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촌 산책 어떤 동네


이게 어인 일인지. 언제쯤 오려나 매일 같이 예보를 들여다봐도 장마는 오지 않았다. 몇 번의 짧은 비만 뿌렸을 뿐. 어느 날엔 푸른 하늘 위로 뭉실뭉실한 구름들이 뜨고, 또 어느 날엔 양떼구름이 옅게 펼쳐진다. 우리는 우리의 여름 여행과 그곳에서 본 구름들을 떠올린다. 오늘은 완전 파리 구름인데? 오늘은 로마 구름이야. 또 어떤 날엔 영원한 우리의 사랑, 바르셀로나 구름을 보기도 한다. 구름을 헤아리다 보면 시간이 잘도 흐른다. 해가 질 무렵이면 산 너머에서 바람이 분다. 습도 30퍼센트 내외의 날씨. 산책하기 딱 좋은 날들이다.

저녁 일곱 시 반, 우리는 감고당길 끝에서 만나기로 한다. 달은 해방촌에서, 나는 집에서 나선 길이다. 이상하게 그리 말하고 싶더라니. 아침나절, 오늘은 차를 가져가지 않는 게 나을 것 같다고 권한 내 말은 적중했다. 경복궁을 따라온 거리엔 흰색 펜스가 가득하다. 펜스 주변의 사람들 눈엔 호기심이 어려있다. 갑작스럽게 트럼프가 온다고 했다.

달은 트럼프의 행차를 구경하고 싶어 하는 눈치였는데, 나는 내 저녁이 더욱 중했다. 어차피 차 안에 있어 보지도 못 할 걸. 뭐하러 기다리냐? 짐짓 핀잔을 주고 우리는 동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그렇게 시작된 산책. 마치 보안관이라도 된 냥 북촌을 둘러보고 다녔다. 예전처럼 진지한 발품은 아니다. 슬렁슬렁 우리의 걸음은 느릿느릿하다.



한남동에서 먹었던 햄버거를 안국역에서 먹는다. 이미 입소문이 자자한 까페의 마당에 서서, 저물어가는 하늘을 본다. 까페가 되기 전 이곳은 한정식집이었다. 아직 연애중이던 우리가 서로의 어머니를 모시고 어색한 저녁을 먹은 곳. 그때의 한옥자락 너머와 크게 다르지 않은 하늘. 그리고 가장 익숙한 길, 창덕궁 담을 따라 걷기 시작하는 우리. 마을버스 정류장은 궁의 작은 문과 맞닿아 있다. 그 앞 의자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어르신들. 계속 걸음을 옮기려는데, 눈길을 사로잡는 것이 있다. 아, 그건 아무렇게나 팽개쳐진 붕붕카들. 올라타 실컷 끌다가 내일을 기약하며 돌아갔을 어린이들.

그러고 보면 예전 이 자리엔 자그마한 미끄럼틀도 있었다. 원서동의 꼬마들은 궁궐을 옆에 두고, 뜀박질을 하며 자란다. 콧등의 땀은 궁궐 안 소나무숲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식혀주겠지. 그렇게 길을 걷다 보면, 생각은 무럭무럭 과거로 거슬러 오른다. 어디 지금 꼬마들뿐이랴, 댕기머리 종종 땋은 애기들도 여기 이 길 밑에 흐르는 개천에서 물장구치며 그리 자랐겠지.

그렇게 해가 다 진 거리를 걸어 걸어 돌아온다. 아직 길들지 않은 쪼리는 발등에 상처를 남겼다. 그러니 제법 여행길의 풍경이 완성된다. 하루 치의 아름다움을 모조리 눈에 담은 만족. 살짝 발을 끌면서, 내리는 어둠을 등 뒤에 남기고 집으로 돌아오는 것. 살짝 돋은 땀을 식히는 밤바람. 샤워와 맥주가 기다리고 있음을 믿어 의심치 않는 것. 여행의 경계, 거기에 길을 내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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