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청동 자기만의 방 어떤 동네

늦봄부터 지금까지 여러 일들이 겹쳐 일어난다. 덕분에 오랜만에 만난 친구 앞에서, 나는 지지난 계절부터의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마음 좋은 친구는 그 모두를 잘 들어준다. 적당히 고개를 끄덕거리며, 알맞은 추임새를 곁들여 가며. 오늘은 어제의 결과, 오늘은 내일의 원인. 인과론에 충실한 날들이다. 새로운 도전이라면 도전일까, 어쩌면 모험이 될 수도 있는 일들도 몇 있다. 나 홀로 하는 것도 있고, 같이 주거니 받거니 하며 만드는 일도 있다. 소포를 받고 또 택배를 부치다 끙끙대며 원고를 쓴다. 떨리는 마음으로 파일 첨부한 메일을 보낸다. 무엇보다 나는 공손한 협력자가 되려 노력한다. 성실하고 젠틀한 모습을 보이고 싶은데, 그전에 미리 깨닫는다. 성실하고 젠틀한 모습을 보이려면, 먼저 내가 그런 사람이어야 한다. 쓰고 보니 이것 역시 인과론이다.

우여곡절 끝에 이사를 하고 집을 단장하고, 어언 한 달이 지났다. 머리로 그린 상상이 어느정도 그려졌다. 고되게 노동한 결과다. 어느 저녁, 나는 또렷한 정신으로 노트북 앞에 앉았다. 그리고 막힘 없이 문장을 써내려 간다. 마음이 두근거린다. 이 글로 어디에 사는 누굴 만나게 될지 모르는 일이다. 아무렴, 그렇고 말고.

우리는 이곳을 다양한 이름의 공간으로 만들고 싶었다. 누구의 집, 다른 누구의 집도 될 수 있는. 먹고 마시고 쉬고 사색하며 그 모두가 편히 쉴 수 있는 공간. 우리 사이엔 적당한 온도의 배려가 흐르고, 그러면서도 집 아닌 곳에서의 색다른 경험이 있기를. 발품을 팔고 손품을 팔고, 전동 드릴을 쥐는 내내 든 마음이다. 동네 산책을 하면서는 서울의 고즈넉함에 대해 생각했다. 피부로 닿는 사계절, 변하지 않는 모습의 궁궐, 그리고 완만하게 이어지는 골목들. 거기에 있는 작고 오래된 가게들. 매일 같이 옥상에 올라서는 눈앞의 산과 하늘을 보았다. 하루하루 아니, 시시각각 다른 채도의 풍경. 빨래를 널면서도, 빨래를 걷으면서도 잠옷 차림으로 혼자 감탄하곤 했다. 이런 걸 보고 마음에 평화가 들어찰 줄이야. 바람막이를 입고 나선 밤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곳은 달리기에 참 좋은 동네구나. 진선북까페에서 횡단보도를 건너 경복궁 동쪽 담을 따라 달린다. 동십자각에 이르러 서쪽으로 방향을 튼다. 광화문을 스치고, 다시 경복궁의 서쪽 담을 따라 청와대 앞길로 접어드는 달리기 코스. 달리기를 좋아하는 몇몇의 얼굴들이 떠올랐다. 운동화끈 조여매고 함께 달릴 날을 상상했다. 가을, 겨울, 봄, 여름. 언제가 될지 몰라도 그 상상은 몹시 근사했다.
이 모두에 어떤 이름을 붙일 수 있을까. 이제 막 발을 내딛은 참이니 떨리는 마음도 한가득이다. 부디 순항하기를, 나는 지난 추석 보름달에 일찍이 빌어두었다. 원서동에서 맺은 귀한 인연들의 이름을 헤아리며 잠들 밤이다. 고마운 생각에 뒤척이다 스르르 잠들 밤이다. 그 잠이 달고 깊을 것을 나는 안다.


덧글

  • 2018/10/12 08:23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8/10/22 22:21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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