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표 혹은 말줄임표 일상

흔한 동네 바닷가에서 저녁 내내 헤엄치고 놀았다. 우리는 풍덩풍덩 함부로 뛰어들었다. 빌린 물안경을 끼고 바닷속을 보면 물고기들이 이리저리 내 손을 피해 흘러다녔다. 좁다란 보드에 의지해 선착순 몇 명을 외치며 그리 놀았다. 옆집과 우리는 같은 번지를 쓴다. 둘을 구분하는 것은 집의 대문 색깔. 그리하야 발레타의 파도 위에서 우리는 소리 높여 외친다. 노란대문 모여라, 빨간대문 모여라 하며. 소금기 어린 코를 킁하고 풀면서.

다다음날, 그 바다에 이어 또다른 바다에 가기로 한다. 우리는 어른들을 위한 술과, 아이들을 위한 과자를 사들고 약속 장소에 당도한다. 그렇게 요트에 오른다. 나는 기우뚱거리는 뱃전에 앉아 바람을 쐬다, 잠시 갑판 아래로 내려갔다. 침대에 누워 잠시 뒹굴대려는데, 영 머리가 어지럽다. 아마도 그게 실수였다. 명치 께가 단단히 뭉치는가 싶더니, 미묘하게 메슥거린다. 다시 올라와 바닷 바람을 맞으니 좀 나아졌지만, 어딘가 표정이 굳어있다. 내 안색을 살피던 꼬마는 나처럼 표정이 굳는다. 수박을 잘라먹고 병째로 얼린 생수를 끌어안으며, 우리는 빨리 정박해서 수영하고 싶다고 조용히 속삭였다.

한참을 달리던 배는 섬의 끝자락에 당도했다. 야트막한 해변과 작은 파라솔들이 눈 앞에 보인다. 작고 귀여워 마치 미니어처 같아 보이던 그곳. 그 어디쯤 바다에 배가 멈춘다. 닻을 내리고, 사다리도 내렸다. 우리는 서둘러 입수했다. 육 미터 혹은 칠 미터의 수심. 물 위의 햇볕이 어른어른 모래 위를 비춘다. 듬성듬성 흔들리는 풀들 사이로 고기들이 노닌다. 그렇게 멀리 나아갔다가, 물장구를 치거나, 다이빙 연습을 하거나 했다. 달은 독일 꼬마의 쪽집게 과외 덕에 물총새 부럽지 않은 다이빙을 해냈다. 샴페인을 홀짝이던 나는 두 번의 시도 만에 박수를 받았다. 아기스포츠단 어디 안 가지. 믿을 수 없는 빛깔의 물은 그리 짜지도 않아서, 다함께 배 주위를 어푸거리며 헤엄쳤다. 참치 넣은 김밥과, 비빔 쌀국수를 게눈 감추듯 해치우면서 오후 나절 내내 물 속에서 놀았다.
이틀 새 벗겨졌다는 한 손가락을 마저 칠해주었다. 흔들리는 갑판 위에서 붓칠하기. 꼬마는 우리가 와락 안았던 그 밤, 엄마에게 고백했다고 했다. 언니랑 나는 정말 잘 맞는 것 같다고. 관심사도 비슷하고 좋아하는 것도 비슷하다고. 열 살의 속마음에 기분이 좋았다. 그들은 다른 섬으로 이어 항해를 하고, 우리는 다음날 비행기를 위해 터미널 근처에 내리기로 한다. 마지막 헤어짐에 역시 서로를 부여안고 서울에서 만나자 속삭였다. 그렇지, 우리는 레스토랑에서도 함께 구글맵으로 세검정을 찾아보았던 사이지. 초등학교 앞 문방구가 폐업한다는 소식을 전한 것도 그때고, 탄식과 실망의 한숨을 보았던 것도 그때. 하지만 다시 만날 날 곧 있을 거야. 정말로.

어느새 많이 타고, 많이 먹고, 많이 걸어 그만큼 건강해진 우리는 아침나절 반짝 눈을 떴다. 오 일 동안 머물렀던 집을 배회하며 짐을 챙겼다. 오 분의 일 정도 남은 와인과, 고작 두 잔 마시고 남은 와인은 냉장고에 두었다. 맥주보다 와인을 많이 마셨던 여행이었다. 예약한 택시가 도착했다는 문자가 왔다. 이 날씨에 이 더위에 조끼까지 갖춘 정장 차림의 기사는 신이 나게 달렸다. 덕분에 사이드 미러끼리 충돌하는 작은 사고가 있었지만, 그는 덜렁이는 거울을 단속하고 다시 신속하게 우리를 공항에 부려놓았다.
내 비지니스 타고 천국 가리라, 염원했던 만큼 사기 그릇과 유리잔 속 기내식을 조심히 뒤적였다. 터키쉬 커피의 씁쓸함에 지난날 이스탄불이 떠오르고. 라운지에서 호사스러운 샤워를 마치자, 날아갈 듯 개운해진 육신은 기나긴 대기 시간에 조금씩 지쳐갔다. 나는 토마토 스프를 세 그릇 마시고, 달은 구운 야채를 열심히 먹었다. 그리고 허브로서의 이스탄불이 가진 장점에 대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달의 말에 깊은 깨달음을 얻었다. 사실상 동양과 서양을 잇는 그런 거, 얘네가 천 년 넘게 해오던 거라고. 그렇지. 양 쪽의 사람들에게 모두 이국적인 매력을 선사하지. 그 허브에서 터키와 전혀 상관 없는 스카치 위스키 한 병을 사들고, 다시금 인천행 비행기에 올랐다. 이제껏 누워서 하는 비행을 얼마나 꿈꾸었던가. 그러나 마음껏 길게 누워서도 긴 비행이 피곤하긴 매한가지다. 이제 내가 쿠바보다 더 멀리, 그러니까 남극 가까이의 대륙에 가 볼 수 있을 것인가를 점치다 깊은 잠을 잤다. 멍하니 깨어 요거트와 올리브, 토마토와 오이를 씹는 사이, 기내 방송이 나왔다. 창을 올리니 서쪽 연안의 섬들이 보였다. 익숙한 뿌연 바다. 작게 보이는 배, 모눈종이의 이 곱하기 삼 사이즈 같은 차들. 지난 밤, 이륙하며 본 달의 배가 완만하게 불러있었다. 저 달이 갸름했을 때 떠나왔는데, 보름이 흘렀다. 나는 더없이 잘 아는 고장에 내려앉았다. 입국 심사의 기나긴 줄 앞에서, 승객들보다 더 급히 채근하는 법무부 직원을 바라보며, 지중해 자락의 마을들에서 나 혼자 외롭던 때를 떠올렸다. 그곳에선 나 홀로 동동거렸는데, 이곳에선 모두가 동동거린다. 우리 같은 속도를 사는 사람들. 카트를 밀고 나오자, 태풍 노루가 모두 밀고가서 그런지, 푸른 하늘이었다. 그리고 무참히 더운. 혼곤히 어지러운 머리로 선택한 것은 평양면옥. 제육 반 접시와, 냉면 한 그릇씩을 비우고 나니 한양 아닌 북녘 어드메도 내 집 같았다. 찜기 속 들러붙은 만두처럼, 그렇게 집으로 돌아왔다. 마당은 정글이 되었고, 불 켜진 집을 보고 고양이들이 다녀갔다. 여기, 서울에 왔다.

덧글

  • 2017/08/11 11:59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7/08/13 01:10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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