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음된 내 목소리는 <원서동 자기만의 방>

그간 다녀온 몇몇 책방들. 각기 다른 취향들이 묻어있는 공간. 오늘은 아주 실용적인 이유로 주민센터를 다녀오는 길이었다. 대형폐기물 스티커를 구입하기 위해. 몇 장의 종이를 고이 접어쥐고 돌아오는 길. 동네 책방의 창가에 곱게 진열된 책을 보았다. 보기에 아주 어여뻐 사진을 찍었다. 여기 놀러오시는 많은 분들이 봐주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지난 주엔 느지막히 성산동에 들렀다. 밤의 책방. 생수로 목을 축이며 그렇게 이야기를 나눴다. 미리 질문지 같은 것이 있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그런 것은 없었다. 나는 펜을 굴리며 예상 질문들에 대한 답을 써보기도 했다. 승률은 어떠했을까. 긴장했던 목소리는 차차 풀렸다. 웃음을 마구 터뜨릴 수 있을때쯤 대화가 끝났다. 난생 처음 팟캐스트 녹음을 했다.

http://www.podbbang.com/ch/11972 (스몰포켓 27. 앞으로 저는 이걸 계속 할 거예요 - 한량)

녹음을 마치고서 늦은 저녁을 먹었다. 새로 개업한 식당의 구석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했다. 처음 먹어보는 요리와, 잘 구워진 주먹밥, 맥주와 하이볼을 앞에 두고. 못다한 이야기들, 흘러가는 이야기들, 지나간 혹은 앞으로의 이야기들이 자연스레 떠다녔다. 다음날 나는 한 시간 분량의 녹음을 들었다. 왜, 녹음된 자기 목소리는 어색하지 않나. 이번엔 다른 기분이 들었다. 내 목소리가 어색하다기보다, 아예 다른 사람의 목소리처럼 들렸다. 그래서 나는, 조금 덜 민망하게 내 목소리를 경청했다. 아, 거기서 이 이야기를 하면 좋았을걸! 언제나 수반되는 옅은 후회와 함께. 그렇지만 나는 많이 밝아졌다. 자책은 가벼운 잽처럼 흘러가고, 자기가 했던 우스개 소리를 들으며 입꼬리를 올렸다. 두 페이지에 걸친 낭독은 더듬거나 씹는 실수 없이 무사히 마쳤다. 휴, 여간 나르시스트가 아닐 수 없다. 생각보다 많은 시간에 걸쳐 블로그, 특히 이글루스라는 이 공간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했다. 거기에 내 진심이 묻어있다. 내게 가장 편안하고 아늑한 이 둥지. 내게 가장 좋은 곳.

스치듯 이런 생각을 한 적 있다. 내가 자주 쓰는 문장의 구성. 내가 즐겨 쓰는 단어들의 생김. 문장부호가 드러내는 나의 기호. 허공에 떴다 사라지는 말만큼 즉각적이진 않으나, 탈고 이후에도 남아있을 나의 습관들. 익숙한 나머지 존재를 잊기 쉬운 나머지들. 나는 내가 ㄱ으로 시작하는 접속어들을 많이 쓴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래서, 그래도, 그러니까, 그러므로, 그렇게, 그렇지만, 그리고 등등. 앞뒤로 대립하도록 혹은 부드럽게 이어지게끔, 혹은 자세한 설명을 풀어내기 위한 작은 도구들. 나는 문장과 문장 사이를 건너고 있다. ㄱ으로 만들어진 노를 저으며. 어쩌면 지금도 건너는 중일지 모른다. 엷은 막이라면 막이랄까. 그 틈을 찢고 나오는 기분이다. 아주 옛날의 내가 그랬던 것처럼. 설명할 수 없는 자신감이 움튼다. 나는 날씨의 영향을 아주, 아주 많이 받고 있다.

덧글

  • 2018/04/13 16:55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한량 2018/04/19 21:17 #

    아,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연애 이야기 쓰던 때가 정말 지난 세기 같네요. ㅋㅋㅋㅋ
    파리는 열심히 쓰다 끝까지 마무리를 못 했어요. 그 이유 아세요?
    더 쓸 수가 없었어요. 마음에 시기와 질투가 일어서. ㅋㅋㅋㅋ
    여행가면 저 되게 내추럴한 모습으로 다니거든요. 누가 보지도 않을 뿐더러 본다고 해도 뭔 상관?
    이렇게 배째는 마음으로 엄청 민낯에 노브라의 자유를 만끽하며 다니는데
    파리에서는 제가 나서기 전 거울을 꼼꼼하게 보게 되더라고요.
    왜나면. 그 도시에 잘 보이고 싶었어요. 웃기죠... 어떤 사람이 아닌 도시에 잘 보이고 싶다는 마음은
    처음이었어요. 그리고 그 이후에 가는 여행들에선 뭐 역시나 아무렇게나 하고 다니는데 말이에요. ㅋㅋ

    팟캐스트 들으셨다니 뭔가 부끄럽고 감사하고 그러네요. 하하하 저는 한 번 듣고는 다시 못 듣겠어요.
    한 번의 모니터링으로 족한 사람.... sns 마케팅 이런 거 나는 안 돼... 안 생겨요.... 이런 사람.. ㅋㅋㅋ

    많이도 칭찬해주셔서 몸 둘 바를 모르겠네요. ^^ 계시는 곳에서 늘 건강히 행복하시고요.
    (갑자기 오빠 생각 나네요. 우리들의 영원한 오빠 ㅋㅋㅋ)
    마켓 나가거나 등등의 소식 있으면 또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해요!
  • 2018/04/16 23:37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8/04/19 21:18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네임펜 2018/04/27 13:56 # 삭제 답글

    방송 잘 들었어요~차분하게 말씀 잘 하시던데요? ^^ 제 얘기도 하신거 맞죠?! ㅋㅋ 얼른 입고 되었음 좋겠어요!! 후훗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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