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날의 아침 빛을먹고사라져버린

이른 시간에 눈이 떠졌다. 바르셀로나에서 맞는 아침. 부엌 앞 너른 창밖으론 제비들이 난다. 날은 약간 흐리고 공기도 선선하다. 긴팔 옷을 꿰어입고 집을 나선다. 우리도 제비처럼 배를 채우고 장도 좀 봐서 와야겠다 싶었다. 이른바 동네 탐색의 시간.

정방형의 블럭들이 모인 도시. 그 사잇길을 따라 몇 번 맴을 돈다. 달은 이내 집 근처의 지도를 파악한 눈치다. 저기는 우리 어젯밤 갔던 편의점이네. 라는 말을 들어도 나는 여기가 어딘지를 잘 모르겠다. 24라는 숫자와 Mercat이란 글자, 늘어선 맥주들과 궤짝 속 무른 과일들, 카운터를 지키던 남자의 지루한 표정. 이런 것은 묘사할 수 있지만 그곳까지 어떻게 얼만큼 가야 하는지는 모르는 사람. 이런 내가 기가 막히도록 척척 길을 찾은 적이 있었으니, 그건 적도 아래 남반구에서였다. 지구의 자전 방향에 따라 수챗구멍 속 물길도 반대라는데, 내 길 찾기 능력도 그리 만들어졌나 보다 짐작할 뿐이다.

달은 검색을 몇 번 하더니 집 가까운 곳에 괜찮은 까페가 있다고 했다. 오픈 시간은 여덟 시. 거리에서 가게 안을 들여다보니 손님이 아무도 없다. 바에는 커다란 수박이 덩어리째 올라가 있다. 직원이 분주하게 재료들을 정리하다, 눈이 마주치니 손짓을 한다. 그렇게 까페의 첫 손님이 된다. 메뉴판을 꼼곰히 읽은 후 드립 커피와 라떼, 크로아상 샌드위치와 토마토 샌드위치를 주문한다. 그들의 손놀림을 흘깃흘깃 훔쳐보는 사이, 다른 테이블에도 손님이 차기 시작한다. 출근 전 혹은 등교 전 들리는 곳 같다. 아니나 다를까, 열린 문 밖에선 출근길 작별 인사가 한창이다. 아빠 손을 잡고 가야 하는 꼬마는 엄마와 헤어지기 전 여러 번의 뽀뽀를 한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뽀뽀와 속삭임은 결국 걸어가는 엄마를 다시 불러 세워 손 흔드는 것으로 끝난다. 꼬마는 그제야 씩씩하게 아빠 손을 잡고 간다. 어깨엔 배낭도 야무지게 메었다.

적당히 부른 배를 안고 거리를 걷는다. 한결 산뜻한 기분이다. 영업 준비를 시작하는 가게들을 지나 계속 걷는다. 출근하는 차들과 바이크들을 본다. 서울의 아침이 슬몃 겹친다. 분주한 분위기는 비슷한데 전혀 다른 한 가지가 있다. 그리고 나는 그걸 보기 위해 이 도시에 왔다.

살짝 갠 하늘은 더없이 높다. 정말 말도 안 되게 높다. 거기에 솜사탕을 얇게 편 듯한 구름이 머물러 있다. 마침 오랜만에 안부를 물어온 친구에게, 여기 바르셀로나에 하늘 보러 왔다고 하니 친구가 웃는다. 그런데 정말 그럴만한 하늘이다. 머무는 동안 계속 이렇게 감탄할 것을 알면서도 나는 허공을 가리키며 허우적댄다. 그러다 만난 작은 공원. 조그만 광장을 사이에 두고 양 옆에 공원이 둘 있다. 하나는 어린이 놀이터, 하나는 강아지 놀이터. 여차하면 둘 다 데리고 나와 각각 풀어놓으란 뜻일까. 강아지 놀이터엔 작은 강아지부터 커다란 개까지 여럿이 놀고 있다. 주인들은 한가로이 담소를 나누고 있다. 개들은 저들끼리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다, 낮게 나는 비둘기를 향해 달린다. 그때의 표정만큼은 야생동물과도 같아서, 철책 밖의 나는 가슴을 쓸어내린다.

그러다 진짜 야생동물도 만난다. 바르셀로나 대학 교정 안의 길고양이. 정원 옆 그늘진 곳엔 길고양이 급식소들이 있다. 얼기설기 엮은 판자 아랜 물과 사료들이 있었다. 흩뿌리는 비에 고양이들은 심기 불편한 표정이다. 자연스럽게 우리가 밥을 주는 길고양이들이 생각난다. 마당 한켠 비가 들이치지 않는 곳에 상자 가득 밥을 뿌려주고 왔지만 금방 동이 날테다. 눈치껏 다른 집에서 잘 얻어먹으며 지내길. 눈에 밟힌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이렇게 알게 된다. 

우산이 없는 우리가 가랑비를 피하러 들어간 교정. 오래된 학교 건물은 사각형의 중정을 두고 이어져 있다. 해를 가리는 구름이 잠시 물러서면 또렷하게 볕이 들었다. 한산한 복도에는 학교 소식을 알리는 게시판이 붙어있다. 여름방학 동안 진행될 학술대회, 동아리 광고, 문화행사 알림 등. 낯선 단어들을 떠듬떠듬 이어 유추해본다. 고색창연한 회랑 구석엔 이단짜리 철제 사물함들이 늘어섰다. 그 모습만큼은 하나도 낯설지 않아 웃음이 났다 
흘러다니다 만난 까사 바뜨요. 줄 서서 입장하기엔 지금은 더 중요한 곳에 가야 한다. 구글맵의 별표가 우리 걸음걸음을 환히 비춘다. 자박자박 걸음을 재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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