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네 집에 다녀왔습니다. 빛을먹고사라져버린

정확히 말하자면 달의 친구네 집에 다녀왔다. 새 집을 지었다는 소식은 예전에 들었고, 숲처럼 가꾼 마당에 작은 별채를 짓는다는 말도 전해들었다. 그곳은 게스트를 위한 공간으로 꾸리려 한다는 소식. 그리고 완성된 후, 제일 먼저 우리를 초대하고 싶다고도 했다. 그건 아주 기쁜 말이다. 가방을 당장 꾸릴 수 있는 말.

달과 철희 오빠의 사이가 얼마나 되었는가 헤아려 보려는데, 길게 생각할 것도 없다. 오빠는 원서동과 구기동, 그리고 삼청동까지 다녀간 적이 있으니. 원서동에 머물다 간 후엔 네 폭의 광목 커튼을 선물로 보내왔다. 삼청동에 올 땐 푸른빛 색실로 짠 매트를 가져왔다. 아, 책장 위 나란히 놓은 컵들 역시 그렇다. 둘이 개인적으로 주고받는 것들은 잔잔한 선물을 넘어, 길고 긴 이야기로 이어진다. 불쑥 생각나 스스럼 없이 연락해도 괜찮은 사이. 옆에서 본 우정은 그런 모습이다. 견고하고 든든한 그런 우정.

우리는 점심 무렵 버스를 탄다. 대전까지는 두 시간 남짓. 챙긴 이어폰이 무색하게 잠이 솔솔 온다. 불규칙한 진동에 잠을 깨니, 내릴 곳이 가깝다. 내려선 버스를 탈 것도, 택시를 탈 일도 없다. 트렁크를 덜덜덜 끌며 집까지 걷는 길. 이런 곳을 뭐라고 불러야 할까. 조금씩 다른 느낌의 주택들이 단정하게 늘어섰다. 저마다 독특한 주인의, 건축가의 색이 묻어난다. 이윽고 당도한 오빠네 집도 그렇다. 마주보고 있는 두 개의 건물. 그 사이는 물론 주변을 채우고 있는 것은 온통 초록이다. 오빠가 알려준 비밀번호를 누르고 오늘 우리가 묵을 별채에 들어선다. 우리는 잠시 입을 다물지 못한다. 아, 아, 아.
적당히 흐린 날, 하얗게 드는 빛이 집안 곳곳에 내려앉는다. 오빠가 아끼는 오브제들이 각자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나는 카메라를 꺼내고, 달은 음악을 선곡한다. 현관에 가지런히 놓여있던 슬리퍼를 끌고 그렇게 집을 누빈다. 정말이지 좋은 곳이다. 드높은 천장, 높다란 창문에서부터 떨어지는 빛, 부엌의 세심한 차림새, 적재적소에 배치된 가구와 소품들. 이 모두가 잘 어우러져 하나의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인테리어의 완성은 조명과 패브릭이라고 늘 생각해 왔는데, 여기엔 하나를 더할 수 있다. 오랜 계획과 풍부한 상상이 빚어낸 견고함. 그건 물성의 가장 기초, 건축과도 관련된 것이겠지. 그게 공간을 누비는 내게도 스며든다. 너른 침대에 털썩 누워 한없이 높은 천장을 바라본 후, 나는 조그만 생각을 했다. 아, 나도 이런 집을 짓고 싶어, 라고. 집을 지으면 십 년을 늙는다는데, 이런 집이라면 십 년이고 이십 년이고 늙어도 좋아, 라고.

달이 잠시 집을 비우고, 나 혼자 다시금 집을 둘러본다. 아무래도 여긴 다시 와야하는 곳이다. 노트북과 옷가지 몇 개만 단촐하게 꾸려, 길게 머물고 싶은 집이다. 이곳에선 어쩐지 글이든 그림이든 그 무엇이든 술술 풀릴 것만 같다. 두번째 롤의 필름을 끼우며 나는 혼자만의 휴가, 이른 여름을 상상했다.

늦은 저녁, 퇴근한 오빠를 맞이한다. 몇 걸음 너머 도착한 오빠의 집. 우리에게 맛있는 것을 차려주겠다며 분주한 오빠를 대신해, 나는 기꺼이 호스를 들고 마당에 나선다. 별채 앞의 나무들부터, 집과 집 사이의 식물들, 마당 입구에 이르기까지 골고루 물을 뿌린다. 주인이 들인 정성이 한눈에도 들어온다. 잎들은 무성하고 몇몇의 나무엔 열매가 달렸다. 작은 자갈들을 자박자박 밟는 사이, 마음이 싱그러워진다. 오빠는 마당 한 켠에서 허브들을 거두어 간다. 오늘 저녁은, 바질페스토 파스타라고 했다.
층층이 같은 주파수의 라디오가 흘러나온다. 클래식 FM. 악기와 악기 사이를 건너다니며 집안 곳곳을 담는다. 계단을 내려올 땐, 이미 맛있는 냄새가 가득이다. 세 접시의 파스타, 그리고 와인 두 병을 들고 우리는 다시 건너편의 별채, 오늘 묵는 우리 집으로 건너간다. 그릇을 나눠 들고 셋이서 걷는 종종걸음. 방금 딴 바질의 향을 맡으며 포크를 드는데, 여기가 무슨 이탈리아인가 어리둥절해진다. 이렇게 극진한 대접을 받아도 되나 싶고, 친구 잘 둔 덕을 이렇게 보나 싶고 그렇다. 그럴 때는 잔을 열심히 부딪혀 본다. 짠! 하고 건배를 할 때마다 새로운 이야기들이 흘러나온다. 우리가 건배한 잔에 얽힌 이야기, 이 집을 준비하며 있었던 이야기부터 앞으로의 계획들까지. 거기엔 이야기 모두를 관통하는 철학이 있다. 그건 또 오빠의 작품인 이 집에 고스란히 담겨 있기도 하다. 나는 그런 일관성을 발견하는 일이 즐겁다. 감탄을 아끼지 않아도 좋으니 더욱 좋다. 접시를 다 비우자, 오빠는 참외를 꺼내온다. 능숙한 솜씨로 슥슥 껍질을 벗기더니 시원스러운 모양으로 잘라 내어놓는다. 그걸 또 한 입씩 베어물고, 수다를 떤다. 밤이 참 빠르게도 흘러간다.

고작 하루를 머물고, 이른 아침 떠나야 하는 것이 이렇게 아쉬울 줄이야. 멀지 않은 대전이라는 점이 위안이 되어준다. 언제고 다시 찾아, 오래오래 머물고 싶은 곳. 여기, 교토 스탠다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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