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서동에서 어떤 동네

교토의 분위기 있는 레스토랑에 앉아, 나는 자식 이야기에 시간 가는 줄 모르는 팔불출의 마음을 알겠노라고 말했다. 원서동 집은 제게 그런 의미를 줘요. 라고. 시부모님의 표정이 잠깐 굳었다. 그깟 집 말고 진짜 손주 어떻게 안 되겠니, 라고 묻고픈 심정이 슬며시 비쳤다. 다행히 이야기는 스물스물 잘 넘어갔다. 이게 육 년차 며느리의 구력.

외국에서 들어온 첫 예약 알림. 보스턴. 나는 침을 꿀꺽 삼키고, 몇 안 되는 영어를 그러모아 메시지를 쓸 준비를 했다. 알고보니 한국 유학생. 방학이라 서울에 다녀간다고 했다. 덕분에 우리는 모국어로 살갑게 대화를 나눴다. 아란 씨가 도착하는 날, 무거운 짐을 함께 끌어올리며 그렇게 얼굴을 텄다. 나에게 이곳 위치를 아느냐며 묻는 곳은 세종문화회관 뒤편이라, 나는 무슨 오지랖에선지 제가 태워다드릴까요 라고 말했다. 그렇게 아란 씨를 태워드리고서, 좋은 마음으로 돌아온 저녁. 보일러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는 조심스러운 메시지가 왔다. 그때 달과 나는 산울림 소극장 근처에서 커피에 케익을 곁들이고 있었다. 메시지를 본 내 마음은 금세 팔랑팔랑했다. 케익이 어디로 들어가는지도 모르게 먹어치우고, 우린 급히 원서동으로 향했다. 온수를 쓸 때, 뜨거운 물이 나왔다가 미지근한 물이 나왔다가 한다고. 달은 수압을 조정했고, 뜨거운 물이 잘 나오는 것을 확인했다. 저녁을 먹으러 나갔다는 아란 씨에게 우선 고쳐두었다고 말을 하고선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아흐레가 흐르고, 아란 씨가 떠날 날이 다가왔다. 그동안 즐거우셨냐는 메시지를 보내니, 사실 그 이후에도 온수가 오락가락했다는 답이 온다. 그래도 자긴 쓸 만했는데, 그 이후에 다른 게스트가 이어 도착한다는 말이 생각나 알려드린다는 메시지. 그래서 황급히 기사님을 불렀다. 밤늦게 오신 기사님께서 보일러를 점검하는 동안, 우리 셋은 거실 마루에 쪼르르 앉아 수다를 떨었다. 집이 너무 예쁘다는 말을 건축학도에게 들으니 황송했다. 나는 그러나 예쁜 것이 다가 아니란 것을 단단히 깨우쳤겠어요, 하며 용서를 구했다. 너무 죄송한 마음에 남은 이틀을, 근처 호텔로 옮겨드리겠다는 우리의 말에 아란 씨는 손을 내저었다. 자긴 정말 괜찮았다고. 왜, 따뜻한 물로 씻다가 물이 미지근해진다 싶으면 얼른 비누칠하고, 샴푸하고 그랬다며 깔깔 웃었다. 세상에, 이 분은 천사이신가. 그런데 알고 보니 정말 천사에 가까운 분이었다. 미국에서 자취하는 곳도 백년여 되는 아파트라, 물 나오는 것이 형편없다고. 자긴 그래서 다 적응이 되었다며 웃는다. 그러면서 자기 아는 분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친구 분이 뉴욕에 갔는데, 집세가 너무 비싸 할렘 근처에 방을 얻었다고 했다. 그 집에선 샤워를 하는 내내 긴장을 늦출 수가 없었다고. 왜냐면, 적당한 수온으로 씻다가도 아무도 예상치 못한 시점에 엄청나게 뜨거운 물이 벼락같이 뿜어져나온다고. 그래서 샤워를 하다 아악!! 소리를 지르기가 일쑤라고. 그 말이 너무 웃겨 나는 아란 씨와 친구가 될 뻔 했다. 인사동에서 샀다는 맞춤도장과, 셀카봉과, 스마트폰 터치가 가능한 장갑을 자랑하던 아란 씨는 그렇게 서울을 떠났다. 여름에도 꼭 오고 싶다는 말을 남기고.     

그리고 우리는 보일러를 바꿨다. 아란 씨 다음 게스트는 싱가폴에서 온 자매. 정말 적잖게 긴장이 되었는데, 나의 허술한 영어실력에도 그들은 귀를 쫑긋세우며, 대화를 이어가주었다. 적절한 단어가 생각이 안 나면, 둘 중 하나가 금세 그 단어를 꺼내놓는다. 역시, 구하고자 하는 마음엔 장벽이 없나니. 그들은 서울에서 하고 싶은 것들에 대해 종알종알 늘어놓는다. 찜질방에 가보고 싶다고 했고, 스케이트도 타고 싶다고 했다. 스키장에도 가보고 싶고, 스트로베리 필드에도 가고 싶다고. 응? 스트로베리 필드? 물으니 양수리 딸기농장 사진을 보여준다. 역시 열흘의 시간이 흐르고, 조앤이 떠나는 날은 부슬부슬 진눈깨비가 내렸다. 달과 나는 체크아웃 시간에 맞춰 집을 찾았다. 아주 무거운 캐리어 둘을 양손에 들고 내려가는 달을 보고, 눈이 동그래져서 니 남편 군인이니? 하고 물었다. 나는 이들을 서울역까지 태워주기로 했다. 광화문을 지나며, 요즘의 정국에 대해 이야기 했다. 안 그래도 안국역에서 아주 많은 경찰들을 보았다고 한다. 응, 많은 사람들이 대통령에 항의하는 집회를 열고 있거든. 하며 시청을 지나는데, 조앤이 묻는다. 저기 저 사람들이 시위대야? 고개를 돌리니 시청 광장의 태극기 천막들이 보인다. 박사모. 음, 나는 이을 말이 생각나지 않아서 그들은 프레지던트 러버들이야 라고 답했다. 숭례문을 배경으로 진눈깨비가 계속 내렸다. 조앤이 이야기를 꺼낸다. 싱가폴 친구가 여태 눈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서울에 있는 조앤에게 눈이 어떻드냐고 묻길래, '빙수'라고 얘기해줬다고 했다. 너무 똑똑한 발음으로 빙수라고 말해서 난 웃었다.

조앤과 에일린이 떠난 후, 우린 집 안의 모든 샷시를 바꿨다. 사면이 트인 집이라, 풍광 못지 않게 웃풍 역시 최고였으니. 아니, 뉴욕이며 파리를 거치며 오래된 아주 오래된 집을 알뜰살뜩 가꾼 매력에 심취한 나지만, 이건 예상보다 빠른 전개다. 우리가 이 집을 사고 나서, 거실의 마루를 뜯어내 다시 깔았고, 벽지를 새로 했으며, 안방 벽 작업을 거쳤다. 그리고 이제 보일러와 샷시까지. 어째 순서가 다 거꾸로라, 기존 샷시를 철거할 때 아주 노심초사를 했다. 그러나 역시 전문가는 전문가. 그렇게 집이 우리 방식으로 새롭게 정비되어간다. 자기 색을 가진 문틀과 몰딩, 방문, 전 집주인의 아버지가 손수 만들어준 나무 가구들은 잘 살려서 오래오래 남기자고 했다. 이것이 이 집의 아이덴티티기도 하니까.

공사를 마치고 이틀은 줄곧 집에 박혀 쓸고 닦고를 반복했다. 반으로 자른 수건의 모든 면을 꼼꼼히 되접으며 바닥을 기었다. 그리고 영국에서 오는 코너를 기다렸다. 얼기설기 만든 구글맵을 메일로 보내주었을 뿐인데, 코너는 정확하게 건물의 일층에 도착해 전화를 걸었다. 나는 황급히 뛰어내려가 그의 작은 가방을 받아들었다. 놀라운 점은, 멀리서 온 그의 차림이 완벽한 정장이었다는 것. 진회색 수트에 검은 구두, 모직 코트와 머플러까지. 열 시간 넘는 비행이면 잠옷과 평상복의 경계로 임하는 나와는 사뭇 대조적이었다. 미리 보낸 메시지들도 그리 정중하더니, 이 사람 뭔가 신사같네. 하며 시작된 이야기. 마침 다음 날은, 광화문에서 대규모 집회가 있어 창밖을 바라보며 하는 브리핑에 현재 시국 상황도 곁들였다. 코너는 이미 그 내용의 대강을 알고 있다. 지난 11월에 한국에 왔을 때도 역시 그러했다고. 세탁실 문을 열어 남산 타워를 보여주니, 저기서 밥 먹어본 적 있다고 했다. 코너 역시 모든 외국인들이 그렇듯 침대 위 온수매트에 깊은 찬탄을 보내었으며, 우리 집에 온 모든 손님이 그렇듯 나이스 뷰, 나이스 뷰를 외쳤다. 어제까지 이것과 관련된 연극 일을 했다며 그는 버지니아 울프의 사진을 가리켰다. 어려운 이야기는 내 귀를 스치고, 나는 그저 아이 러브 허를 반복했다. 그가 발레 이야기도 꺼내길래, 나는 빌리 엘리엇을 외치고. 이 이야기를 달에게 해주니, 달은 코너의 풀네임을 검색해보았다. 알고보니 한국의 국립 오페라단과 일하는 무대 디자이너. 으흠, 나는 깊은 탄식을 했다. 아니, 그런 사람이 왜 우리 집에? 광화문에 머물고 싶으면 포시즌을 가지! 여러모로 알쏭달쏭했으나, 어쨌거나 흐뭇한 일이었다.  

오늘은 오랜 친구가 온다. 나는 반가운 친구를 볼 생각에 싱글벙글하며, 새 이불을 펴고 청소기를 민다. 마침 날이 포근하고 맑아 다행이다. 좋은 쉼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나는 꼼꼼한 호스트가 된다. 이건 너무 행복한 일이다. 정말.

 

덧글

  • 2017/02/23 17:24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7/02/24 15:48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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