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투 더 베이직, 바르셀로나 빛을먹고사라져버린

이 도시를 처음 방문한 것은 팔 년 전이다. 걱정하는 엄마에게 넷이서 함께 가니 염려하지 말라고 큰 소리를 쳤으나, 사실 나 혼자의 여행이었다. 바르셀로나-마드리드-세비야-그라나다-말라가-리스본-포르투.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한인민박에서부터 겹겹이 들어찬 혼성 도미토리까지. 무섭거나 어려울 것은 하나도 없었다. 소매치기로 악명 높다는 도시들에서도 나는 지극히 안전했다. 헐렁한 에코백을 매고 간밤에 얼려둔 이 리터짜리 생수병을 한 팔에 안고 다녔다. 가방은 무거운데 그건 다 필름카메라와 두꺼운 론리플래닛 탓이었다. 스페인&포르투갈 편을 들고 나선 첫날, 숙소로 돌아온 나는 커터칼로 책을 난도질했다. 굽은 어깨를 펴며 앞으로 갈 도시별로 나눠 테이프로 분철했다. 그러니까 돈은 없는데 트렁크에 커터칼과 테이프 같은 것은 가지고 다니는 여행자였다. 어디 그것뿐이랴, 노트에 색연필에 만년필에 묵직한 필통까지 이상한 짐이 한짐이었다. 트렁크 구석엔 건면 파스타와 소스, 양파 같은 것이 굴러다녔다. 누가 봐도 가난한 여행자였음이 분명했다. 털어가려야 털어갈 것이 없는. 한여름 말라가의 바닷가. 배를 드러내고 물 위에 뜨면 썬글라스 너머로 맹렬한 태양이 보였다. 고개를 들어 뭍을 바라보면 작고 마른 야자수 아래 던져놓은 내 가방이 보였다. 나는 안심하고 물장구를 쳤다. 여행의 중반이 지날 무렵엔, 떠나기 전 막 사귄 남자친구에게 시차를 무시하고 스카이프를 걸었다. 폴더폰을 잡고 호스텔 식당 구석에 앉아 한참을 통화하기도 했다. 분 단위로 정산될 로밍 요금 같은 건 가볍게 무시할 수 있었다. 목소리로 듣는 위로가 훨씬 컸으니까. 그때가 스물여섯이었다.

해가 바뀌어 스물일곱이 된 우리는 함께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처음 기착지는 바르셀로나였다. ? 나는 그 도시가 너무 좋았으니까. 사랑하는 사람에게 내가 본 아름다운 도시를 전해주고 싶었다. 꼬박 한 달을 걸린 여행에서 우리는 많은 것을 만나고 또 보았다. 에어비앤비에 묵은 것도 처음이었다. 훌레스가 우리에게 빌려준 방엔 작은 테라스가 딸려있었다. 새벽녘이면 비가 세차게 쏟아졌다. 그러다 아침이 되면 날이 활짝 개었다. 아침 나절 새로 만들어낸 싱싱한 구름들. 아무것도 거칠 것이 없는 햇살. 조그맣지만 없을 것이 없는 요리사의 부엌에서 밥을 만들어 먹곤 했다. 덧창이 조금 열린 거실 바닥은 노란색과 파란색이 섞인 타일이었다. 훌레스의 집은 지금껏 우리 대화에 등장하는 단골 소재다. 훌레스는 그걸 알까 

여행 내내 투닥거리고 그러다 좋아서 또 싱글벙글하던 우리는 다음 해 결혼을 했다. 몬주익에서 찍었던 사진은 청첩장의 앞면과 뒷면이 되었다. 그리고 두 번의 대통령 선거를 치를 만큼의 시간이 지났다. 우리는 무럭무럭 자라 어엿한 삼십대 중반이 되었다. 유난히 긴 겨울이 지나고 봄 같지 않은 봄이 지나는 새 우리는 많이 지쳤다. 한 줄로 한 장으로도 채울 수 없는 좋고 싫음들. 지친 까닭에 서로의 마음을 할퀴고 그게 아물기 전에 다시금 상처를 헤집고. 그러다 결심했다. 백 투 더 베이직. 다시금 바르셀로나에 가기로 했다.

 



덧글

  • 미로 2018/07/07 18:50 # 답글

    처음으로 다니던 회사를 퇴사하고 한달여 정도 다닌게 저에겐 첫유럽 여행이었는데 올해 초에 5년만에 유럽을 찾았더니 왠지 그때 감정들이 몽글몽글 떠올라서 좋기도 하고 한편으론 좀 아련하기도 하더라구요.ㅎㅎ

    한량님은 더도 말도 딱 처음에 다녀오신 바르셀만큼 좋은 여행하고 오셨으면 좋겠네요. :)
  • 한량 2018/07/11 11:18 #

    감사합니다! 저 잘 다녀왔어요. 히히
    와서 필름사진들 보며 얼마 전을 복기하고 있습니다.
    아아 그리워요. ㅎㅎ

    요며칠 날씨 참 좋았는데 역시 일장춘몽이네요.
    어제부터는 몹시 습해서 저희 집 제습기는 산업시대 노동자처럼 일하고 있어요. 저는 악독한 공장주..
    그럼에도 좋은 하루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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