
이왕이면 더 좋은 인상을 남기고 싶은 마음이 앞선다. 할 수 있는 한 최선은 이미 다 해두었으니, 부디 잘 지내다 가셨으면 좋겠단 마음으로 집에 돌아왔다. 해보지 않은 일에 덜컥 발을 내딛고, 새롭게 만나는 경험들중에 이것 역시 포함이 되겠단 생각을 했다. 날로 자라는 서른 둘의 일상.
엄밀히 말한다면야, 이제 막 만 서른이 되었다지만. 며칠 후면 서른 셋이 되고야 마는 기구한 인생. 올해의 생일꽃은 향이 좋아 품에 안고 연신 킁킁거렸다. 달은 생일 며칠 전, 반지가 든 상자를 내밀었다. 손가락에 끼어보니 살짝 맞는 듯 하다가도, 빼보면 쓰윽 잘 빠졌다. 비누칠한 손을 씻다가 잘못하면 세면대에 빠뜨릴 수도 있을 사이즈. 그러나 반지에 달린 택은 이미 떼어버렸고. 당황해 하는 달에게 명쾌한 결론을 내려주었다. 가드링이라고, 여기에 작은 반지를 더 끼우면 안 빠지고 더 예쁠 거야. 생일 전날은 피곤에 겨워 일찍 잠들었는데, 일어나보니 새 반지가 끼워져 있다. 열두시 땡하고, 끼워두었다고. 그래서 두 개의 반지를 겹쳐끼고 다니는 요즘.  
그 사이 또 밤 늦도록 싸우는 날도 있었다. 팅팅 부은 눈으로 출근해야 했던 고달픈 날이 지나고, 저녁에야 화해에 도달한 싸움의 여정. 한정판이라고 사들고 온 하겐다즈는 두통째 먹고 있다. 진한 바닐라 아이스크림에 카라멜 시럽이 켜켜이 묻어있고, 사이사이에 조그만 떡이 들어있다. 그래서 다 씻고 잘 준비하고 누운 침대에서 너 한 입, 나 한 입하며 몇 숟가락을 나눠먹다 잠들곤 한다. 따뜻한 이불 속에서 발을 꿈지럭대며, 찬 아이스크림을 먹는 행복이란. 양치질 다시 해야지, 라고 말할 엄마는 멀리 있으니 그냥 눈 딱 감고 잔다. 이렇게 겨울잠을 내리잤으면, 하는 소망이 크다. 역시 겨울은 겨울이다.

덧글

  • 66 2016/12/29 01:16 # 삭제 답글

    에어비앤비?? 그쪽으로 이사가시는줄 알고;;; 암튼 친구 오면 여기 추천해볼께요.
  • 한량 2016/12/29 10:22 #

    와, 감사드려요. 같이 놀러오셔요. 제가 동네 맛집을 비롯해, 취향에 맞는 도심 여행 코스 알려드릴게요.
    ^^
  • 2016/12/30 16:51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7/01/04 18:59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우물쭈물하지않으리 2017/01/04 16:50 # 답글

    이야 한량님다운 공간이네요 ㅎㅎㅎ 저 뷰가 궁금해 꼭 한번 들리고싶네요 에어비앤비 위시리스트 등록!! ㅋㅋ
  • 한량 2017/01/04 19:03 #

    오 감사합니다. ㅎㅎㅎㅎ 저는 그냥 저 좋은대로 집을 고르고 꾸미고 했는데,
    오직 여성분들만 알아봐주신답니다... ㅋㅋㅋㅋㅋ
    뭔가 이런 느낌 좋아하는 분들끼리 통하는 것이 있나보다, 맘 편히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아마 봄이 되면 더 머물기 좋지 않을까 생각해요. 나무와 산이 푸르러지면 더 예쁠 것 같거든요.
    다음에 홀로, 또는 친구분과 함께 놀러오세요. 후회하지 않는 선택이 되실 거예요.
    (아아 이런 걸 오글오글이라고 할까요...?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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