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타리나 블룸, 이십대 여성 담론, 대놓고 간첩, 그리고 데칼코마니. 읽기

토요일 신촌, 낡은 프로방스풍은 가라! 며 새로운 장소에서 모인 우리들.
특별히 더위를 많이 타는 인간들..
은 아니고

일곱 권의 책이 둥글게 둘러 앉으니 어엿한 민음사덕후 정모 같았다. 파운드 케익을 건 퀴즈에서
나는 무려 1점을 획득, 저렴한 기억력과 더러운 운수를 뽐내었다. (내가 아는 문제는 항상 나를 건너뛰곤 하지....)
뭐지? 이 지적인 스멜은.. 킁킁

이날의 발제자가 꼼꼼히 준비해 온 덕에 이야기는 요목조목 잘 진행되었다. 기억에 남는 몇 가지.
우선 작가 하인리히 뵐의 서문.

'이 이야기에 나오는 인물이나 사건은 자유로이 꾸며 낸 것이다.
저널리즘의 실제 묘사 중에 《빌트》지와 유사한 점이 있다고 해도
그것은 의도한 바도, 우연의 산물도 아닌, 그저 불가피한 일일 뿐이다.'

#그리고 뵐의 후기를 읽고나서 나눈 이야기.

악셀 슈프링어와 뵐의 악연. 뵐은 작가답게 펜을 들었다. 서문의 마지막 줄을 보라. 그저 불가피한 일이라니.
우리는 이 문장에 감탄했다. (이런 해맑은 뻔뻔스러움 좋아 죽겠네)
그는 이것이 허구를 다룬 소설로만 읽히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로서 보다 현실과 가깝게 다뤄지길 원했다.
반면, 박지원은 <열하일기>에서 미리 일러두었다.

'아 이 이야기는 내가 중국의 음식점에 갔을 때 일인데요. 거기 벽에 뭐라뭐라 적혀있는 걸 읽어보니 너무나
재미있어서 내가 그걸 옮겨 적어 왔다구요. 그러니 이 웃긴 이야기 한 번 읽어보세요.' 라고.
 
현실을 콕 찝어 말하는 것과, 우회적으로 말하는 것. 어느 것이 더 효과적인 방법일까 라는 이야기에
나는 상상의 여지를 열어두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했다. 전자는 강한 시의성만큼 빨리 잊혀지기 쉬운 반면,
후자의 경우는 시대를 떠나서도 회자되는 생명력이 강하지 않을까.

#뵐의 문체.

툭툭 던지듯이 서술하는 방식. 친절하게 알려주지 않고 설명해주지 않아 독자 스스로 이리저리 짜맞추어
생각해야 한다. 그것이 주는 효과란, 르뽀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하고. 보고서의 냄새도 난다. (번호 매김 역시)
그래도 문학다운 비유와 은유는 존재하지만. 서술자의 정체 역시 그렇다. 그는 사건이 모두 종결된 후 이리저리
정보를 얻어 팩트를 전달하는 듯한, 위에서 관망하는 느낌을 준다. 그렇다고 전지적 작가 느낌은 또 아니고.

#유명인사가 주인공이었다면, 명예의 실추 정도도 더 컸을텐데 왜 그냥 평범한 카타리나를 주인공으로 했을까?

에서 첫번째 생각 :
유명인사는 나름대로 자신을 보호할 장치를 충분히 가지고 있어 재기에 성공할 가능성이 있으니까.
두번째 생각 :
반면 평범한 일반인이 당하는 사건과 그 해결 방법(분노의 샷건)을 담아내어,
이 글을 읽는 '평범한' 독자로 하여금 문제 의식을 키울 수 있지 않을까.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네? 어쩜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잖아. 같은.
세번째 생각 + 그리고 갑자기 열띤 토론 :
카타리나의 특징 중, '20대 여성'에 주목.
마음 놓고 공격할 타자를 요구하는 각박한 세상에서 유독 타겟이 되는 20대 여성들에 대하여.
'ㅇㅇ녀' 들이 검색어에 오르내리는 것을 비롯, 가혹한 비난과 멸시가 뒤따르는 현상.
별다른 가책없이 공격을 가하는 다른 性과 다른 世代들.
일반적인 사건들은 팩트가 주가 되는데 반해 20대 여성이 등장하면 팩트+20대 여성 이라는 점으로
더 한 공격과 과한 윤리적 잣대를 들이미는 것 같다. 라고 나를 포함한 여성동지 셋은 목소리를 높였다.
너네 열폭 아니냐고 할 수 있는데 진짜 피해의식 맞아요. 다른 분들은 이런 의제 앞에서 아 그런가? 하고
한 번쯤 생각해보는 거지만, 우리는 인터넷 아닌 일상 속에서도 그런 걸 느낀다구요.
예를 들어 지하철을 타더라도 그저 만만한 게 20대 여자인거지.

그럼 차를 타고 다니면 되겠네? 라는 농담에

어우, 차 타면 더 난리죠. 어디서 운전하냐고. 이런 식이죠.

라고 한풀이 작렬. 홍언니의 '맥까페 낚임 촬영' 이야기에 웃긴 했지만. 진심으로 궁금했다.

왜? 우리가 뭘 어쨌는데? 왜 못 잡아먹어서 난리인건데? 개념리스는 개인의 사고방식에 문제가 있는 거고,
개인주의적 성향은 이십대 전반의 특징인건데 왜 하필 20대 여성은 조롱 아니면 희롱의 대상이 되는 거냐고.
 
a1. 경제가 어려워지면 외국인 노동자를 배척하는 정서가 팽배하듯이, 기득권 층의 횡포인거지.
혹은 기득권 층에 자연스레 편입될 줄 알았으나 뭔가 어려워진 이들의 불안이 투사되는거야.

a2. 젊음에 대한 시기, 질투다. 느이가 그걸 아냐고. 사람이 살다보면 특히 나이 먹어서는 꺾이는 순간들이
오는데.사회에서 꺾이고 치이는 것은 그래 참을 수 있겠다고. 다들 그러려니 하면서 숙일 수 있거든.
근데 내 맘과 정성을 다 쏟은 가족들, 예를 들어 남편이나 자식 앞에서 꺾이는 순간이 온다.
니넨 아직 잘 모르겠지? 그런 순간에 느끼는 절망감은 말로 다 할 수 없다고.
그렇게 인생을 살다보면 아직 그 감정을 겪어보지 않은 그저 맑고 새파란, 책임질 것이 적기에 당당하고 
뭐든 해볼 수 있는 니네가 부러워서 질투들 하는거야.

라는 성과 세대적 특성을 담은 대답을 들었으나.
그래도 아직 어렵다. 왜? 대체 왜? 아니 왜냐고요.  

#이어서, 언론과 권력의 관계.

'그녀가 블룸에게 가져다 준 오려 낸 신문 기사 열다섯 장은
카타리나를 전혀 위로하지 못했고, 그녀는 그저 이렇게 묻기만 했다고 한다.
"대체 누가 이걸 읽겠어요? 내가 아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차이퉁>을 읽거든요!"' (p.64)

권력의 수하가 아니라 이제 그 자체가 권력이 되어버린 거대 언론. 어디 1970년대의 독일뿐이랴.
유시민은 <청춘의 독서>에서 이렇게 말한다.   

'독일에는 《빌트》가 하나밖에 없지만 우리나라에는 여러 개의 《빌트》가 있다.
《빌트》도 《빌트》이고,《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도 《쥐트도이체 차이퉁》도《빌트》이고,
《프랑크푸르터 룬트샤우》도《빌트》라고 생각해보라. 독일 사회는 오늘과 같지 않을 것이다.
발행 부수 일등부터 삼등까지가 모두 《빌트》와 같은 신문인 나라. 그리고 그 밖에 또 여러 개의 작은 《빌트》
가 있는 나라. 《빌트》가 되지 않으려고 애쓰면 신문 시장에서 살아남기 어려운 나라, 그게 대한민국이다.'

언론의 횡포에 정치나 선거 이야기가 이어지는 건 당연지사.
언론의 역할 및 방향에 대해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견해를 나누기엔 우리 모두 거칠게 세상을 살아온지라.
욕설만 안 늘어놨다 뿐, 분위기는 사뭇 흉흉해졌다. 허나 그러고만 있기엔 다들 또 유머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라.
화제의 조선 사진기 어플.

다함께 해맑은 미소 지으며 간증의 시간을 나눴다.
집안에서 정치적 견해의 다름으로 왕따가 된 핍박 스토리가 주를 이뤘는데, 그런 주변 환경의 영향에도 불구하고
왜 꿋꿋이 다른 생각을 고수하게 되었을까. 다들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그리고 왜 여기 사람들은 다 비슷한 견해를 가지고 있는걸까. 하고.
(굉장히 무작위적인 표본이다. 특히 어제는 다양한 직업군과 성별 뿐 아니라 연령대도 20대에서 40대까지를
아우르던 상태였다. 세세한 방향성은 조금씩 다르더라도 우리는 反 한나라당의 기치 아래 뭉치는거다.)

그런 의문에 '난 제정신이니까.' 라고 농담 반 진담 반 섞어 받아칠 수도 있겠지만.
이 집단의 특성과 결부시켜 생각해 보고 다들 비스무리한 결론을 내렸다.

'원래 소설 쓰고 싶어하는 인간들은 결핍된 상태니까. 주류보다 비주류, 다수보다 소수의 정서를 가지고 있으니.' 

근데 그게 좋단 말이지. 남몰래 어깨가 으쓱한단 말이지. 일반적인 세상적 가치를 무시할만큼 고고하거나
순수하진 않으나 그래도 마음의 깃발은 늘 이상향을 향해 펄럭이는 것. 비슷한 사람들과 마음이 맞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것은 너무나 행복한 일이다.

그래서 백세주 마을 가서 생막걸리 드링킹. 오랜만에 마신 막걸리는 참 달콤해서 눈에 힘이 풀리려 했다.
'느헤헤' 같은 이상한 웃음을 흘려가며 나는 '아.. 요즘 너무 좋아. 어떡해..ㅇ.....' 같은 대사를 쳤다.
항상 웃는 얼굴의 홍언니는 그 순간만큼은 굉장히 단호한 표정으로 대답해주었다.

'하나도 안 궁금한 정보,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필명도 묘한 뉘앙스(입이 간지럽소만)인 '밝'님은 '요즘 진짜 바야흐로 사랑의 계절인가봐요.' 라고 말했으나 
돌아오는 현언니의 답.

'그럴리가.'  

여튼 술 깨고 생각해보니 언니들 정말 착하다. 나같음 죽빵을 갈겼을지도 모른다. 어머, 손이 미끄러졌네. 하고.
손 하니 말인데,
지나가다 들린 토다코사에서 매니큐어를 발랐다.
터키쉬 블루, 와 예쁘다 하고 발랐는데 마르고 나니 미친 생각.

헉! 이건 1번의 컬러다!
 간만에 일찌감치 막차타고 집에 가는 간첩

선거 전날 만나요, 하고 도망간 간첩은 야심한 밤 전파망을 통한 접선에 성공.
긴 밤 꼬박 새고 동이 트는 걸 보고서야 잠들었다. 
기적에 가까운 우연들은 예고없이 찾아온다.
그렇게 잠시 전기가 통한듯이 '꽃'이며 '짧은 메모가 쓰인 책선물'에 감탄하는
제법 상큼 풋풋 달달 애틋한 우리였는데

새벽녘 고백의 순간.

'너가 병신같아서 좋아..'
'사실 난 변태야...'
'알고 있어..'
'나도 눈치챘어. 너도 나와 같다는 거..'
'응...'

... 참으로 좋은 알아봄이자, 좋은 닮은꼴이다.  

이글루스 가든 - 하루에 한장. 사진 일기를 쓰자!

덧글

  • 하다 2010/05/31 10:47 # 답글

    책으로 시작했는데 연애로 끝나다니요!
    나쁜 글입니다. ㅋㅋ
  • 한량 2010/05/31 20:43 #

    아 이런 폄하 및 괄시 매우 환영합니다. 진짜로요 ㅋㅋㅋ
    이런 느낌 그리웠어요...
  • 홍닭무 2010/05/31 15:30 # 삭제 답글

    안궁금한 정보 감사합니다. 한량니미 (어이쿠, 손이 미끄러졌네)

    참고로 한량님의 점수는 -1점이예요. 뫼딩의 그짓..문제에서 불순한 답변으로다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한량 2010/05/31 22:26 #

    니미!
    맞다!! 근데 나는 그 어떤 단어도 입 밖으로 내밀어 말한 적 없고
    그저 뉘앙스로만.. 얼마간의 의문을 표시했을 뿐이었는데. 핫챠!

    뇌가 썩었단 죄로 점수도 깎이고..... ㅠㅠ
  • arealland 2010/05/31 22:20 # 답글

    ㅋㅋㅋ막차타고 집에가는 간첩
  • 한량 2010/06/01 09:50 #

    막차 시간표라는 고급 정보는 이미 입수했고..
    전국 주요 대학 정보는 이미 선배님이 알아가셨으니... !
    (http://www.ytn.co.kr/_ln/0103_201005231757582066)

    저는 뭘 조사해야 할까요.
    전국 주요 보육원 정보라든지, 주요 양로원 현황 조사에 착수해야겠어요.
  • violet 2010/06/01 22:33 # 삭제 답글

    참 진지한 모임이었더랬다.
    밤에 내 쓰레기 연주를 보지 않아 눈이 맑겠네 그려.
  • 한량 2010/06/03 08:28 #

    안 그래도 뒤늦게 소식을 듣고 통탄했소.
    나도 나도 나도 나도요!
    나 고막 튼튼해서 괜찮아 담에도 가져와 주세염.
댓글 입력 영역