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사는 것은 어떠니 어떤 동네

사진은 김보리(@_kimbori).


흐릿한 부분을 옮겨 적자면 이렇다. 'A woman must have money and a room of her own if she is to write fiction.' 이프 쉬 이즈 투 다음엔 다른 여럿이 들어갈 수 있겠지. 무엇을 만들어내든, 어디를 돌아다니건, 구속 없이 존재할 수 있는 상태. 백 년 전에도 불가능했고, 지금도 완전하지 않은 명제. 그래서 나는 거기에 갈급함이 있다. 손수 문구를 골라 액자를 만들었다. 섬광처럼 다가온 이름을 기념하기 위해. 원서동의 A room of One's own.

위건 아래건 나이의 차는 중요치 않다. 국적과 하는 일의 여부도 물론. 혼자 온 여행자들을 마주할 때마다, 나는 들뜨고 설레는 마음을 감추기 바쁘다. 하지만 그것은 표정과 몸짓 전체를 감싸기에, 낯선 이와 나는 곧 자연스레 친근해진다. 그래서 우리는 덜 비지니스스럽고, 새로이 알게 된 사람의 느낌이 된다. 페트라는 지금껏 온 게스트 중 가장 긴 시간 동안 머무른다. 학회 참석 차 방문했다지만, 알고보니 그것은 고작 나흘. 그 뒤는 그냥 서울에서의 날들이다. 우리는 서울역 광장에서 처음 만났다. 덥썩 커다란 캐리어부터 맡아 끌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해는 서서히 지고, 서울 스퀘어 벽면을 비추는 영상들은 선명히 미끄러졌다. 몇몇이 모인 간이 천막 아래서 복음 성가가 쩌렁쩌렁 울려퍼진다. 말은 달라도 멜로디는 같다는 말에, 종교가 있느냐 물었다. 페트라는 없다고 했다. 나는 미 투, 라고 말했다. 나중에 집에 돌아와야 아, 미 니더라고 했어야 했는데 라고 생각했다.

주차해 둔 차에 올라 함께 집으로 향했다. 그 사이 서울이 세 번째 방문인 것을 알게 되었다. 처음엔 북촌의 게스트 하우스에서, 두번째는 혜화동에서 그리고 이번은 우리 집에서 머무는 것도. 그렇게 페트라의 취향이 추려진다. 서울역에서 집으로 가는 가장 편한 길은 서소문을 거쳐 시청으로 향하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부러 우회전과 좌회전을 반복해 가며 숭례문을 지나기로 한다. 그 길을 좋아할 것 같아서. 서울로 어름에서 신호 대기를 하며, 나는 가이드처럼 말했다. 저기가 원래 고가 도로였는데, 하이라인 파크처럼 만들었대. 페트라는 전에 왔을 때 없었던 것이라며 단번에 알아본다. 좌회전 신호가 들어와 엑셀을 밟았다. 조명을 받은 숭례문을 지나칠 때 페트라가 물어왔다. 너는 서울에 사는 거 어때, 좋아? 라고.

그것은 지난 몇 년간 나의 쉼 없는 화두였는데. 만난 지 이십여분 된 외국인이 내게 묻는다. 나는 서울에 사는 것이 좋다고, 하지만 때때로 서울을 떠나 다른 곳에서 살고 싶다고 말했다. 페트라는 동감한다. 그리고 부다페스트에 대해 말한다. 그곳은 빅 씨티고, 사람들이 아주 많다고. 나는 그런 곳에 사는 사람들의 얼굴은 무표정하다고 말했다. 페트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화의 말미에 검정치마의 노래가 나온 것은 정말 우연이었다. '내 고향 서울엔'을 들으며 숭례문을 지나 커브길을 도니, 저기 씨티홀 아니냐며 말한다. 서울 다 꿰고 있구나 생각했다. 신나게 밟아 광화문에 진입하는데, 마침 저 멀리 청와대가 조명을 받아 존재감 있게 드러나 있다. 페트라는 말했다. 이유는 모르겠는데, 자긴 이 곳에 오면 너무나 좋다고. 정말 정말 좋아해서, 꼭 다시 오고 싶었다고 했다. 나는 주섬주섬 얕은 영어들을 끌어모아 설명했다. 조선이 처음 만들어질 때, 이곳의 기운이 좋아 여기에 궁궐을 세우기로 했다고. 내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이거였는데, 그놈의 기운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도통 모르겠다. 나의 어휘 창고에 그런 건 없으니. 그래서 그렇게 말했다. 영어로 어떻게 말해야 할지는 모르겠는데, 아무튼 여기가 좋아서 궁궐을 세웠다고. 그리고 다시금 이 동네가 너무 좋다는 페트라에게,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들이 함께 있어 그러냐고 물었다. 페트라는 반색한다. 정말 그렇다고. 그러면서 로테르담 이야기를 해 준다. 이차 세계대전에 폭격을 맞아 도시가 사라졌다고. 그 후, 새로이 건설된 도시의 모습은 정말 흉하다고. 그런 이야기들 사이로 우린 동십자각을 끼고 북촌으로 접어든다. 경복궁과 미술관 사잇길을 지나, 북촌의 언덕을 오르고 내렸다. 재동 초등학교를 지나면서는 이거 십구세기에 지어진 학교야. 라고 말했다. 말하자 말자 깨달았다. 유럽 사람한테 무슨 자랑하고 있는거지.

집까지 짐을 나르기 위해, 우리는 한 뼘 더 가까워진다. 무려 이십오키로라는 가방을 위 아래로 붙잡고 계단을 오른다. 이제 한 층 남았어, 라고 서로를 북돋으며. 그렇게 페트라는 우리 집에 왔다. 손 흔들고 집에 돌아와, 긴 비행에 힘들었을테니 푹 자라는 인사를 보냈다. 사실상 어제부터 시작된 여정의 끝, 하지만 그토록 원하던 침대에 누웠다는 답이 도착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다정한 메시지가 왔다. 원래 새로운 장소에서의 첫 밤은 늘 잠을 설쳤는데, 어제는 정말 편안하게 푹 잤다고. 그리고 지금 모닝 커피를 마시는데 너무나 행복하다고. 나도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답장을 했다. 거기엔 공감만이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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