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카메라 빛을먹고사라져버린

태어나 처음으로 중고 거래를 했다. 너무 일하기 싫어 사이트를 헤매다 바로 문자를 보냈다. 주워듣기로 중고 거래는 시간 싸움이라기에, 무턱대고 사겠다고 말하며 계좌번호를 달라고 했다. 좀 이상한 사람처럼 보였을까. 무뚝뚝했던 첫인사는 서로의 건강과 안녕 그리고 즐거운 사진생활에 대한 덕담으로 끝났다. 커다란 상자를 열고, 엄청나게 많은 뽁뽁이를 헤치고 꺼낸 카메라. 매물을 올린 사진엔 자잘한 기스가 안 나온 것 같다며 걱정하던 판매자의 말이 떠올라 유심히 살펴보았지만, 내 눈엔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계약 전엔 두 눈 크게 뜨고, 계약 후엔 한 쪽 눈 감으라는 말이 비단 결혼에만 쓰이는 건 아닌 모양이다. 단박에 마음에 들었다. 언제적 필름인지도 모를 필름을 찾아 끼웠다. 다음부턴 유효기간이 쓰인 필름상자를 버리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그렇게 몇 주 찍고 돌아다녔다. 뷰파인더가 작아 애를 좀 먹었다. 그래도 늘 들고 다녔다. 정확히 말하면 예전의 카메라보다 훨씬 작고 가벼워, 가방에 늘 들어있었던 것이 맞다. 그래서 운 좋게 좋은 장면들을 담고 다녔다. 그러나 아무리 느낌이 좋아도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믿을 수 없는 것이 필름의 세계. 결과적으로 나는 그날의 거래에 만족한다. 아마도 초심자의 행운이겠지. 앞으로 열심히 찍고 다니겠다. 이렇게 결심하니 왠지 옛날 생각도 좀 나고 그렇다. 늘 무겁게 메고 다녔던 스무 살이 생각난다. 덕분에 꾸며도 어색하고 안 꾸미면 이상하던 새내기 시절의 사진들이 많다. 물론 나 말고 내 친구들.. 

덧글

  • 2017/05/15 15:03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한량 2017/05/16 20:37 #

    저도 이번에 쬐끄만한 자동으로 바꿨어요! 좋던데요.. 필름 넣으니 알아서 세팅해주고 특히나 마지막 컷 찍고 나면 알아서 윙윙 돌아가서 필름 감아주고.. 뜻밖의 포인트에 감동했습니다. ㅎㅎㅎ
    저도 어제 점심에 뭘 먹었느냐 생각해보면 기억이 잘 안나요. ㅎㅎ 그냥 흘리는 일상들이네요.
    이렇게 들러서 또 귀한 댓글 남겨주시고 감사해요. 전에 얼굴 잠깐 뵈었다고 더 가까워진 느낌이라서요.
    ㅎㅎ 뭔가 이것저것 쓰고 싶은데, 요즘 제 일상이 어떻게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지 않아서
    그래서 뭘 쓰기에도 주저주저 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생각해 보면 참.. 이 플랫폼에 계속 앉아있는 것도
    신기하고 웃기고 그래요. 뭐랄까 떠나실 분들 다 떠나시고.. 그런데 전 귀찮다는 이유에다 한꺼풀 숨어있고 싶은 마음에 계속 여기 있네요. ㅎㅎ 이러다 픽 망하면 안 되는데 싶네요.

    오월인데 아직 날이 쌀쌀해요. 아침, 저녁 나절 따숩게 다니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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