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그리는 사이 일상

선생님의 말씀이 맞다. 마음에 담은 풍경을 그림으로 옮기는 동안, 우리는 그것을 더 많이 바라보게 되고, 그 사이 사랑이 스며든다. 조카의 뒷머리를 종이에 그려내는 동안 나는 그 아이의 가마를 본다. 힘 좋게 일어나는 머리칼을 본다. 내가 손으로 눕혀보아도 다시 솟구치던 머리카락들. 열중한 등 뒤로, 가지고 놀다 휙 던져버린 피규어. 그걸 바라보느라 피규어를 남기고 떠난 친구를 떠올리기도 한다. 얇은 펜을 골라 스케치북의 새 장을 넘길 때. 나는 작은 선 하나가 인상을 바꾼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지레 겁먹다가도, 다른 선들로 잔상을 흐리게 만드는 법을 알았다. 그건 메시지를 부드럽게 녹여내는 것과 닮았다. 효과적인 처세술 같기도 하다. 도저히 돌이킬 수 없다 싶을 땐 수정 테이프도 써 보았다. 조카의 뒷목엔 나만 아는 수정 테이프 자국이 있다. 처음에 달려나간 선이 너무 건장한 인상을 만들기에. 조카는 프로 야구 선수가 아니니까.

명절에 주문한 수채붓펜이 도착했다. 호미화방에서 산 다섯 색은 엄마에게 주고 왔다. 엽서 형태의 작은 스케치북과 함께. 엄마는 캘리그라피를 배우고 싶어한다. 엄마와 동생과 머리를 맞대고 모여, 각각의 색을 문질러 보았다. 글씨도 써 보았다. 엄마는 수채붓펜의 다양한 터치를 마음에 들어했다. 나는 나대로 새로 도착할 펜을 고대하며 연휴의 끝을 기다렸다. 그건 무려 서른 가지의 색깔이니까. 그 옛날 새 크레파스를 사고 들뜨던 마음, 딱 그랬다.

그래서 종이 위에 색이 늘어나고, 그 색들이 면을 메우기 시작했다. 슥슥 문지르는 재미가 펜과는 또 달랐다. 서른 색 세트를 샀으니 서른 색을 다 쓰고 싶어하는 마음. 그것도 어릴 적과 다르지 않다. 망설임을 대범한 척 뭉개고, 빗나간 자국 위에 다른 선을 덧댄다. 카메라 롤을 훌훌 넘기다 지난 날의 공연을 그리기로 한다. 모두 빠져나가고 난 후의 공연장. 숲의 어둠과 무대를 가르는 가느다란 조명. 마이크와 키보드, 기타. 그리고 눈물. 와인과 중국술과 마파두부까지. 홀로 흠모하던 분이 정말이지 좋은 사람인 걸 알게 되었을 때의 기쁨. 사직동의 밤이 지금 눈 앞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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