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린 날 할 수 있는 이야기 일상

그것이 취미라도 되는 양, 열심히 집을 보러 다닌 날이 있었다. 각기 다른 세 군데의 부동산 사장님과 총 여섯 군데의 집을 보았다. 순라길 근처의 두 곳, 계동에 한 곳, 그리고 삼청동에 세 곳. 그 마지막 집에서 있었던 일이다. 앞서 두 곳을 보고 난 후, 사장님은 히든카드처럼 한 집의 이야기를 꺼낸다. 거기가 월세가 좀 비싸긴 한데, 그래도 건물을 통으로 다 쓰고 마당도 있고 테라스도 좋아요. 내 귀는 솔깃해진다. 당연히 부담 못 할 금액의 월세지만, 한편으로 그런 가격의 매물은 어떤 곳인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한번 볼게요. 그렇게 우리는 조그만 골목으로 들어선다. 좋은 매물을 많이 가지고 계신가 봐요. 의례적인 칭찬을 곁들이는 나야말로 거간꾼 같다. 뭐, 물건이야 많죠. 칭찬을 능숙하게 받는 사장님은 그보다 더 고수. 여기입니다. 하고 들어서는데, 마당 앞 문간에 커다란 불상이 앉아있다. 갑자기 분위기 발리, 라고 해야 할까. 어리둥절하는 내게 사장님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이야기를 툭 던진다. 여기가 원래 점집이었어요. 하고.

불상만 이상한 것은 아니다. 마당엔 작은 테이블과 의자가 있는데, 거기에 웬 남녀 둘이 앉아있다. 머쓱한 분위기 가운데, 사장님이 부동산에서 왔다고 먼저 말을 한다. 아, 저희는 잠시 앉아있는 거예요. 그래도 되죠? 하는 사람들. 조금 이상하긴 하다. 어수선한 빈 집의 마당에 왜 앉아서 담소를 나누는 걸까. 내 주의가 흐트러지는 것을 막으려는 듯, 사장님은 나를 서둘러 이끈다. 반지하에 자리 잡은 창고를 보여주고(몹시 으스스했다) 드디어 현관문을 열고 들어섰다. 잔 짐들을 그대로 둔 빈 집은 고요하다. 어느 방에는 병풍과 촛대, 그리고 비닐봉투에 가득 담긴 팥도 있다. 사장님은 능숙한 워킹으로 집안 곳곳을 보여준다. 바닥도 새로 하고, 화장실도 다 새로 수리해서 깔끔해요. 하면서. 네네, 하며 나는 카메라로 집 곳곳을 담는다. 고풍스러운 나무 계단을 올라 확 트인 이층으로 향한다. 이 방이 경치가 정말 좋아요. 하며, 사장님이 창문을 열어주기에 다시 카메라를 켜는데 아무래도 이상하다. 콘트라스트를 극대로 올린 듯한 화면만 뜬다. 나는 셔터를 누르지 못하고 머뭇거리는데, 사장님은 내가 사진을 다 찍었다 싶었는지 창을 닫는다. 아니, 저 아직 못 찍었어요. 당황한 나는 액정을 마구 눌러보는데 여전히 화면은 이상하다. 창을 다시 열어주시는 틈에 셔터를 누르긴 하는데, 찍힌 사진의 모습은 영 기괴하다. 사장님은 건너편 방을 보여준 후, 이층 테라스로 나가 전경을 설명한다. 약간 슈퍼 호스트다운 느낌이다. 그러나 나의 정신은 이상하게 찍힌 사진에 팔려있다. 집은 대충 보는 듯 마는 듯하고 나왔다. 아까 그 사람들은 여전히 마당에 앉아있다. 사장님과 인사를 나누고, 골목을 꺾어내려 온다. 사진첩을 살펴보는데, 아까 찍힌 사진 외에도 다른 사진들의 상태도 조금 이상하다. 기본 카메라 비율에 맞지 않는 사진이 있는가 하면, 두 개의 사진이 합성한 듯 겹쳐있는 사진도 있다. 어플을 쓰지 않고 그냥 카메라 앱을 썼을 뿐더러, 지금껏 아이폰을 써 온 역사상 이런 일은 없었는데.

당황한 마음을 스무디킹으로 달래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 정말 집터의 무엇이 이런 장난을 치기도 하는 걸까? 사실 그런 세계에 대해 뭘 좀 알아야 무서워하기도 할 텐데, 나는 너무나 아는 것이 없다. 입이 근질근질한 나는 결국 그 밤, 친구들과의 대화방에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아까 찍은 사진들도 전송한다. 아니나 다를까, 격렬한 반응이 이어진다. 막걸리를 뿌려야 한다든가, 굵은 소금을 뿌려야 한다는 처방들이 튀어나온다. 집에 막걸리 없어. 천일염은 있다. 그런데 원래 집에 들어오기 전에 뿌려야 하는 거 아냐? 나 이미 들어와 누운 지 오래인데. 하며 키읔을 찍는다. 그건 그렇지. 친구들도 화답한다. 한 친구가 진지하게 물어온다. 집에 냉수 있냐? 냉수야 있지. 하니, 그럼 시원하게 한 잔 마셔. 라고 말하는 친구. 그 덕에 웃느라 바쁘다. 겁 주는 친구들에게 엄포를 놓는다. 너네 링 알지? 내가 지금 사진 보내서 너네 폰에도 다 들어간 거야. 너네도 이제 큰일났다. 덕분에 대화방은 세기말 분위기에 휩싸이고, 나는 따라 웃다 생각한다. 어, 그러고 보니 진짜 아까의 그 사진은 링 같은 영화에서 귀신 시점으로 보는 장면 같네. 채도가 아주 높고 명암도 진해 대부분의 풍경이 허옇게 뜨는 게 말야.

다음 날, 우리는 급조한 벚꽃놀이를 기획한다. 벚꽃은 벚꽃인데, 무얼 먹을지는 그보다 더 중요하니 한참을 논의 끝에 삼겹살로 정한다. 두터운 돌판 위 삼겹살이 지글지글 익는다. 돼지기름을 먹은 김치가 뽀얗게 익어가고, 나는 어제의 사진을 다시 한번 친구들에게 보여준다. 무섭지, 무섭지. 거품 가득한 카스를 마시며 겁을 준다. 진짜 이상하긴 하다, 하며 고기를 뒤집는 친구들. 고기 냄새 잔뜩 밴 채로 으슥한 골목길을 걷는다. 우리 거기나 갈까? 절두산 성지. 친구 하나는 그게 어디야라고 묻는다. 너는 우리 학교 나왔으면서 양화진을 모르냐? 옛날 선교사들 목이 댕겅댕겅 잘려나가서 절두산이잖아. 마음껏 타박을 할 차례다. 뜨거운 커피 한 잔씩을 들고 묘지를 향해 걷는다. 그 언젠가의 방탈출 게임을 잊지 못하는 우리는, 한밤의 묘지 탐험을 할 생각에 약간 두근거린다. 그 사진의 귀신을 좀 떨궈야겠어. 그런 모의를 하며 묘지로 향하는 계단을 오른다. 컴컴한 길에 들어서려는데, 갑자기 손전등 불빛이 휘휘 돈다. 뒤를 돌아보니 아마도 관리인 분이 출입을 금한다는 표시를 하는 듯하다. 우리는 얌전히 돌아 나온다. 묘지 탈출 성공! 하며 시시덕거린다. 여기가 성당 쪽 말고, 교회 쪽으로도 갈 수 있어. 나쁜 일 하는 것 아닌데 나쁜 일 하는 사람이 된 것처럼 숨 죽여 이야기한다. 급조한 꽃놀이는 담력시험이 되어간다. 우리는 교회의 언덕 너머에 있는 묘지에 도달한다. 언덕 아래로 한강의 불빛이 반짝이고, 컴컴한 묘지 위론 합정의 네온사인이 내려앉는다. 우리가 상상한 경건함, 혹은 으스스함은 요란한 번쩍거림에 빛을 잃는다. 종교를 전파하러 왔다가 순교한 선교사들 무덤 위로, 국민카드의 광고가 내려앉는다. 점집의 귀신들도 자본 앞에선 그저 잠잠해질까? 그 집 월세가 무려 250이었다고. 진짜 내가 무서워해야 할 것이 무언인지 모르겠네. 우리의 결론은 둘 다 무섭다에 수렴한다.

이런 이야기를 까페 이마에 앉아 꺼내놓는다. 편집자님과의 만남에서, 근황을 얘기하다 무심결에 튀어나온 이야기. 생글생글 웃으며 잘 들어주는 편집자님 앞에서 나는 거간꾼 아니 전기수가 되어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이런 이야기는 남편이 아주 무서워해서 처음엔 말도 못 꺼냈어요. 라고 말하자 편집자님이 하하 웃는다. 정말 그렇다. 초자연적인 이야기를 아주 무서워하는 달. 그 앞에서 나는 까닭 없이 대범해진다. 스무 살 이후 자취를 시작한 이래, '난 사람이 무서우면 무서웠지 귀신이 무서운 적은 없다.' 라고 큰소리치면서. 아니나 다를까, 기나긴 이야기를 들은 달은 정색한 표정으로 말한다. 그 사진들 지웠어? 응, 찜찜해서 지웠지. 사진 지워도 지운 사진함에 남잖아. 그것도 지웠어? 아니. 그럼 지워. 아, 클라우드에도 올라갔을 텐데. 아이 클라우드, 구글 클라우드 다 쓰잖아. 달의 표정은 진지하다. 진짜 무서운 것은 이거다. 사진을 찍은 다음 지워도 여간해서 완벽히 지울 수 없는 세상. 소멸 자체가 어려운 세태다. 게다가 나는 홀랑홀랑 친구들에게 보내주기까지 했으니. 링의 귀신이라면 이미 좋다고 돌아다닐 것이다. 북미에 있는 친구들까지 사진을 봤으니, 태평양 전체가 무사하지 못할 터. 아이고 무서워. 이불 안에서 오들오들 떨 일이다.

원고를 써 보셔도 좋겠어요! 라는 답을 들은 것은 다른 이야기였지만, 이렇게 흐리고 으스스한 날이라 나는 구시렁구시렁 그 날의 이야기를 쓰고 있다. 그 뒤로 이상한 일들이 일어났을까? 그렇진 않다. 하지만, 그때 본 집 근처에 가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마음에 드는 집 있으셨어요? 물어온 부동산 사장님 전화에 거절의 의사를 표한 것도 사실이고. 월세 250이 무서운 것은 여간해서 변하지 않는 진실이다.

모든 무서움을 뒤로 하고, 저는 다가오는 내일 북페어에 참가합니다. 4월 27일 토요일 12시부터 7시까지 서촌 베어까페에서 열리는 '책 보부상'에 참여해요. 저 귀여운 안내도로 짐작해 볼 때, 제 자리는 야외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다행히 날씨가 맑다고 하네요. 책들과 엽서, 그리고 5월 달의 오픈하우스 안내와 함께 찾아뵐 예정입니다. 시간 되시는 분들 놀러오셔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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