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이 스며들 때 어떤 동네

가을이다. 여름 나라에서 오는 게스트들은 종종 묻곤 한다. 지금 서울의 날씨는 어떠냐고. 나는 영문 버전의 기상청 링크를 보내준다. 거기에 주관적인 코멘트도 곁들인다. 날씨가 제법 쌀쌀하니, 머플러를 가져오면 유용할거야. 홍콩에서 오는 사만다를 기다리는 밤. 신촌에서 경복궁, 안국역을 거쳐 창덕궁에 도착하는 공항 버스를 알려주었다. 정류장에 내리면 건너편에 내가 기다리고 있을거야. 그러나 버스는 지나치는데 내리는 이가 없다. 혹시 내 눈 밖에 있을까봐 너 지금 내렸니? 하고 물으니, 지금 정류장을 지나쳤다고 말한다. 그 다음 정류장인 창경궁에 내려, 내가 곧 갈게. 가을밤은 어둡고 바람은 세다. 나는 서둘러 차를 몰고 원남동 어귀로 향한다. 횡단보도 앞에는 트렁크와 함께 선 사만다가 있다. 나를 본 사만다의 얼굴이 밝아진다. 우리는 인사를 나눈다. 한국은 처음인지, 이 다음엔 다른 도시로 가는지를 묻는데, 한국어를 부전공으로 했다고 한다. 지난 여름엔 서울에서 어학 연수도 했다고. 나는 쉽게 마음을 놓고, 내게 익숙한 언어로 대화한다. 말하는 것은 아직 서투르다는 사만다 앞에서.

여기서 순라길을 지나면 종묘를 거쳐 다시 집으로 가기 쉽겠다 싶었다. 담벼락과 건물 사이의 좁은 길로 들어서는데, 앞에서 헤드라이트가 비춘다. 원수는, 아니 스타렉스는 외길에서 만난다더니. 나는 조심스레 후진을 한다. 빌라 앞의 야트막한 공간으로 위태롭게 차를 넣으니 스타렉스가 전진해 온다. 마침 오디오에선 차이코프스키가 흘러나온다. 백조의 호수. 절정으로 치닫는 순간. 사만다와 나는 동시에 음악! 이라고 외쳤다. 그리고 함께 웃었다. 나름 극적인 순간이 흘렀다. 우리의 대화는 한결 편안해졌다.
퇴사와 입사 사이, 짧은 여행을 왔다는 사만다는 게스트북에 그림을 남겼다. 필기감이 그리 좋지도 않은 볼펜으로 공들여 창 밖의 풍경을 그려두었다. 광화문 어름부터 북촌의 낮은 지붕들, 틈틈이 자리한 나무들, 인왕산의 실루엣과 작은 차까지. 그림을 그려보아서 안다. 하나의 장면을 그리기 위해, 그것을 얼마나 많이 들여다보아야 하는지. 머무는 눈길 사이에서 선들이 완성되는 것을. 그 사이에 애정이 깃드는 것을. 보지 않아도 그 눈길을 알 수 있었다.

사만다가 떠난 자리를 매만지는 시간. 나는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흘려보냄 없이 온전히 음들을 귀에 담기 위해서. 햇볕 냄새를 머금은 커버를 이불에 꿴다. 침대에 걸터앉아 손을 놀리는 내 등뒤로 오후의 해가 진다. 폴의 새 음반을 듣는 그 시간은 행복했다. 특히나 첫 곡은 내 마음 깊숙히 스몄다. 안녕, 그동안 잘 지냈나요, 나는 잘 지내고 있다는 인사로 시작되는 노래. 그런 인사가 쉽지 않은 세상이기에, 나는 쉽게 뭉클해졌다. 노래라기보다 시를 읊는 것 같은 음성은 따뜻하고 솔직했다. 이 년의 시간 동안 키우고 가꾼 노래를 거두었다는 가사는 나의 손놀림을 돌아보게 했다. 지금 내가 키우고 가꾸는 것들. 내가 사랑하고 보듬는 것들을. 나는 그가 만든 노래와 유사한 연대를 느낀다. 사랑이 없으면 이렇게 정성을 들이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물질적인 보상 그 너머의 보람. 나는 무엇을 사랑하는가. 어렴풋하게 보이는 듯했다. 

덧글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