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상 위의 저녁 식사 빛을먹고사라져버린

서산에 해가 걸리니 때가 되었다. 우리는 테이블을 착착 펴고, 버너를 비롯한 살림살이들을 그 위에 차린다. 처음엔 자꾸 빼먹고 온 것이 생각나, 그때마다 후다닥 계단을 뛰어내려 가곤 했다. 키친타월! 아 맞다, 집게! 이런 식으로. 이제는 요령이 좀 생겼다. 쌈야채와 김치 종지, 쌈장 종지, 젓가락과 집게, 가위, 그리고 후라이팬과 접시까지. 마지막으로 주머니에 맥주 두 캔을 쑤셔 넣고 두 손 무겁게 계단을 오른다. 그렇게 차려낸 테이블 위 가장 중요한 것은 고기, 바로 고기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정육점은 팔판 정육점. 산책 코스로 그 앞을 지나다니곤 했는데, 알고 보니 아주 유서 깊은 집이다. 대를 이어받은 사장님 역시 나이가 지긋하시다. 알만한 유명 고깃집과 청와대에도 고기를 납품한다는 그곳. 우리는 소박하게 삼겹살 한 근을 산다. 처음엔 한 근!이라고 놀라던 우리는, 한 점도 남김없이 다 먹고 나서 살짝 머쓱해졌다. 그 이후론 고민 없이 한 근을 사 오는 우리다. 삼겹살이 든 검정 비닐봉지를 달랑달랑 들고, 총리 공관을 거쳐 집으로 향한다. 오늘도 아니 맛있을 수가 없겠어, 라고 예감하며.

달은 달군 팬 위에 고기를 굽기 시작한다. 양파도, 버섯도, 마늘도 차례로 오른다. 나는 맥주 한 모금에 하늘 한 번, 맥주 두 모금에 하늘 두 번을 보며 지는 해를 감상한다. 슬슬 고기 굽는 냄새가 향기로워지기 시작한다. 동네 강아지들 낑낑거리겠네, 농담하곤 했는데 정작 군침을 흘리는 건 새들이다. 커다란 까마귀 한 마리가 옆 건물 지붕에 앉아 우릴 내려다보며 운 적도 있었다. 까악까악까악. 아래에서 올려다본 까마귀는 제법 위압적인 모습이었다. 나는 까마귀를 보며 궁시렁댄다. 하나도 안 줄 거니까 그냥 가라. 그러면 까마귀는 다시금 까악까악 울다 날아간다. 휴, 나는 잠시 가슴을 쓸어내린다. 진짜로 테이블에 달려들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에.

그렇게 몇 접시를 비우고 나면, 고기 한 근이 홀랑 사라진다. 맥주도 물론이다. 고기 냄새 사이로 은은하게 번지던 모기향이 존재감을 발휘하기 시작한다. 가느다랗게 피어오르는 흰 연기. 절에서 맡는 향 냄새와는 또 다르고, 요가 수업에서 맡던 향이랑도 조금 다른데, 그건 어린 날의 여행에서 맡던 향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대단했던 시절이다. 커다란 아이스박스에 며칠 분의 식량을 싣고, 전국의 도로를 담은 지도책과, 그해 여름의 인기곡들이 앞뒷면에 꽉꽉 들어찬 카세트 테이프와 함께 떠나는 길. 마른오징어를 질겅질겅 씹으며, 김건모나 룰라를 따라 부르며 달리는 길. 어떻게 그렇게 떠날 수가 있었지 싶을 만큼 멀고 먼 길. 산 넘고 물 건너 찾아든 계곡에, 맞춤한 자리를 골라 텐트를 친다. 나는 로프를 바위 사이로 고정시키는 아빠를 바라본다. 아마 입엔 아이스크림을 물고 있었겠지. 돌을 괴어 만든 웅덩이엔 맥주와 참외가 둥둥 떴다. 입으로 분 튜브를 타고 계곡에서 열심히 물장구를 친다. 입술이 보랏빛이 될 때까지 놀다가, 너럭바위에 올라가면 등 뒤로 물이 뚝뚝 떨어졌다. 차가워진 몸을 데우는 햇볕. 그 기억은 유독 또렷하다.

코펠에 한 눌은밥과, 구운 고기, 된장찌개까지. 계곡 내 취사가 가능했던, 아니 취사하러 계곡에 가던 시절의 일이다. 그런 밤에는 빠지지 않고 모기향이 등장한다. 뭐라도 던져 넣어 계속 타오르는 작은 모닥불 옆에. 매캐하고 은은한 향이 흐르는 여름밤. 휴가는 늘 웃음과 울음으로 끝났다. 빠른 물살을 타고 흘러가버린 슬리퍼와 함께. 안녕, 안녕, 안녕.

덧글

  • 잉여토기 2019/06/25 08:55 # 삭제 답글

    옥상 공간이 있어 저녁식사로 삼겹살 한근 파티도 할 수 있군요.
    옥상 야외 공기를 함께 마시며 먹는 맛에 삼겹살 고기 맛이 더욱 좋을 거 같아요.
  • 한량 2019/07/06 10:32 #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무렵 종종 온동네에 고기 냄새를 피우는 집이 되었습니다. 습도가 낮아 그런지 저녁이면 선선한 바람이 불더라고요. 모기향 피워놓고 맥주를 콸콸 마셔봅니다. 지금도 옥상에 올라왔어요. 파라솔 두 개 야무지게 펴놓고 그늘에 누웠답니다. 벌써부터 해가 쨍쨍하네요. 태닝은 이따 늦은 오후에 하는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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